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생에 지름길은 없다.

잡채 하는 날.

by 윤슬


오늘 저녁은 잡채를 해 먹으려고 해요. 음.. 냉장고를 한 번 보자.. 역시나 손이 작은 주인의 냉장고엔 재료라곤 없네요. 매일 조금씩 식재료를 사서 하루에 먹어 치우다 보니 냉장고 안은 늘 텅 비어 오늘 이사 온 집 냉장고 같아요. 누가 보면 아무것도 안 해 먹고 사는지 알겠어요.


장을 보러 가야겠네요. 음 뭐가 필요한지 적어 볼까요. 당면, 파프리카 노랑. 빨강, 사각어묵, 표고버섯, 잡채용 고기. 이만하면 됐네요. 다른 재료는 집에 있으니 꼼꼼히 적은 종이를 챙겨 마트로 걸어갈게요.


음. 마트에 왔는데 뭔가 허전해요. 아 ec. 역시나 준비물을 적은 종이는 집에 두고 왔어요. 제가 그렇죠. 요즘 마트에 가면 필요한 것 빼고 다사오고 막 그러거든요. 하하. 그래도 괜찮아요. 두 번의 출산 후 자주 있는 일이라 이젠 익숙해졌어요. 자. 당황하지 않고 이미 굳어 버벅거리는 뇌를 풀가동해 봐야죠. 자. 기억을 더듬어 겨우겨우 재료를 다 사고 마트를 나왔어요. 늘 생각하지만 뚜벅이인 제게 장을 본 짐은 좀 많이 무겁네요. 매번 양쪽 손에 번갈아 들어야 하지요. 그렇지 않으면 팔에 근육통이.. 피도 안 통하고 그렇답니다. 네. 운동 부족인지라 장보따리 드는 것도 버거워요. 흑흑


아~ 짐은 무겁고 햇살은 뜨거워서 날은 더운데 탁 트인 시야 하나만은 너~무 좋네요. 매일 장을 보는 이 시간 외에 긴 시간 외출이 잘 없어서 이 시간은 최대한 멀리 보려고 노력해요.


앗. 오늘따라 길가에 옷 가게며, 액세서리 가게, 베이커리 가게 등 여러 가게들이 눈에 띄네요. 잠시 머뭇거리다 다 들어가 보기로 했어요. 이것도.. 저것도.. 요것도 구경을 하고 집으로 돌아오는 길. 늘 그렇듯 멍하니 생각에 잠겼어요. 네. 맞아요. 저는 혼자 사색에 잘 빠지고 그렇게 멍 때리다 보면 어느새 생각이 우주 끝까지 가 있는 일이 다반사예요.




한 때 내가 걷던 그 길이 지름길이라고 확신한 적이 있었어요. 이길로 가면 내가 원하는 도착지에 누구보다 빠르게 도착할 거라는 확신이 있었어요. 그땐 참 어리고 어리석었죠.


그 길을 걷는 동안에도 같은 길 위의 그 누구보다 빠르게 걸었어요. 속보로 걸었지요. 옆도 뒤도 돌아보지 않고 말이죠. 확실히 같은 길 위의 어떤 사람들보다 나는 빨라 보였지요. 걷던 길 옆엔 돌아가는 길인지 다른 곳으로 향하는 길인지 모를 여러 길들이 나왔어요. 가끔은 그 길들이 궁금하기도 했지만 다른 길을 기웃거리는 건 시간 낭비에 불과하다는 생각이 컸어요.


그렇게 다른 사람들은 옆도 뒤도 돌아보고, 벤치에 앉아 쉬어가며 걷기도 할 때, 저는 쉬지 않고 걷고 또 걸었어요. 아. 드디어 목적지가 보이는지 희미하게 무엇이 보였어요. 조그만 더 힘을 내 조금만 더. 발엔 온통 물집이 잡혀 걷기 힘들었지만 마지막 힘을 다해 걸었어요. 드디어 희미하게만 보였던 형체가 눈앞에 또렷해졌어요. 아.. 어쩌지.


막다른 길이었어요. 저는 아파서 더 이상 걷지 못하고 철퍼덕 주저앉았어요. 그곳에서 물집이 터지고 말라 딱지가 앉을 때까지 기다릴 수 없었어요. 잠시 쉬고 정신을 차린 뒤 되돌아 걸어 나왔지요. 같은 길을 돌아 나오면서 그제야 오던 길에 만났던 여러 길들이 눈에 들어왔어요. 그래요. 이젠 그 길들을 들려 구경도 하고 그곳이 내가 찾던 길이 아니라면 돌아 나와 다음번 길도 들어가 보고 있어요.


지금이 몇 번째 들어선 어느 길인지 길이름조차 모르겠어요. 그냥 길이 보이는 대로 다 걸어 보려 해요. 이젠 이것 또한 인생의 묘미고 행복이란 걸 알게 되었어요.



인생에 정해진 길은 없어요. 지름길 또한 있을 리 없지요. 우리 지금 어딜 보며 걷고 있는지 생각해봐요. 옆도 뒤도 돌아보지 못하고 앞만 보고 있을지도 몰라요.


우리 앞서가는 이와 비교하여 자책하지 말기로 해요.

누구의 길이 앞서 도착하는 길인지, 막다른 길이라 돌아 나와야 하는 길인지는 도착지를 밟아보지 않고선 누구도 장담하거나 알지 못해요.


우리 그것만 잊지 말아요. 막다른 길을 만나도 당황하지 않고 다시 돌아 나오는 용기를 잊지 말아요. 돌아가도 되고 쉬어 가도 돼요. 우리 지치지 말고, 포기하지만 말아요.


네. 잡채 재료 사러 갔다가 또 우주 끝까지 갈기세에요. 이제 집에 왔으니 우주여행은 마칠게요. 그럼 이제 잡채 요리를 맛깔나게 만들어 볼까요. 오늘 저녁 가족들과 맛있게 먹을 생각으로 사랑을 담뿍 담아 정성 들여 만들어보려고 해요.



다 먹고살자고 하는 짓이잖아요.

우리 잘 먹고 걷기로 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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