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흔들의자 Oct 07. 2022

#15. 우리 제품의 차별점은.. [판타스틱 4]!!

(직장 내)소시오패스가 만연한 시대, 고군분투 직장 생존기  Vol.2

이 글은 소시오패스 직장상사 밑에서 오늘도 온갖 고초와 어려움을 겪고 있는 직장인 분들에게 드리는 위로와 공감의 글이 아닌, 제 스스로가 겪은 지옥 같은 직장생활에 대한 기록이자, 그들의 만행을 잊지 않고 그들과는 같은 길을 걷지 않겠다는 '타산지석의 사료'임을 밝힙니다
*극 중 등장하는 인물/단체/사업/사연 등에 유사함을 느낀다면, 당신 상사도 소시오패스 입니다.
**극 중 등장하는 인물/단체/사업/사연은 모두 허구입니다만, 일부 경험담에 기반했습니다.


 소비자들에게 선택받는 제품들은 그 이유가 여러 가지 이겠지만, 결국은 경쟁하는 여러 제품들과는 다른 차별화된 가치를 제공하기 때문일 것이다. 그것이 가격, 디자인, 성능, 브랜드 등 다양하고 복합적인 경우가 많겠지만 결국은 차별화라는 한 단어로 퉁쳐서 설명되곤 한다.


제품을 개발하다 보면 경쟁 브랜드와는 달라야 한다는 '차별화의 늪'에 빠져 대체 이런 걸 왜 만든 거지? 싶은 괴작이 나오기도 한다. 소비자가 느끼는 효용가치의 개선이냐에 초점을 맞춘 것이 아닌, 그저 경쟁자의 것들과는 달라도 확연히 달라야 한다는 '차별화 강박증'은 결국 소비자의 외면을 불러오고는 한다.  




6월 초 어느 월요일 오전 10시, 사업부 개발회의 (32층 컨퍼런스룸)
"개발 1 팀장, 이번에 런칭하는 우리 제품의 차별점은 무엇인가요?"

"이번에 새롭게 출시할 제품들은 일단 전체적인 제품 외관을 기존의 직선 일변도에서 벗어나 라운드 형태로 제작하고, 소재도 이태리산을 사용해 표면의 터치감과 Look&Feel에서 고급감을 한층 높인 것이 특징입니다. 내부 구조/보강재들도 기존보다 두께를 3mm 정도 두껍게 해 내구성을 높였고, 내부 마감 소재에 방수처리를 하여 일부 비용 상승이 있긴 하지만 내수성/내구성도 강화했습니다."

"길게 얘기하면 소비자들이 다 안 들으니까 줄이면 한 4가지 정도 차별점이 있다는 거네요?"

"네, 맞습니다. 디자인과 고급감, 내구성, 내수성에서 차별점이 있습니다."

"그럼 그걸 고객들이 알아듣기 쉽고, 한 번에 인지할 수 있는 이름을 붙여보면 어떨까요? 그렇게 주저리주저리 쓰면 영업사원들이 설명도 어렵고...."

"아직 그 부분까지는 고려해보지 못해서 마케팅 팀과 논의한 뒤, 다시 보고 드리겠습니다."

"아니 아니.. 마케팅하는 친구들은 또 화려한 미사여구만 갖다 붙일 테니, 판타스틱한 차별점이 4가지다.. 판타스틱 4 어때요? 우리 제품의 차별점은 판타스틱 4! 입에 착 붙고 좋은 거 같은데..."

이런 어메이징 한 흐름의 대화들을 회의록으로 적고 있는 내가 일순간 부끄러워지는 반면, 회의에 참석한 대부분의 팀장들은 '좋은 네이밍이다', '영업 일선에서 활용하기 좋은 표현이다' 등등 너도나도 앞다투어 긍정적인 반응 일색이었다.


내가 이상한 걸까, 아니면 그들의 처세술이 좋은 걸까. 설마 진짜 저렇게 차별점을 네이밍 해서 소비자 앞에 내놓지는 않겠지, 마케팅 부서에서 잘 커트해 줄 거야라는 기대는 불과 몇 주 뒤 놀라운 결과물로 되돌아왔다.


6월 말 무더위가 시작된 어느 월요일 오전 10시, 사업부 마케팅 회의 (32층 컨퍼런스룸)
"지난번 개발회의 때 상무님이 주신 좋은 아이디어를 반영하여 신규 런칭 제품들의 특징을 소비자가 직관적으로 이해하기 쉽게, '판타스틱 4'라는 키워드로 정리하겠습니다. 각각의 차별점을 경쟁사의 제품과 1:1로 비교하는 내용을 집중적으로 부각하여 어떠한 점이 판타스틱한 차별점 4가지인지 소비자에게 인식시키는 활동들을 집중할 예정입니다. 이를 위해 각 매장에 POP부터.... (중략)"

"이번엔 마케팅팀에서 고민을 좀 한 거 같네요. 좀 더 날을 세워보자면, 판타스틱이라는 용어를 한글 말고 영어로 쓰되, 글꼴도 디자인 연구소에 의뢰해서 눈에 띄고 심미적으로 미려해 보이면서 소비자의 이목을 끌 수 있는 그러한 폰트를 새로 만들어 쓰는 걸로 합시다. 디자인 센터장에게는 내가 미리 전화해놓겠습니다."

"네 알겠습니다. 디자인 쪽에서 신규 폰트 제작하는 일정에 맞춰 전 제품 및 매장 내 Sales Kit에 우선적으로 적용하도록 하겠습니다."

개발부터 마케팅, 디자인까지 모든 분야에 두루 통달(?) 한 조 상무의 말 한마디 한마디에 사업에 대한 모든 결정이 뒤바뀌었다. 흡사 독단적인 오너회사에서 벌어지는 좌충우돌 시트콤을 보는 느낌이 들 정도였다.


모든 걸 그의 독단적 결정이 잘못되어 이런 결과를 낳은 것이라 치부할 순 없었지만, 그에겐 거칠 것도 없었고 그를 막아설 브레이크도 없었다. 그저 불도저처럼 본인이 생각하는 바를 밀어붙였고, 주변은 그것을 방관하거나 편승해 열광적으로 지지하거나, 뒤에 숨어 욕하거나 세 부류로 나뉘었을 뿐이다.




새롭게 출시된 제품들이 매장에 전시되고, 소비자들에게 판타스틱 4라고 차별점이 소구 되기 시작하며 우리는 새로운 핀잔을 듣게 되었다. 어메이징 4! 이러한 소소한 내용들을 대단한 것처럼 포장하는 조 상무의 능력이 진짜 어메이징 하다는 말로 비꼰 것이었다.


매장 전시물 및 영업 Sales kit 등 신제품 설명과 관련된 오만가지 자료들에서 판타스틱 4라는 용어가 가장 눈에 띄게 노출되었고, 차년도 신제품이 출시되어 그 표현이 사라지지 전까지 우리는 다른 사업부 구성원, 심지어 외부 경쟁사 직원들에게 까지 어메이징 4라는 놀림과 굴욕을 당해야 했다. 그가 밀었던 판타스틱 4의 매출실적이 그나마 어메이징 한 쪽박 수준은 아니었음이 사업부 구성원들에게는 자그마한 위안거리였다.  



이전 에피소드가 궁금하다면:https://brunch.co.kr/brunchbook/sociopath


이미지 출처:Photo by Dev on Unsplash

이전 04화 #14. 스피커폰의 용도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