닉네임 이과나(iguanaji)에서 아우름으로
저는 오랫동안 이과나(iguana)라는 이름을 사용하며 블로그를 만들어왔습니다. 그렇게 10여년이 흘렀네요. 요즘 집중해서 글쓰기 작업에 몰두를 하다보니, 저의 닉네임에 관해 많은 생각을 하게 되었습니다. 좀 더 부드럽고 친근한 이름이었으면 했는데 더블와이파파님의 추천으로 '아우름언니'로 사용하게 되었습니다.
이제부터 전 '아우름언니'랍니다.
지금까지 살아온 저의 삶을 뒤돌아보니, 참 많은 경험들을 했었네요. 좋았던, 싫었던, 힘들었던 그 경험들이 오늘의 저를 만든 것에 감사한 마음이 듭니다.
어린 시절, 수줍음이 많아 엄마 치맛자락을 잡고 숨어서 세상을 바라보았던 저는 자라면서는 키가 너무 커 버려서 엄마랑 버스를 탈 때마다 버스 안내 양이랑 실랑이를 해야 했습니다. 초등학생인데 왜 요금을 안 내냐고요.
초등학교에 입학을 하면서 수줍었던 저의 성격은 더 심해졌어요. 전교에서 두 번째로 키가 컸던 저는 교실에서도, 조례를 설 때도 짝지가 없어서 늘 혼자였답니다. 그리고 키다 크다 보니 늘 눈에 띄어서 교실에서도 지목을 많이 당해서 얼굴이 빨개지곤 했어요.
키가 크다 보니 체육 선생님께 발탁이 되어 육상 선수도 하고, 수영선수도 했어요. 그때 다진 체력이 아직도 남아있는 것 같아서 조금은 흐뭇합니다. 운동을 하면서는 좋은 기억들이 많아요. 땀을 흘리면서 연습을 하는 내 모습이 좋았고 '스포츠맨십'이라는 소중한 정신도 조금씩 가지게 되었죠.
초등학교 때 '부모님께 편지 쓰기' 수업을 하고 엄마께 편지를 드렸는데 엄마가 글을 잘 쓴다고 칭찬을 하셨어요. 그때부터 전 글쓰기를 좋아했던 것 같아요. 저보다 5살 어린 동생을 위해서 동생이 주인공인 동화책을 써서 읽어주기도 했고, 만화책도 만들어보았지요. (만화책을 워낙 좋아했어요)
6학년 때는 '시조 쓰기' 경연 대회가 있었는데(교장 선생님 멋쟁이) 시조들을 외워서 50분 동안 가장 많이 써내는 사람이 상을 받는 거였는데, 그때 60~70개 정도를 외웠던 것 같습니다. 지금이야 검색을 하면 나오지만 그때는 시조를 찾으려고 동네방네 중, 고등학교 국어, 고문책을 찾아서 헤매기도 했답니다. 50분 동안 제가 52개 남학생이 54개를 써서 결국 2등을 했지만 전 너무 뿌듯했어요. 거의 1분에 한 편씩 썼던 거니까요.
그다음 달, 바로 교내 학예회가 있어서 학생들 모두 시 한 편씩 써내라고 했는데 영광스럽게도 제가 우리 반에서는 당선이 되어서 대표로 출품을 하게 되었지요.
"가을의 코스모스 한들한들 춤추네
무엇 때문에 춤추니?
높고 높은 가을 하늘 맑고 맑아 춤추니?
바람이 간지러워서 간지러워 춤추니?
나에게 가르쳐 주지 않으련?"
뭔가 느껴지지 않나요? 바로 시조와 비슷한 느낌이죠. 전 그 어린 나이에 소중한 깨우침을 얻었답니다. 열심히만 하면 된다는 것을요. 시조 60여 개를 외웠더니 바로 시 한 편이 나왔으니까요. 그전에는 저는 시가 뭔지도 몰랐었답니다.
고등학교 때는 공부는 하지 않고 '하이틴 로맨스'에 빠져서 연애 소설 두 편을 썼답니다. 두꺼운 공책에 썼는데 한 번 쓰기 시작하면 수정도 없이 마무리까지 내리 썼었으니 '하이틴 로맨스'를 얼마나 많이 읽었으면 스토리가 끝날 때까지 쉬지 않고 이어지는지 아시겠죠?(내용은 당연히 엉망이었겠죠). 탈고(?)를 하고 나면 친구들에게 돌려가며 뒷장에 후기를 받았던 것도 기억이 납니다. 그 소중한 내 보물들은 동생이 자랑하느라 친구들에게 빌려주곤 하며(내 허락도 없이) 결국 모두 잃어버렸습니다.
그리고 대학에서 시각디자인과를 졸업하고 서울에 있는 게임회사에 취직을 하면서 컴퓨터 그래픽 일을 시작했지요. 그림도 좋았지만 전 기획이 더 재미가 있었습니다. 그래서 차츰 게임 기획서를 만들기 시작했고 "교육용 게임 공모전"에서는 최고 상인 "교육부 장관상"과 상금 500만 원도 받았답니다. (1998년) 그래서 회사도 차리게 되었지요.
그즈음에 제가 세상에서 가장 사랑하는 아버지의 60세 생신이 다가왔습니다. 그래서 전 그동안 아버지와 나누었던 편지와 제가 자라면서 보아왔던 아버지의 모습을 글로 적었습니다. 제가 어떤 생각들을 하면서 성장했는지 아버지께 알려드리고 싶었죠. 그리고 그 모든 것을 모아 내 인생의 첫 에세이집을 만들었습니다. 속지는 회사에서 레이저프린터로 출력을 해서 제본을 했고 표지는 거래처였던 인쇄소에 부탁을 해서 몇 장을 만들었습니다. 근사한 책이 만들어져 아버지께 60세 선물로 드렸습니다. 책을 좋아하셨던 아버지는 너무 맘에 들어 하셨어요.
미용 일을 시작하면서, 예전의 그 글쓰기를 좋아했던 나의 본성이 꿈틀거렸나 봐요. 살면서 최고로 많은 눈물을 흘렸던 스텝 시절과 힘든 초급 디자이너 시간을 지나고 나서, 거제도로 내려와 미용실을 오픈했을 때, 블로그를 시작했습니다. 2012년 오픈하기 전 이미 서울에서 블로그와 카페를 개설해놓고 어떤 글을 쓸지 고민들을 했었어요.
오픈을 하고는 정신없이 바빠서 잊어버리고 있다가, 최초의 글을 "단발머리 볼륨매직"으로 2013년 4월 15일에 쓰고, 첫 번째 책 리뷰를 쓰고, 제가 좋아하는 영화 리뷰를 썼네요. 사실 책 리뷰와 필사는 그전부터 노트에 손글씨로 썼었답니다. 그러다가 영원히 보관하며 기록하고 싶다는 생각에, 그리고 미용 일을 하다 보니 점점 잊혀 가는 워드 감각을 다시 일으키기 위해서 컴퓨터로 작업하기를 선택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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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고는 또다시 읽고 쓰기만을 반복했던 것 같아요. 지금만큼은 열정적이지 못한 읽기와 쓰기였지만, 그래도 잊지 않고 가끔이나마 꾸준히 읽고 써 왔던 것이 지금의 밑거름이 되지 않았나 생각해 봅니다. 제가 경험한 그 어느 것도 저에게 도움이 되지 않는 것은 없을 테니까요.
지금 저는 더블와이파파님의 다섯 손가락을 만나 새로운 도약을 하려 합니다. 사실, 지금 너무 힘듭니다. 시간도 부족하고 무엇보다 아이디어가 부족합니다. 하지만 지금까지 포기하지 않고 꾸준히 이어왔던 내공으로 묵묵히 저에게 주어진 앞길을 가보려 합니다.
지금 제가 꾸고 있는 '소중한 꿈'은 소설가가 되는 것입니다. 제가 지내왔던 저의 인생을 되돌아보면 모두가 작가가 되기 위한 밑거름들이 아니었나 생각해 봅니다. 언제쯤 그 꿈을 이룰 때가 올는지 기대가 되고 가슴이 벅찹니다. 그때까지 꾸준히 달릴 일만 남았습니다. ^^
어떻게, 쓰다 보니 저의 자랑처럼 되어버렸습니다. 너그러운 마음으로 읽어주시기 바랍니다.^^;
앗! 그리고 저의 키는 중3 때 크기를 중단했습니다. 지금은 평범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