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쌓아온 시간
어린 시절, 수줍음이 많아 어머님의 치맛자락을 잡고 숨어서 세상을 바라보았던 저는 초등학교에 입학하면서 그 수줍음이 더 심해졌습니다. 키가 컸던 탓에 줄을 서면 항상 맨 뒷줄 마지막에 혼자 서야 했고, 그래서 교실에서도 운동장에서 조례를 할 때도 짝지가 없어서 늘 혼자였습니다. 저는 그게 가장 싫었습니다. 게다가 눈에 잘 띄다 보니 선생님께 자주 지목을 당해 얼굴이 빨개지곤 했고, 그럴수록 부끄러움은 점점 더 심해졌습니다.
하지만 좋았던 일도 있었습니다. 키가 크다 보니 체육 선생님 눈에 띄어 육상 선수도 하고, 수영 선수도 했던 일이었습니다. 그때 다져진 체력이 아직도 남아 있는 것 같아 조금은 마음이 흐뭇합니다. 운동을 하면서는 좋은 기억들이 많습니다. 친구들과 함께 땀 흘리며 연습할 때는 상쾌하고 뿌듯했고, ‘스포츠맨십’이라는 소중한 정신도 알게 되었습니다. 운동 연습 후, 학교에서 간식으로 주셔서 부셔 먹었던 생라면의 바삭함과 고소함은 지금도 잊을 수가 없습니다.
초등학교 때 ‘부모님께 편지 쓰기’ 수업을 하고 어머님께 편지를 드렸는데, 어머님께서 글을 잘 쓴다고 칭찬해 주셨습니다. 그때부터 저는 그저 제가 글을 잘 쓰는 줄 알고 글쓰기를 좋아했던 것 같습니다. 어린 동생을 위해 동생이 주인공인 동화책을 써서 읽어 주기도 했고, 만화책도 만들어 주었습니다. 6학년 때는 ‘시조 쓰기’ 경연 대회가 있었는데, 50분 동안 제가 52개, 남학생 친구가 54개를 써서 결국 2등을 했지만, 그래도 저는 뿌듯했습니다. 제가 외운 걸 거의 1분에 한 편씩 써내려갔던 거니까요.
얼마 후, 학교에서 교내 학예회가 열렸는데, 영광스럽게도 제 시가 우리 반에서 당선되어 반 대표로 출품하게 되었습니다.
“가을의 코스모스 한들한들 춤추네.
무엇 때문에 춤추니?
바람이 간질여서 간지러워 춤추니?
상쾌한 가을 하늘 맑고 맑아 춤추니?
나에게 가르쳐 주지 않으련?”
비록 동시가 아니라 시조 느낌의 ‘시’였지만, 저는 그때 소중한 깨우침을 얻었습니다. 뭐든 열심히, 그리고 꾸준히, 많이만 하면 이룰 수 있다는 것을. 시조 60여 개를 외웠더니 바로 시 한 편이 나왔으니까요. 심지어 그전에는 시가 뭔지도 몰랐었는데도 말입니다.
고등학교 때는 공부는 하지 않고 ‘하이틴 로맨스’에 빠져 읽다가 연애 소설을 썼습니다. 장편(두꺼운 공책), 단편(얇은 공책) 두 권을 썼는데, 한 번 쓰기 시작하면 수정도 없이 한 번에 마무리까지 내리썼으니 ‘연애소설’을 얼마나 많이 읽었으면 그게 가능했을까요? 내용은 당연히 유치하고 엉망이었을 것입니다. 탈고하고 나면 친구들에게 돌려가며 뒷장에 후기를 받았던 것도 기억납니다. 그 소중한 제 보물들은 동생이 허락도 없이 친구들에게 빌려주곤 해서, 결국 모두 잃어버리고 말았습니다. 동화책도, 소설책도 그리고 시와 그림이 있던 액자도.
사랑하는 아버지의 60세 생신 때는 그동안 아버지와 나누었던 편지들과 제가 자라면서 보았던 아버지의 멋진 모습을 글로 옮겨 책으로 만들어서 선물로 드렸습니다. 제 인생의 첫 에세이집이었습니다. 미용 일을 하면서 마케팅 때문에 블로그로 글을 자주 쓰다 보니, 예전의 글쓰기를 좋아했던 저의 본성이 꿈틀거렸나 봅니다. 돌고 돌아서 결국 본격적으로 제 이야기를 쓰기 시작했습니다.
2013년, 제가 쓴 최초의 블로그 글은 미용에 관한 이야기였지만, 꾸준한 책 리뷰와 글쓰기도 잊지 않았습니다. 지금만큼 열정적이진 않았던 읽기와 쓰기였지만, 그래도 꾸준히 읽고 써왔던 것이 지금의 밑거름이 되지 않았나 생각해 봅니다. 분명 그 모든 경험들이 '저'라는 사람을 만드는 데 중요한 밑거름이 되었을 것입니다.
***이렇게 마음을 먹었습니다.
과거의 경험을 자산으로 삼기로 마음먹었습니다.
긍정적인 마음으로 저 자신을 탐구하고 발전시켜 나갈 것입니다.
작은 재능이라도 꾸준히 갈고닦으면 큰 결실을 맺을 수 있다는 것을 믿고, 포기하지 않고 정진할 것입니다.
제 내면의 목소리에 귀 기울이고, 좋아하는 일을 즐기면서 살아가는 것이 행복의 비결임을 명심하고 실천할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