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직장 내)소시오패스가 만연한 시대, 고군분투 직장 생존기 Vol.2
이 글은 소시오패스 직장상사 밑에서 오늘도 온갖 고초와 어려움을 겪고 있는 직장인 분들에게 드리는 위로와 공감의 글이 아닌, 제 스스로가 겪은 지옥 같은 직장생활에 대한 기록이자, 그들의 만행을 잊지 않고 그들과는 같은 길을 걷지 않겠다는 '타산지석의 사료'임을 밝힙니다
*극 중 등장하는 인물/단체/사업/사연 등에 유사함을 느낀다면, 당신 상사도 소시오패스 입니다.
**극 중 등장하는 인물/단체/사업/사연은 모두 허구입니다만, 일부 경험담에 기반했습니다.
입지(立地) : '인간이 경제 활동을 하기 위해 선택하는 장소' 라는 사전적 의미.
신규 유통 사업을 준비하며 덕평 지역에 새로운 중앙 물류센터를 오픈한지도 2달. 최적의 입지이자, 임차 조건을 고려하여 물류기획팀/법무팀 등 다양한 현업부서가 심사숙고해 고른 그 신규 물류센터는 장마철을 맞아 예상치 못한 큰 위기를 맞게 된다.
그리고 예상치 못한 큰 위기를 맞이했을 때 리더의 위기 대응능력은 항상 도마에 오르게 된다.
7월 초 장마가 지나간 어느 월요일 오전 10시, 사업부 주간회의 (32층 컨퍼런스룸)
"물류운영팀장, 판타스틱4가 적용된 신제품 초도 물량은 언제쯤 전국매장으로 발송 가능한가요?"
"네, 상무님. 초도 물량 500 Set는 장마철을 피해 이미 입고가 완료된 상태고 현재 개별 패킹된 상태로 물류센터 보관 중입니다. 다만, 장마기간을 지나며 일부 겉 패킹에 곰팡이가 올라와 깨끗이 닦아낸 뒤 출고를 진행할 예정입니다."
"패킹에 곰팡이요? 그건 처음 듣는 얘기인데, 패킹 풀어서 그 안쪽도 확인해 봤나요? 목재류 제품인데 간단하게 생각할 문제가 아닙니다. 만에 하나 습기라도 먹으면 전부 폐기해야 할 수도 있습니다. 지금 당장 확인해서 보고하세요!"
한껏 높아진 조 상무의 언성에 참석자들 모두 '설마'라는 불안감이 엄습해왔다. 그리고 불안한 예감은 언제나 적중률이 높았다.
현장의 물류센터 운영인원들이 즉시 2~3개 제품을 샘플링해 패킹을 풀고 확인해보니 목재가 적용된 부위에 곰팡이가 일부 피었다는 보고가 올라왔다. 조 상무 이하, 팀장급들이 전부 모인 주간회의의 분위기는 급격히 격앙되기 시작했다.
"신제품이 출하되기도 전에 곰팡이가 피었다면 전량 폐기하고 새로 생산해야 되는 거 아닌가요?"
"물류운영팀에서는 장마철을 너무 가볍게 생각한 거 아닌가요? 우리 제품들은 목재 비중이 높아 항상 습기를 조심해야 하는데, 이거 참... 큰일인데, 당장 하반기 매출 계획부터 차질이 생기겠어요"
여러 팀장들은 각자 입장에 따라 생산/매출 등 본인들의 계획에 영향을 끼칠만한 요소들에 우려를 쏟아내기에 바빴다. 그러나, 조 상무는 그런 현실적인 문제에 앞서 책임소재를 명확히 하는데 집중했다.
"물류운영팀장, 현재 물류센터의 입지가 습기를 주의해야 한다라는 내용을 물류기획팀이나 기타 운영 협력사로부터 전달받은 게 있나요?"
"따로 주의사항을 들은 바는 없습니다. 단지, 물류센터의 후면부가 산비탈을 깎아 만든 옹벽과 붙어 있어 좀 주의가 필요하겠다는 생각은 했습니다."
"개인적인 생각 말고, 별도의 안내를 받은 건 없다는 거죠? 그럼, 책임소재를 명확히 하기 위해 진상조사 Task부터 꾸리세요. Task는 제가 주관하고 물류운영팀, 기획팀 인원이 붙어서 왜 이런 곳에, 누가 입지선정을 한 것인지부터 향후 발생할 Risk들을 명확히 하세요. 그리고 피해상황과 Risk에 대한 보고는 물류운영팀장이 오전/오후 일 2회 저에게 직접 보고하세요. 전화나 카톡 상관없습니다."
그는 피해상황 파악과 복구방안을 생각하기에 앞서 왜 이러한 일이 발생했는지 원인을 규명할 Task를 먼저 구성했다. 현장은 현장대로 피해상황을 전수 검사하고 복구하느라, 본사는 본사대로 원인 규명 및 향후 발생 가능한 Risk에 대해 시나리오별 보고서로 정리하느라 야근과 철야의 3일을 보냈다.
그리고 3일 뒤, Task의 보고서는 물류기획팀이 계절별 Risk를 고려하지 못한 채 급하게 물류센터를 선정했고, 운영협력사 또한 운영 경험이 미숙하여 물류센터 내 습기가 취약한 지역에 묵재가 적용된 재고들을 보관한 게 큰 실착이었음을 지적하고 있었다. 어디에도 유통사업을 총괄하는 조 상무에 대한 내용은 없었고, 물류센터의 초기 입지선정과 협력사 운영 미숙에 대한 내용만 선명하게 쓰여있었다.
그러나, 상황에 따라 징계위원회가 열리는 등 심각해질 수 있었던 사안은 물류운영팀의 노력으로 예상치 못하게 일단락되었다.
Task에서 3일 낮/밤 보고서 작업에 매진하는 동안 물류운영팀은 아르바이트생까지 동원하여 500 Set의 재고를 일일이 뜯어 확인하고, 팡이제로 등 곰팡이 제거제를 동원해 곰팡이가 핀 제품들을 하나하나 닦아 내었다. 결국 3일 동안 철야 작업을 통해 500 Set 중 곰팡이가 핀 제품은 28 Set, 그중 곰팡이 제거제로도 복구가 불가능한 제품은 5 Set 수준이었음을 밝혀냈다.
Task에서 책임소재만을 부각한 '곰팡이 사태 보고서'는 결국 쓰레기통에 버려졌고, 다행히 누구 하나 다치는 일 없이 해프닝으로 종결되었다. 그리고 조 상무는 Task 리더로서 물류운영팀장에게 새로운 별명을 지어주었다.
7월 중순 (곰팡이를 다 닦아내고 난 다음 주) 월요일 오전 10시, 사업부 주간회의 (32층 컨퍼런스룸)
"팡이제로 팀장, 각고의 노력으로 곰팡이들을 3일 만에 박멸시킨 노고가 참 대단합니다. 오늘은 곰팡이 박멸로 고생한 팀원들과 전체 회식 한번 합시다. 물류센터 근처에 제가 아는 누룽지 닭백숙 맛집이 있으니 그곳으로 팀원들과 6시까지 오세요. 고생 많았습니다, 팡이제로 팀장 "
조 상무는 탁월한 정무적 감각을 지니고 있기에, 본인의 입지(立地)가 약해질 Risk에 대해서는 철저하고 과하다 싶을 정도로 선제 대응했다. 대부분은 보고 이후, 해프닝으로 일단락되는 경우가 많았지만 경우에 따라서는 억울한 피해자를 발판 삼아, 본인의 입지를 공고히 했다. 그렇게 조 상무의 입지가 공고해질수록 새로운 유통 사업의 기반은 약화되어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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