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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흔들의자 Sep 29. 2022

#10. 윗사람만 바라보는 팀장이 되지 않겠습니다.

그동안 겪어온 다양한 리더들의 군상을 통해 '타산지석'의 사료를 써봅니다

이런 표현들은 상무님이 싫어하실 거라,
일단 빼고 처음부터 다시 써보자.


 오늘도 회의실에 모여 부질없는 보고서 날 세우기를 하고 있다. 주제에 맞게 배열된 Fact들과 그 Fact들을 관통하는 핵심적인 의견, 그리고 반대의견을 방어하기 위한 일부 보조적인 지표들까지 며칠 간의 지난한 회의와 수정 작업의 반복을 거쳐 보고서는 거의 완성 단계에 이르렀다.   


 그러나 보고서가 완성되어 갈수록 윗분들에게 보고할 시간도 가까워져 오기에 오늘도 팀장은 윗분들이 좋아할 만한 표현/문구들을 찾아 보고서의 망망대해를 헤엄치기 시작했다. 기준은 오직 하나다. 상무님이 좋아할 만한 의견/표현인지, 아니면 불편해 할 수 있는 의견/표현인지. 내용의 정합성과 Fact의 충실함 등은 그에게 중요하지 않다. 윗분들의 선호와 취향을 좀 더 잘 맞추기 위해 완성단계의 보고서는 자꾸만 뒤집어지고, 그로 인해 팀원들은 지쳐감에도 팀장은 그런 것은 안중에도 없다. 

 



상무님, 평소 의견 주신 것들 최대한 반영해서 작성해 보았습니다.


 우리 팀의 의견이나, 팀장 본인의 의견이 아닌 상무님 당신의 의견을 최대한 반영했음을 보고 첫머리에 밑밥으로 깔고 시작한다. 하지만 이러한 밑밥이 언제나 긍정적인 결과를 가져오는 건 아니다. 


 상무 또한 전무, 부사장 등 윗분들에게 보고를 해야 할 사안이라면 그럴만한 수준의 보고서인가, 그 내용의 정합성이 단단하고 논리 정연한가를 들어 판단하게 된다. 평소 그가 해왔던 주장을 얼마나 담아왔는가는 중요하지 않다. '통과될만한 결과물인가, 아닌가'가 중요할 뿐이다. 결국 그도 더 높은 누군가의 재가를 받아야 함은 동일하기에.


이 팀장, 이건 평소 내 생각과는 다른 거 같네요. 

 확률은 누구에게나 공평하다. '통과되느냐, 마느냐' 언제나 반반의 기대치를 갖고 보고에 임하지만, 우리 팀장의 타율은 누가 봐도 9번 타자 수준이다. 10번 중 2번 정도 통과할까 말까이다. 


 "누가 봐도 이해하기 쉽게 풀어서 써보세요",  "스토리라인도 좀 더 보강이 필요해 보이네요" 등 누구라도 할 수 있을법한 코멘트로 첫 보고는 반려되었다. '초등학생도 이해할만한 수준으로 쉽게 쓰라니'... 그럼 우리 사업은 초등학생도 할 수 있을 정도로 만만한 사업이라는 건가... 반항 기질이 스멀스멀 올라오지만 애써 마스크 뒤로 표정을 숨기며 참는다. 

 

사랑, 아니 보고서는 돌아오는 거야!

 '천국의 계단'이 아닌 '단순노동의 계단'이다. 언제나 이번이 마지막 작업이길 기대하며 보고에 임하지만, 그 기대는 여지없이 무너졌고 다시 돌아온 보고서를 속절없이 수정하고 있을 뿐이다. 그리고 수정하고 있는 보고서의 방향성은 이제 상무님이 맘에 들어할 것인가, 아닌가로 귀결되어가고 있다. 


 해바라기처럼 상무님의 의견을 받드는 팀장은 '우리가 좀 더 상무님의 의견을 잘 담아내야 한다', '우리가 부족할 부분을 잘 보강하면 승인해 주실 거다'와 같은 논리로 윗분을 절댓값으로 삼는다. 그리고 그 절댓값에 조준해 또다시 지난한 수정 작업을 하고 있을 뿐이다. 


해바라기는 조직의 건강한 성장을 막는다


 리더는 조직의 의견을 대표함을 유념하자. 그저 윗분만 바라보는 해바라기 같은 팀장이 되지 말자. 윗분이 움직이는 것에 따라 일희일비하는 팀장이 되지 말자. 내가 (작지만) 조직의 책임자임을 잊지 않는 리더가 되자. 때로는 불합리함과 부당함에 맞서 조직원을 대변하는 리더가 되자. 그저 YSE맨 인 리더가 되지 말자. 나만의 기준점이 없이 윗분을 절댓값이자, 기준으로 삼는 리더가 되지 말자.




조 상무, 기대했던 것에 비해 조금 실망스럽네요. 


 대망의 부문장(전무) 보고 당일, 안타깝게도 우리 상무도 타율이 좋지 않다. 9번보다 약간 앞선 7,8번 타순이면 적당할 것 같다. 그렇게 두 타자가 모두 헛스윙을 하니, 또다시 지난한 수정 작업의 연속이다. '보고만 하다가 사업 접겠다'라는 푸념과 자조 섞인 말들을 내뱉지만, 그래도 작고 소중한 월급을 지켜내기 위해 한결같은 해바라기 팀장과 오늘도 야근의 연속이다.  




이미지 출처:Photo by Thanuj Mathew on Unsplas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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