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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흔들의자 Sep 28. 2022

#14. 스피커폰의 용도

(직장 내)소시오패스가 만연한 시대, 고군분투 직장 생존기  Vol.2

이 글은 소시오패스 직장상사 밑에서 오늘도 온갖 고초와 어려움을 겪고 있는 직장인 분들에게 드리는 위로와 공감의 글이 아닌, 제 스스로가 겪은 지옥 같은 직장생활에 대한 기록이자, 그들의 만행을 잊지 않고 그들과는 같은 길을 걷지 않겠다는 '타산지석의 사료'임을 밝힙니다
*극 중 등장하는 인물/단체/사업/사연 등에 유사함을 느낀다면, 당신 상사도 소시오패스 입니다.
**극 중 등장하는 인물/단체/사업/사연은 모두 허구입니다만, 일부 경험담에 기반했습니다.


 스마트폰의 성능은 해가 갈수록 비약적으로 발전하고 있지만, 사실 그 성능을 온전히 다 사용하는 사람은 얼마 되지 않을 듯싶다. 조 상무 또한 매년 임원들에게 지급되는 최신형 스마트 폰을 쓰고 있지만 사용 용도는 지극히 제한적이다. 1) 전화 2) 카톡 3) T맵 정도가 대부분이다. 간혹 경쟁사에서 새로 나온 어플 설치나 사용법에 대한 설명은 언제나 이 팀장 혹은 비서의 몫이다. 아, 하나 더 추가하면 전화 중 스피커 폰 사용을 즐겨한다는 것 정도다. 그리고 그 용도는 언제나 누군가를 궁지에 몰아넣기 위한 경우가 많다.

   



5월의 날씨 좋은 어느 월요일 오전 10시 (32층 컨퍼런스룸)
"이 팀장, 다음 달 론칭하기로 한 신제품들 개발 일정은 어떻게 되고 있나요?"

"해당 건은 지난번 주간회의 때 개발 1 팀장이 보고 드린 건으로... 음.. 예상보다 조금 지연된다고 하지만 6월 말 까지는 출시 가능할 것으로 보입니다."

"지난주에 보고 했다니, 전 들은 바가 전혀 없는데요? 개발 1 팀장은 어디 있나요?"

"외부 협력업체 미팅 때문에 금일 회의는 참석하지 못했습니다."

"이 사람들이 경중을 따져가며 일을 해야지! 일정 하나 조율 못하면서 어디 사업을 하겠다고.. 쯧..."

 아침부터 심기가 불편한 조 상무는 그대로 개발 1 팀장에게 전화를 했다. 당연하다는 듯 스피커 폰이었지만, 불행히도 통화 당사자인 개발 1 팀장은 이를 알리가 없었다.


"심 팀장, 이번에 신제품 개발 일정이 지연된다면서요? 왜 그 중요한 사항을 따로 보고하지 않았나요? 6월 말 출시가 가능하다는 게 맞습니까?"  

"예, 상무님. 지난 주간회의 때 전체적인 개발 일정 지연을 보고 드리기는 했습니다만, 상반기 출시는 조금 어려울 것 같습니다. 지금 협력업체와 일정 조율 중이나 전용 라인 설비 수선과 안정화 기간 고려하면 6~7주 정도는 시간이 더 소요될 것 같습니다."

"아니, 지난주에 대체 무슨 보고를 했다는 겁니까?! 이 사람들이... 내가 기억하는 바가 없어요! 그리고 기획팀장은 6월 말까지 출시 가능하다던데, 상반기 출시가 어렵다니 이게 무슨 소리입니까?"

"협력업체에서 저희 제품 전용 라인을 갖추면서 일부 설비 이슈가 있었고, 테스트 및 안정화 기간 고려하면 제품 생산이 빨라야 6월 말~7월 초가 될 거라고 사전에 기획팀에 보고하고, 지난주 주간회의에서도 말씀드린 건입니다."

"내 기억에는 6월 출시 일정에 변동이 없는데 이게 다 무슨 소리입니까? 기획팀에 사전 보고 했다니, 이 팀장 말하는 건가요? 이 팀장이 사업책임자입니까? 아니, 이 사람들이 대체 일처리를 어떻게 하는 거야?"

 화를 내며 스피커 폰을 끊어버린 조 상무를 모두가 놀란 눈으로 쳐다봤다. 특히나, 본인 이름이 거론됨으로써 불똥이 튄 이 팀장은 좌불안석 어떻게 대답해야 하나 눈동자 굴러가는 소리가 건너편에 앉은 나에게까지 들릴 정도였다. 곧 조 상무의 포화는 이 팀장에게로 향했다.


"이 팀장, 이게 다 무슨 소리입니까? 개발 1 팀장이 일정 지연에 대해 사전 보고 했다는데, 왜 그걸 제가 모르는 겁니까? 일사불란하게 움직여도 모자랄 신사업 조직에서 이게 다 무슨 말입니까?"

"아니, 저... 상무님, 개발 1팀에서 사전 보고를 했다는 게 형식적인 보고를 했다는 것은 아니고, 이런 이슈가 있으니 주간회의 때 보고하겠다고 언질을 주기에 지난주 주간회의 때 논의하는 Agenda로 잡았습니다. 그때 전체적인 일정 조정에 대해서는 보고 드린 바와 같습니다."

"자꾸 지난 주간회의를 언급하는데 전 들은 바가 없습니다! 제가 이상한 건가요? 여기 있는 나머지 팀장들은 들은 바가 있습니까?! 어디 들은 사람 있으면 대답해 보세요!!"  

 회의실 안에는 어색한 침묵이 감돌뿐 누구 하나 나서서 기획팀장의 편을 들어주는 이는 없었다. 그래 봐야 같이 역적으로 몰릴 것이 뻔했기에 마음은 불편하지만, 기획팀장이 혼자 총대 메기를 바라는 눈치였다. 침묵을 통해 암묵적인 동의를 얻어낸 조 상무는 거칠 것 없이 이 팀장을 몰아붙였다.


"백번 양보해서 6월 말 출시에서 전 하루도 일정을 미룰 생각 없습니다. 6월 말이라고 두루뭉술 얘기하지 말고 날짜를 명확히 찍어오세요! 그리고 기획팀장이 책임지고 개발팀장들과 일정 조율해서 출시 전까지 일 단위 스케줄 표 짜 오고, 매일 오전 보고하세요!

 제품 나올 때까지 전 개발팀과 기획팀은 비상근무 체제를 선언합니다. 이 사람들이 제품도 없이 무슨 사업을 한다고! 내가 이렇게까지 챙기지 않으면 사업이 진행이 안됩니까! 다들 할 줄 아는 건 없고 입만 살아서야 원!"

 스피커 폰 통화가 불러온 파장은 결국 몇 개 팀의 쉴 틈 없는 야근과 주말 출근을 불러왔다. 방망이 깎는 노인처럼 일단위로 스케줄을 깎아 내었고, 아주 작은 변화 하나까지도 엑셀과 PPT에 한 땀 한 땀 기록해 보고 했다. 물론 그렇다고 그게 개발 일정 단축에 도움이 되지는 않았다. 협력업체에도 인원이 상주하며 보고서를 써대는 통에 오히려 일정은 더 지연될 가능성이 높아 보였다.  


 6월 중순까지 방망이 깎는 심정으로 열심히 개발 일정을 깎았지만, 애초에 안 되는 건 안 되는 거였다. 설비도 문제였고, 당장 품질팀 검증도 통과하기엔 시간이 부족했다. 구성원을 쥐어짜도 6월 말 출시가 어렵다는 걸 직감한 조 상무는 본인의 명성에 흠집이 나지 않으면서도 출시를 늦출 명분을 찾기 시작했다.




 6월 중순 진행된 전사 브랜드 마케팅 회의에서 그는 좋은 명분을 찾았다. '신제품에는 그에 걸맞은 새로운 브랜딩이 필요하다.' 새로운 '서브 브랜드 론칭을 위한 Task를 제안'했고, CEO는 그 제안을 덥석 물었다. 브랜딩 제안/심사/확정까지 총 8주의 시간을 벌었다.


 그렇게 그는 새로운 브랜드에 맞춰 개발 일정을 조율하는 유연함을 갖춘 사업부장으로 자신을 포장했고, 그 덕에 4주간 이어졌던 기획팀, 개발팀의 야근과 주말 출근은 6월 중순을 기점으로 일단락되었다. 아무것도 개선된 것은 없었다. 그저 '보고를 위한 보고'와 '면피를 위한 Task'가 하나 더 생겼을 뿐이다. 그래도 숨 쉴 구멍은 하나 찾았음에 위안을 삼으며, 우리 팀은 또다시 신규 브랜드 론칭을 위한 Task에 블랙홀처럼 빨려 들어갔다.    



이전 에피소드가 궁금하다면:https://brunch.co.kr/brunchbook/sociopath


이미지 출처:Photo by Jabber Visuals on Unsplas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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