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MF, 신발공장, 그리고 내 안의 단단함

그 일이 그 사람을 만든다.

by 아우름언니

자기 계발 동기부여가이자 저술가인 브라이언 트레이시도 젊은 시절, 접시를 닦는 일을 했었다고 합니다. 그러니 제가 해왔던 다양한 경험들도 누군가에게는 재미있는 이야기가 될 수 있을 거라는 생각이 듭니다. 접시 닦는 일보다 더한 일도 해본 적이 있으니까요. 저는 일에는 귀천이 없다고 생각합니다.


IMF 시절, 잘나가던 저희 벤처기업이 문을 닫고 무일푼이 되었을 때도 저는 낙담하며 집에만 드러누워 있지 않았습니다. 첫 직장을 그만두고 보름 동안 무직으로 지냈던 경험을 통해, 집에만 있으면 점점 무기력해진다는 걸 이미 알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아무것도 하지 않으면 생각조차 흐려지고, 무언가를 생각하더라도 일을 하면서 하는 것이 훨씬 나은 아이디어로 이어진다는 것도 느꼈습니다. 특히 마음이 복잡할 때는 육체적인 노동이 가장 효과적이라는 사실도 알고 있었기에, 마음을 다잡을 겸 가락동의 한 횟집 식당에 접시 닦는 일로 취업을 했습니다.


사실, 회를 너무 좋아해서 횟집의 시스템이 궁금하기도 했고, 식당 일은 어떤지 경험해보고 싶기도 했습니다. 좋은 경험이 될 거라는 기대감으로 시작한 그 일은 생각보다 훨씬 즐거웠습니다. 출근하자마자 해야 할 일은, 전날 세탁해 널어놓은 수건과 목장갑을 정리하고 아주 큰 찜솥에 미역국을 끓이는 일이었습니다. 미역과 물, 참기름, 소금만 넣으면 되는 간단한 일이었죠. 그리고 주방장과 홀 담당 실장님이 출근하시면 본격적인 하루가 시작됐습니다. 정신없이 설거지만 하는 시간도 좋았습니다. 때로는 바쁘게, 때로는 느리게 흘러가는 그 시간이요.


어릴 적, 저희 부모님은 함께 가내수공업을 하셨기에 저희도 자연스럽게 많은 일을 도왔습니다. 그리고 그 일이 저는 참 재미있었습니다. 어릴 때부터 운동을 많이 해서인지 몸을 움직이는 육체노동은 제 마음과 몸을 오히려 맑게 해주는 느낌이었습니다. 물론 그건 가끔일 때만 그렇겠지만요.


대학 입시에 실패했을 때, 제 마음은 무척 복잡했습니다. 학력고사 점수는 좋았지만 미술 실기 시험에서 탈락했기 때문입니다. 실기 시험도 잘 보았다고 생각했기에 그 결과가 더 마음 아팠습니다. 그때 저는 복잡한 마음을 잠시 잊고 싶어서 신발 공장에서 일을 하기로 했습니다. 재수학원 개강을 앞두고 있는 기간 동안, 아무 생각 없이 몰두할 수 있는 일을 하고 싶었거든요. 당시 저희 집은 부산 당감동에 있었는데, 그곳은 신발 공장이 밀집된 지역이었습니다. 그래서 그런지 대규모 공장에서 어떤 일이 벌어지는지 궁금하기도 했습니다. 제가 맡은 일은 옆자리 ‘프레스’라는 큰 기계로 남자 직원이 찍어낸 다양한 신발 패턴을 종류별로 분류하는 것이 전부였지만, 단순노동에 몰두할 수 있는 점이 참 좋았습니다.


가끔은 아주 맑은 정신으로 재수 생활 계획을 세워보기도 했습니다. 지금 돌아보면, 그 모든 경험들이 다 소중한 시간이었습니다. 몸을 쓰는 일이든 머리를 쓰는 일이든, 늘 움직이고 배우려 했던 제 과거가 참 좋습니다.

영어 수업 시간에 ‘다시 살아보고 싶은, 후회가 되는 과거가 있다면 돌아가고 싶은가요?’라는 질문을 받은 적이 있습니다. 저는 ‘그 어느 때도 돌아가고 싶지 않다’고 대답했습니다. 제가 겪어온 모든 과거는 하나같이 소중한 경험들이기 때문에, 어느 한 시점이라도 후회하고 싶지 않기 때문입니다. 지금의 저를 만든, 그야말로 귀중한 자산들이니까요.


사람은 결국 자신이 해온 일로 만들어진다고 생각합니다. ‘그 일이 그 사람을 만든다’는 말처럼요. 그래서 저는 지금도 제 일을 사랑하며, 늘 최선을 다하고 있습니다. 틈틈이 책을 읽고, 글을 쓰는 삶도 계속 이어가고 있고요. 아무도 모릅니다. 언젠가 제가 첫 종이책을 내고, 교보문고 입구에서 멋진 테이블에 앉아 사인회를 열고 있을지. 그날은 수많은 분들이 제 앞에 줄을 서서 저를 반갑게 바라보고 계실지도 모릅니다.

저는 지금도 행복으로 가득 찬 미래를 꿈꾸고 있습니다.


***이렇게 마음을 먹었습니다.


저는 어떤 일이든 부끄러워하지 않기로 마음먹었습니다.

흘린 땀방울만큼 제 삶이 단단해진다는 걸 믿기로 했습니다.

겪는 모든 경험을 삶을 빚는 재료로 삼기로 결심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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