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생을 헛살았어
어제까지 정신없이 바쁜 설 대목을 보내고, 오늘은 아침 일찍 시댁이 있는 지세포로 향했습니다.
서울에서 거제도로 내려온 지도 벌써 15년째, 매년 명절이면 반복되는 익숙한 풍경이지만, 여전히 마음 한편은 분주해집니다.
서울에 살 때는 해본 적도 없는 명절 음식 준비.
처음엔 솔직히 망설였습니다.
“설 전날에도 그냥 일이나 할까?” 미용실은 그날이 가장 바쁜 날이니까요.
그래도 마음을 바꿨습니다.
“이제라도 시댁을 도와야지. 그동안 너무 못했잖아.”
그리고 솔직히... 서울에선 느껴보지 못했던 명절의 ‘북적북적함’이 저는 은근히 좋았습니다.
사람들이 오가며 나누는 따뜻한 말들, 부엌에서 풍기는 기름 냄새, 묵직한 웃음소리 같은 것들요.
그래서 이번엔 제가 남편을 등을 떠밀었죠.
“우리 올해는 명절답게 보내자!”
남편은 아마 속으로 좋아했을 거예요.
제가 시댁 일 하는 동안 친구랑 낚시 갈 수 있으니까요. 아주 평화로운 윈윈 관계랄까요?
그렇게 15년을 이어왔습니다.
70대이신 큰 형님과 저는 가끔은 몸이 힘들고 마음도 지칠 때가 있었지만, 어느새 눈빛만 봐도 통하는 사이가 되었죠.
그런데 평온했던 이 명절에 예상치 못한 작은 ‘불꽃’이 피어오르기 시작했습니다.
큰집의 큰아들 부부는 중국에서 살다가 얼마 전 한국으로 돌아왔고, 이제부터 명절마다 함께하겠다고 선언했습니다.
“오~ 드디어 일손이 좀 늘겠구나?” 저희는 은근히 기대했죠.
하지만 아침에 오겠다는 그들은, 해가 저물고 전이 거의 다 끝나갈 무렵이 돼서야 등장했습니다.
저는 그때까지도 괜찮았습니다.
“그래, 늦을 수도 있지. 반가운 얼굴들이 왔으니 즐겁게 보내자.”
그런 마음으로 튀김까지 다 끝내놓고, 전을 부치고 있었는데…
그때 형님이 조용히 한마디 하셨습니다.
“일이 다 끝나가니까, 숙모(저)가 마무리하고, 너희는 힘드니까 들어가서 쉬어.”
네...?
눈 깜짝할 사이, 큰아들 부부는 조용히 방문을 닫고 방 안으로 사라졌습니다.
저는 기름 냄새 풀풀 나는 거실 바닥에 쪼그려 앉아 마지막 전을 부치기 시작했습니다.
전이 다 끝나면 또 뭐가 있죠?
그렇죠, 바닥 닦기.
기름으로 미끈미끈해진 바닥을 걸레로 밀고 있는데, 순간 머리에서 김이 피어오르는 것 같았습니다.
정말 ‘전 부치다 연기’가 아니라 ‘내 속에서 연기’가 나는 기분이었달까요.
집으로 돌아오는 길, 혼자 운전하며 마음이 점점 서운해졌습니다.
처음엔 “큰아들 부부가 미워지려고 하네...” 생각하다가,
이내 “그래, 이해하자. 중국에서 살다 와서 아직 분위기를 잘 모를 수도 있지”라고 스스로를 다독였죠.
그렇게 차분하게 마음을 가라앉히며 집에 도착했는데요.
남편 얼굴을 보는 순간...
그만, 꾹꾹 눌러놨던 감정이 폭발하고 말았습니다.
“당신, 있잖아... 그 애들 말이야...”
하면서 미주알고주알 다 쏟아냈습니다.
남편은 눈이 휘둥그레지더니, 이내 제 감정에 200% 공감하며 외쳤습니다.
“이놈의 시키! 이놈의 시키!!”
대신 화내주는 그 모습이 어찌나 고맙고 시원하던지요.
그 순간, 제 속도 좀 풀렸습니다.
참, 사람 마음이란 게 간사하기도 하고 복잡하기도 해요.
인생의 절반 이상을 살았다고 자부했는데, 이런 일 하나에 속이 뒤집히고, 젊은 애들 이해 못 해서 속상해하고,
결국엔 남편에게 고자질하듯 털어놓고 위로받고...
책을 많이 읽고, 글을 쓰고, 명상을 해도
단 하나의 사건이 툭— 하고 들어오면, 마음은 요동치고 말더라고요.
아직도 저, 인생 덜 산 걸까요?
아니면, 나이는 먹었는데 마음은 그대로인 걸까요?
그 생각에 슬며시 웃음이 났습니다.
내일, 큰아들 부부와 손자를 만나면 조금 더 많이 웃어줘야겠어요.
그게 어쩌면 저를 위한 마음 정리일지도 모르겠네요.
살다 보면, 다들 처음엔 서툴고, 실수도 하니까요.
저도 그렇게 어른이 되어 왔으니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