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혼의 소리에 귀 기울이
생각해 보면, 저에게도 수많은 유혹들이 있었습니다. 어찌 보면 당연한 일이겠지요. 이미 반평생을 살아온 인생이니까요. 고등학교 시절에도, 재수 시절에도, 사회생활을 하면서도, 그리고 지구 반대편의 먼 나라 과테말라에서 생활할 때조차, 다양한 유혹들이 여러 방식으로 저를 찾아오곤 했습니다.
그중에서도 가장 기억에 남는 것은 재수 시절의 일이었습니다. 저는 고등학교 때부터 부산 초읍동에 있는 미술학원에 다녔었는데, 재수를 하게 되면서 더 간절한 마음으로 조금 더 이름 있는 학원을 찾게 되었습니다. 그렇게 저는 홍익대학교 출신 원장님이 계셨던 범일동의 한 미술학원으로 옮기게 되었고, 그곳에서 지금까지 만나온 친구들과는 조금 다른 분위기의 친구를 만나게 되었습니다.
뭐가 정확히 달랐는지 콕 집어 말하긴 어렵지만, 그 친구는 늘 조용히 소곤거리듯 말했고, 곁눈질을 자주 하며 자주 웃긴 했지만 어딘가 특이한 면이 있었습니다. 당시 입시에 실패한 충격으로 마음이 침울했던 저는 저를 따르고 좋아해 주는 그 친구가 편했고, 그래서 더 잘 어울렸던 것 같습니다. 그림 실력도 좋아서 배울 점도 많았고요. 다만 그 친구는 자신의 가정사에 대해서는 말을 아끼고, 미술학원비도 자주 밀려 형편이 넉넉지 않다는 느낌만 받을 수 있었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친구의 모습이 달라지기 시작했습니다. 액세서리를 하고 화장도 진해졌으며, 표정도 더 밝아졌습니다. 그러더니 어느 날 비싼 점심을 사주며, 정말 편하고 좋은 아르바이트가 있다며 함께 하자고 권했습니다. 아는 사람도 없는 곳이라 혼자 일하기 심심하다면서요. 어떤 일인지 물어보니, 그냥 치마만 입고 앉아만 있으면 된다는 말에 순간 당황하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아마 저를 너무 순진하게 본 건 아닐까 싶었습니다.
저는 이미 다양한 아르바이트를 해본 경험이 있었기에, 쉽게 벌 수 있는 돈에는 반드시 그만한 대가가 따른다는 것을 알고 있었습니다. 게다가 두 곳의 학원을 병행하느라 시간도 빠듯했고, 굳이 돈이 더 필요하지도 않았기 때문에, 어색한 웃음으로 그 제안을 넘겼습니다. 물론 잠깐이지만, 운동으로 종아리가 굵어서 치마를 입지 않는데 ‘내가 과연 치마를 입고 그런 일을 할 수 있을까?’ 하는 생각이 스쳤던 것도 사실입니다.
그 일 이후 친구는 점점 더 사치스러워졌고, 학원에도 자주 나오지 않았습니다. 저는 통학 거리 문제로 다시 예전 미술학원으로 돌아갔고, 자연스럽게 친구와의 연락도 끊기게 되었습니다. 저보다 훨씬 그림을 잘 그렸고, 홍익대 진학을 꿈꾸던 그 친구는 지금 어디에서 어떻게 지내고 있을까요.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나니 다양한 삶의 길을 택한 친구들을 보게 되었습니다. 중학교 때 이름이 같았던 친구는 집안 사정이 어려워 부산 서면의 노래주점에서 일하고 있었고, 고등학교 시절 저의 방황기 시절 함께 지냈던 친구는 ‘가출하자’고 했던 친구인데, 결국 고등학교를 중퇴하고 부산진역 근처에서 살고 있다는 소식을 듣기도 했습니다.
물론 은행원이 된 친구, 공무원이 된 친구, 작은 회사의 직원이 된 친구들도 많습니다. 우리 시대에는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바로 사회로 나가는 경우도 많았으니까요. 그 일들이 유혹 때문이었는지, 혹은 스스로의 결단이었는지는 알 수 없습니다. 다만 어떤 일을 하며 살아갈 것인가는 반드시 자신의 결단과 노력이 필요한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어떤 상황에서도 바른 길을 걷고자 한다면, 결국 그 길은 우리 앞에 놓이게 마련입니다.
저는 지금까지 수많은 유혹을 지나왔지만, 단 한 번도 그릇된 길에 발을 들인 적이 없습니다. 부모님께서 부족함 없이 살아갈 수 있도록 길을 닦아주신 덕분도 크지만, 무엇보다 저 자신을 아끼고, 제 가치를 지키고자 했던 노력이 있었기에 가능한 일이었습니다.
어떤 상황에서도 흔들리지 않으려 했던 마음.
‘사필귀정 事必歸正’— 결국 모든 일은 바른 길로 돌아온다는 그 믿음을 지키고자 했던 노력.
그 믿음이 저를 지금까지 지탱해준 가장 큰 힘이 되었습니다.
***이렇게 마음을 먹었습니다.
저는 유혹 앞에서 어떤 선택을 하느냐가 곧 제 삶을 만든다는 사실을 잊지 않기로 마음먹었습니다.
순간의 판단이 평생을 흔들 수 있다는 걸 알기에, 저 자신을 아끼고 지키기로 결심했습니다.
이제는 조용한 내면의 소리에 더욱 귀 기울이며, 제 빛을 따라 바른 길을 걷기로 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