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버지의 마지막 농담

세상에서 내가 가장 가슴 아픈일

by 아우름언니

제가 세상에서 가장 사랑했던 우리 아버지는 치매 환자셨습니다.

경북 예천군 풍양면에서 태어나 서울 경기고등학교를 다니셨을 만큼 공부도, 운동도 뛰어나셨던 분이었습니다.


그야말로 마을에서 이름난 인재셨지요.

아버지께서 유일하게 좋아하셨던 취미는 낚시였지만, 가족과 함께 간 기억은 단 한 번뿐이었습니다.

그만큼 아버지는 평생 가족을 위해 쉼 없이 일만 하셨고, 결국 병이 찾아오게 되었습니다.

당시 저는 서울에서 살고 있었고, 동생도 서울에서 쌍둥이를 출산한 뒤라 어머니는 조카들을 돌보기 위해 서울로 오셨습니다.


어머니는 종종 부산과 서울을 오가셨지만, 아버지는 그 오랜 시간 동안 혼자 남아 집에서 일을 하셨습니다.

동생이 부산으로 이사한 후에도 어머니는 대부분 동생 집에 머무르셨고, 아버지는 그렇게 십 년 넘는 시간을 홀로 지내시다 결국 치매 진단을 받으셨습니다.


다행히 어머니의 지극한 보살핌 덕분에 아버지는 7년 가까이 집에서 생활하실 수 있었습니다.

하지만 어느 날 심한 폐렴에 걸리셨고, 합병증으로 다리를 쓰지 못하게 되셨지요.

결국 어쩔 수 없이 요양병원으로 모시게 되었습니다.


어머니는 매일 병원에 가셨고, 저는 한 달에 한 번씩 부산으로 내려가 아버지를 뵈었습니다.

요양병원에서의 생활은 예상한 그대로였습니다.

아버지는 점점 야위어 가셨고, 기운도 점차 약해지셨습니다.

하지만 병원에 대해 불만을 이야기할 수 있는 상황도 아니었습니다.

그저, 가슴 한켠이 늘 무거울 뿐이었지요.


아버지가 요양병원에 계신 지 1년쯤 지났을 무렵, 어머니에게서 전화가 왔습니다.

아버지의 상태가 위급하다는 이야기였습니다.


저는 전화를 받자마자 바로 부산으로 달려갔고, 응급실에 누워 계신 아버지를 만날 수 있었습니다.

의식은 거의 없으셨지만, 의사 선생님은 다시 회복될 가능성도 있다고 말씀하셨습니다.

병원 측에서는 보호자가 머물 공간이 마땅치 않으니 일단 집으로 돌아가 기다리라고 하셨습니다.

아버지의 손은 약간 차가웠지만 여전히 따뜻했습니다.


저는 그 손을 놓고 돌아섰고, 어머니 댁에 들렀다가 거제도로 향했습니다.

하지만 집에 도착한 지 한 시간쯤 지났을 때, 어머니와 함께 살고 있던 조카에게서 전화가 걸려왔습니다.

“이모야, 빨리 와야 해… 할아버지가 지금 위급하시대…”

그 순간, 세상이 무너져 내리는 듯했습니다.

아무 말도, 아무 생각도 할 수 없었습니다.

‘그때 아버지 곁에 조금만 더 있었더라면...’

떠나는 제 모습을 보시며 아버지는 어떤 마음이셨을까요?

“가지 마라, 조금만 더 같이 있어 주면 안 되겠니…”

그 말이 자꾸 머릿속을 맴돌았습니다.


눈물이 앞을 가렸고, 남편이 운전하는 차 안에서 저는 내내 울음을 멈출 수 없었습니다.

그 순간만큼은 제 자신이 너무나 미웠습니다.

아버지의 위급함을 알면서도 병원 직원의 말에 따랐던 내가 한심하게 느껴졌습니다.

거가대교를 지나면서도 제 눈물은 멈추지 않았습니다.


살면서 가장 후회되는 일이 있다면, 아버지의 마지막 순간에 곁을 지키지 못했다는 것입니다.

솔직히 아버지가 그렇게 쉽게 우리 곁을 떠나실 거라고는 생각하지 못했습니다.

치매를 제외하면 큰 건강 문제는 없으셨고, 몇 번의 위기도 잘 이겨내셨기에 이번에도 무사히 넘기실 거라 믿었기에 더 그랬습니다.


그 믿음이 저 자신을 더 원망하게 만들었습니다.

하지만 아버지를 뵈러 병원에 갈 때면, 아버지는 대부분 저희를 알아보셨습니다.

그리고 여전히 익숙한 농담도 잊지 않으셨습니다.

“너 그 찢어진 청바지 좀 그만 입으면 안 되냐?”

“넌 두상이 참 예쁜데 왜 맨날 모자를 쓰고 다니냐?”


그리고 가장 기억에 남는 아버지의 마지막 말.

침대에 누운 채로 어머니를 바라보며 조용히 하셨던 말씀.

“내가 이렇게 누워 있으니, 당신 생활비는 누가 벌어?”


그 시대의 아버지들이 그러했듯, 우리 아버지도 평생 가족을 위해 일하셨고,

마지막 순간까지도 어머니를 걱정하셨습니다.


그 따뜻한 눈빛과 한마디가 지금도 제 마음속에 가장 선명하게 남아 있습니다.

이제는 제 가슴 속에서 아버지를 조용히 그리워하며 살아갑니다.


후회도 많지만, 그만큼 감사했던 순간들도 많기에, 저는 오늘도 그리움 속에서 아버지를 따뜻하게 기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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