사람답게 사는 길
사람답게 산다는 것은 단지 이성적으로 살아가는 것만을 의미하지는 않는 것 같습니다. 그보다 더 중요한 건, 다른 사람에게 피해를 주지 않으면서 조용히 자신의 자리를 지키며 살아가는 일 아닐까 싶습니다.
20대 시절, 저는 서울 노원구에서 잠실까지 출퇴근을 하곤 했습니다. 당시 아침잠이 많았던 저에게 새벽 6시 30분 지하철을 타는 일은 정말 고역이었습니다. 너무 졸려서 서 있는 채로도 잠이 들 정도였지요.
어느 날 아침, 운 좋게 제 앞에 앉아 있던 분이 일어나셨고 저는 반가운 마음에 자리에 앉으려던 찰나, 옆에 서 계시던 아주머니께서 저보다 재빠르게 그 자리를 차지하셨습니다. 순간 마음이 아프고 서운했지만, '그럴 수도 있지' 하고 넘기려는 찰나, 바로 다음 정거장에서 또 한 자리가 비었습니다.
이번에는 정말 제가 앉고 싶었는데, 같은 아주머니가 다시 잽싸게 엉덩이를 옮기며 서 있던 딸아이를 그 자리에 앉히는 모습을 보고는, 저도 모르게 속에서 분노가 치밀어 올랐습니다.
'아니, 어떻게 저렇게도 양보라는 게 없을까?'
한 번 양보해 드렸으면, 두 번째 자리만큼은 제 차례 아닐까 싶은 마음이 들었습니다. 아침마다 힘든 건 누구나 마찬가지인데, 왜 저런 행동을 할까 하는 생각에 그날 하루는 더 힘들게 출근했던 기억이 납니다.
그런데 시간이 흐르고 보니, 오래전 읽었던 한 글이 떠오릅니다. 우리나라의 50대 아주머니들이 세상에서 가장 불행하다는 이야기였지요. 자식 키우느라 젊음을 바친 그 시절, 이제는 자식들도 다 자라 제 갈 길 가느라 바쁘고, 갱년기로 인한 신체적 변화와 함께 정신적인 스트레스는 점점 쌓여만 간다고 합니다.
오랜 시간 집안일과 육아로 단절된 경력은 재취업을 어렵게 만들고, 나이 들어 변화해 가는 외모는 자존감을 떨어뜨리기도 합니다. 여성으로서의 매력이 사라진다는 느낌에, 때로는 배우자와의 갈등도 잦아지고, 마음은 더욱 예민해진다고 하더군요.
그 시절, 그 글은 그렇게 이야기하고 있었습니다. 우리 사회가 그런 아주머니들을 더 따뜻하게 이해하고, 너그럽게 품어야 한다고요. 그게 바로 우리 시대 어머니들의 모습이었고, 우리가 기억해야 할 또 하나의 삶의 진실이었습니다.
그리고 세월이 흘러, 이제 저도 바로 그 나이에 접어들었습니다. 문득 거울을 보며, 혹시 내 안에도 예전 그 아주머니처럼 무대포 같아지는 모습이 있지는 않은지 돌아보게 됩니다.
자식들도 다 성장했고, 어느덧 인생이라는 길을 제법 걸어온 것 같기도 하지만, 여전히 갱년기의 증상들은 저를 힘들게 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람답게 산다는 것은 결국 이성적일 수 있는 힘을 잃지 않는 것이겠지요.
지금까지의 삶에 불만을 갖기보다는, 살아온 시간 속에서 쌓인 연륜으로 앞으로의 순간들을 좀 더 유연하게, 좀 더 따뜻하게 받아들이고 싶습니다. 그리고 무엇보다 저는 이제 글을 쓰는 사람입니다.
매일 글을 쓰며 느끼고, 생각하고, 반성하며 하루하루를 정돈해 나가고 있으니까요. 저는 앞으로도 글을 통해 저 자신을 다듬고, 내 안의 삶을 더 아름답게 가꾸어가며 남은 날들을 조용히 행복으로 수놓고 싶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