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치 없는 나, 그래도 괜찮아

고 맥락 언어, 저 맥락 언어

by 아우름언니

어떤 글을 읽으면서, 저는 제가 철저한 ‘저맥락 언어’의 소유자라는 사실을 새삼 깨달았습니다.

왜냐하면 저는 눈치가 정말, 너무도 없다는 걸 스스로 잘 알고 있기 때문이지요.


가끔은 이런 제가 어렸을 때 예민했던 오빠에게 자주 혼났던 이유가 그 때문이었나 싶기도 합니다.

눈치 없었던 제 일화는 참 많습니다.


그중에 하나는, 20대 후반쯤 부산에서 선을 봤던 일이에요.

그 당시 서울에서 직장 생활을 하고 있었는데, “서른을 넘기면 안 된다”는 어머니의 성화에 못 이겨 부산까지 내려가 선을 보게 되었죠.


결혼에 큰 관심은 없었지만, 마침 만나는 사람도 없었고, 호기심도 있어서 그냥 한번 나가봤습니다.

상대는 변호사 사무실에 근무한다고 했고, 저는 나름 서울에서 산다고 폼 잡으며 키 높은 하이힐까지 신고 멋지게 차려입고 나갔습니다.


서면에 있는 한 호텔 커피숍에서 만났는데, 어머니들과 우리는 따로 자리를 잡아 대화를 나눴습니다.

그런데 부모님들이 자리를 비우자, 그분이 남포동에서 친구들을 만나기로 했다는 겁니다.

그래서 저는 아무 생각 없이

“아, 그러세요?”

하고는 커피도 다 마시지 못한 채 따라 일어났습니다.


함께 서면 지하철역 개찰구까지 걸어가던 중, 그분이

“집이 어디세요?”

하고 물으시기에

“교대역 근처요”

라고 했더니, 교대역까지 가는 지하철 표를 끊어 건네주시더군요.


저는 멍한 표정으로 그걸 받아들며

“이게 뭐지?”

하고 있는데, 그분은

“서울에서 사신다기에 세련되긴 하시네요. 그럼~”

하고 말한 뒤, 휙 돌아서 남포동 방향으로 사라졌습니다.


순간 머리가 하얘졌습니다.

지하철역 쉼터에 멍하니 앉아 있다가 그제야 상황이 이해되었고, 저도 모르게 피식 웃음이 나왔습니다.

‘내가 얼마나 눈치가 없었으면 이런 수모를 당할까...’


바로 집에 들어가면 어머니가 눈치를 채실 게 뻔했기에, 일부러 시간을 끌며 한두 시간쯤 더 앉아 있었어요.

그리고 집에 들어가서는

“별로더라”

한 마디 툭 던졌죠.


예상대로 어머니의 잔소리 폭풍이 몰아쳤지만, 뭐… 감수해야 할 몫이었죠.

사실 맞선이라는 자리가 늘 두 사람의 마음이 잘 맞을 수는 없는 법이지요.

때로는 카페에 들어서는 순간

'아, 아닌가 보다'

하는 느낌이 들 때도 있고요.


하지만 저는 그래도 식사도 하고, 커피도 마시며 상대방의 좋은 점을 더 알아보려는 성의를 보였던 기억이 있습니다. 그건 상대에 대한 예의이자, 이 자리를 정성껏 마련해주신 분들에 대한 최소한의 예의라고 생각했기 때문이에요.


물론 저는 눈치가 없고, ‘고맥락 언어’를 제대로 읽지 못하는 사람이지만, 적어도 그분보다는 더 따뜻한 마음을 가진 사람이라는 생각에 조금은 위로가 되었습니다.


내가 잘못하지 않은 일에, 내가 괜히 기죽을 필요는 없다는 걸요.

최소한의 배려조차 하지 않은 사람의 행동이 문제였던 것이죠.


그리고 솔직히 말씀드리자면… 저도 그분이 전혀 마음에 들지 않았어요. ‘좀생이처럼 생겨가지고’라는 말, 정말 속으로는 열 번쯤 했답니다.


그런데 이런 일이 있고 나니 또 고민이 생깁니다.

우리가 인생을 살아가면서 사람과 사람 사이의 관계에서,

‘고맥락 언어’를 이해하고 눈치껏 움직이는 것이 좋을까요, 아니면 저처럼 ‘직접적인 표현’을 주고받는 것이 더 낫다고 봐야 할까요?


전 어차피 타고난 성향이 ‘저맥락’ 쪽이지만, 그래도 조금은 노력해야 할까요?

아니면 그냥 제 모습 그대로 살아가는 것이 정답일까요?

무엇이 더 현명한 길인지, 저는 아직 잘 모르겠습니다.


혹시 이 글을 읽어주신 이웃님들께서는 어떤 생각이 드시나요?

저처럼 마음 한편이 궁금하실 때, 조용히 함께 나누는 이야기가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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