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블리가 남긴 작은 경고

한블리, 도와줘~

by 아우름언니

평소에 TV를 자주 보는 편은 아니지만, 주말이면 미용실에 오시는 손님들을 위해 음악 대신 TV를 켜두곤 합니다.


그러던 어느 날, 우연히 ‘한블리’라는 프로그램을 보게 되었습니다.

‘한문철의 블랙박스 리뷰’라는 제목의 이 프로그램은 시청자들이 겪은 실제 사건들을 블랙박스 영상을 통해 보여주는 내용이었습니다.


그날 방송에서는 난폭 운전자의 이야기가 소개되고 있었습니다.

한 운전자가 진로를 방해받았다는 이유로, 어린 딸과 어머니가 타고 있던 차량을 끝까지 따라가 차를 세운 뒤, 창문을 두드리며 욕설을 퍼붓는 장면이었습니다.


그 모든 모습이 블랙박스에 그대로 담겨 있었는데, 화면을 보는 저도 덜컥 겁이 났습니다.

그 젊은 운전자의 난폭한 모습이 너무도 무섭게 느껴졌습니다.

예전에 저 역시 비슷한 경험이 있었습니다.


서울의 게임 회사에 다닐 때였는데, 밤새 야근을 마치고 아침 9시쯤, 집에 잠시 들러 씻고 옷을 갈아입고 다시 출근하던 길이었습니다.


햇살은 따스했고, 도로는 막혀 거북이걸음을 하고 있었지요.

피곤함이 몰려와 나도 모르게 잠깐 졸았고, 앞차를 ‘쿵’ 하고 들이받고 말았습니다.

너무 놀란 저는 급히 차에서 내려 연신 고개를 숙이며 사과드렸습니다.


그랜저에서 내리신 중년의 남성은 처음엔 굳은 표정이었지만, 제 태도를 보시곤

“조심하세요”

한마디만 남기고 자리를 떠나셨습니다.


그 순간 저는 안도의 한숨을 쉴 수 있었고, ‘정말 다행이다’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저는 본능적으로 누군가가 크게 소리를 지르거나 다그치면 몸이 먼저 얼어붙고, 무서움에 눈물이 나는 트라우마가 있습니다.


그래서 될 수 있으면 그런 상황을 만들지 않기 위해 늘 조심하며 살아가고 있습니다.

하지만 한 달 전, 또 한 번의 아찔한 순간을 겪게 되었습니다.


일요일 저녁, 일을 마치고 부산에 계신 어머니 댁으로 향하던 길이었습니다.

거의 다 와서 커브를 도는 순간, 옆차선에서

‘빵!’

하는 경적 소리가 울렸습니다.


순간, 제가 차선을 침범했을 수도 있겠다 싶어 미안한 마음에 비상등을 세 번 깜빡였습니다.

그런데 그 차는 계속해서

‘빵빵’

경적을 울리며 제 차에 바짝 붙어 따라왔습니다.

검은색 SUV 차량이었습니다.


불안한 마음에 비상등을 다시 다섯 번 정도 켰지만, 상대는 멈추지 않았습니다.

어머니 집 근처 골목으로 들어섰는데도 여전히 그 차는 뒤를 따랐고, 창문을 내리고 무언가 소리를 지르기까지 했습니다.


겁이 덜컥 났습니다. 혹시 영화에서처럼 괴한이 따라오는 건 아닐까, 별별 생각이 다 들었습니다.

엄마 집 앞에 차를 세우는 것도 망설여졌고, 결국 다른 골목으로 방향을 바꾸었지만 그 차는 또 따라왔습니다.

더는 피할 곳이 없다는 생각이 들어 큰 길로 나왔고, 신호에 걸려 멈춰설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때, 그 남성이 제 차로 다가와 창문을 두드렸습니다.


머릿속이 새하얘졌고,

‘아, 정말 무슨 일이 생기겠구나’ 하는 공포가 밀려왔습니다.

겁에 질린 저는 조심스럽게 창문을 내렸습니다.


“아니, 차를 치어놓고 그냥 가시면 어떡합니까? 뺑소니예요!”

“네? 제가요...? 정말 몰랐어요. 죄송합니다…”

정말 아무런 충격도 느끼지 못했습니다.


하지만 솔직히 말하자면, 그때 유튜브로 영어 단어를 들으며 운전 중이었기에, 저의 부주의일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저쪽으로 차를 대보세요.”

저는 바로 도로 가장자리로 차를 세우고, 얼른 내렸습니다.

그리고 다시 한 번 고개를 깊이 숙이며 사과드렸습니다.

“정말 죄송합니다. 정말 몰랐습니다…”

그제야 그분은 한숨을 내쉬며 말씀하셨습니다.

“그런데 도망은 왜 그렇게 갔어요?”

“…너무 무서워서요…”


사실, ‘한블리’를 보고 난 뒤로 난폭운전자에 대한 공포심이 생겼다는 말씀을 차마 드릴 수는 없었습니다.

그분은 잠시 어이없다는 표정을 지으시다가, 어느새 굳었던 표정이 누그러졌습니다.

그 순간, 저도 안도했습니다. ‘이분은 나쁜 분은 아니구나.’


차는 새 것이었고, 사이드미러를 살펴보니 별다른 이상도 없었습니다.

그분은 “앞으로는 사고가 났는지 꼭 확인하고 가셔야 합니다” 하고 한 번 더 주의를 주시고,

“근데 나이도 있으신 분이 그렇게 겁내며 도망가는 건 좀 그렇네요…” 하시며, 웃음 섞인 표정을 지으며 떠나셨습니다.


저는 여전히 두근거리는 가슴을 쓸어내리며 다시 운전석에 앉았습니다.

많은 생각이 들었습니다.


어쩌면, 저는 차를 치지 않았을 수도 있고, 그분의 반응이 조금 과했을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저는 무조건 도망쳤고, 먼저 내려서 고개 숙여 사과드렸습니다.

이미 20대도 아닌 제 나이에, 상대 역시 비슷한 연배처럼 보였는데, 저는 또다시 그 상황이 너무 두려웠습니다.


그 순간, ‘나는 참 바보 같고 미련스럽구나’라는 생각이 스쳤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싸움 없이 상황이 무사히 마무리된 것에 감사하며 저 자신을 다독였습니다.

그리고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습니다.


만약 ‘한블리’를 보지 않았다면, 나는 어떻게 행동했을까요?

너무 많은 정보는 때로 나의 판단력을 흐리게 하기도 하지만, 그 경험이 없었다면 더 무서운 상황으로 번졌을지도 모른다는 생각도 들었습니다.


이런 일도, 어쩌면 저에게는 꼭 필요한 작은 경험이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조심스럽고 겁이 많은 제가, 세상을 살아가는 법을 또 하나 배운 날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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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전 18화저, 상 받았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