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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흔들의자 Nov 02. 2022

#18. '육성'이라 쓰고, '가스라이팅'으로 읽는다.

(직장 내)소시오패스가 만연한 시대, 고군분투 직장 생존기  Vol.2

이 글은 소시오패스 직장상사 밑에서 오늘도 온갖 고초와 어려움을 겪고 있는 직장인 분들에게 드리는 위로와 공감의 글이 아닌, 제 스스로가 겪은 지옥 같은 직장생활에 대한 기록이자, 그들의 만행을 잊지 않고 그들과는 같은 길을 걷지 않겠다는 '타산지석의 사료'임을 밝힙니다
*극 중 등장하는 인물/단체/사업/사연 등에 유사함을 느낀다면, 당신 상사도 소시오패스 입니다.
**극 중 등장하는 인물/단체/사업/사연은 모두 허구입니다만, 일부 경험담에 기반했습니다.


리더의 중요한 덕목 중 하나는 구성원 육성이다. 지위가 올라갈수록 혼자서 할 수 있는 일은 줄어들고, 구성원들에게 방향성을 제시하고, 그 결과물에 대해 책임을 져야 하는 경우가 많아지기 때문이다. 


결국 구성원의 성과가 리더의 성과로 연결되기에 리더가 성과를 내기 위해서는 구성원을 잘 육성하거나, 뛰어난 구성원을 영입하는 2가지 방법밖에 없다.


평소 조 상무는 본인의 성과에 대한 욕심이 남다르기에, 뛰어난 구성원을 어떻게든 자신의 조직으로 끌고 오거나 조직 내 구성원에게는 육성을 빙자한 가스라이팅에도 능한 인물이다.




9월 초 화요일 오전 10시, 조상무 소집 기획팀 회의 (조상무 방 회의실)

"이제 몇 주 뒤면 추석이고, 그 뒤에는 내년 준비를 위한 사업 계획 시즌이라는 건 다들 알고 있을 겁니다. 올해는 숨 가쁘게 달려오느라 계획이나 준비가 꼼꼼하지 못한 측면이 있었지만, 내년에는 달라야 합니다. 이번 사업 계획은 CEO에게는 우리의 내년 준비가 얼마나 치밀한지 알려드리면서 신규사업에 대한 불안함을 덜어드리고, 그룹 회장님께는 우리 사업의 비전이 남다름을 보여드리는 목적으로 진행할 생각입니다.


그런 의미에서 이번 사업 계획 준비에 대한 전체 시나리오를 기획팀장이 미리 준비해서 일주일 뒤 저와 의논합시다. 이번에는 팀원들에게만 맡겨 놓지 말고 이 팀장이 직접 이 사업의 책임자라는 각오로 임해주길 바랍니다. 일주일 뒤, 이 시간에 봅시다."


급작스런 조 상무의 미션에 이 팀장은 당황하는 기색이 역력했다. 익숙하게 팀원들에게 시킬 생각이었겠지만, 자신을 콕 집어서 일주일 뒤에 보자고 했으니 마냥 토스해놓고 기다릴 수도 없는 상황이었다. 


"유 차장, 아까 상무님 말씀하신 얘기 잘 들었지? 전체적으로 어떻게 구성할지 생각해 봐, 나도 한번 생각해 볼게"


"아, 네. 일단 한번 생각해보겠습니다."


애써 대답을 한 유 차장님이었지만, 이번만큼은 '네가 일 좀 해라'의 불만 가득한 눈빛이 역력했다. 

신규 런칭한 제품들의 사건사고를 수습하고, 신규 사업이 굴러가게 하기 위한 현업을 쳐내느라 정신없이 시간을 쏟는 사이 조 상무가 말했던 일주일이 다가왔다. 


일주일 뒤 화요일 오전 10시 (조상무 방 회의실) 

"자, 지난 일주일 간 우리 기획팀장이 고민한 방향성에 대해 들어봅시다. 지금 이렇게 일을 맡기는 건 이 팀장이 향후 더 높은 리더로 올라가기 위한 예행연습이라 생각하면 됩니다. 내가 사업부장이라면, 이렇게 하겠다는 느낌으로 나한테 얘기해주면 됩니다. 시작하세요."


"네, 사업부장님. 그럼 지난 일주일 간 고민해본 내년도 사업계획 방향성에 대해 말씀드리겠습니다. 우선, 내년도는 올해 출시된 신제품을 기반으로 매출 목표를 50% 신장한 수준으로 책정하고자 합니다. 그 근거는... (중략)"


"아니 아니, 이 팀장. 우리가 CEO나 회장님께 보고할 때 순서가 그러하던가요? 들어가는 말로 오늘의 보고를 요약부터 하지 않나요? 오늘의 보고가 어떤 내용인가요 간략히 말해보세요"


"네, 오늘의 보고는 내년도 B2C 유통 사업부의 전체적인 매출 실적과 제품의 운영 방향에 대해.."


"아니 아니, 이 사람아. CEO 포함 윗분들이 지금 숫자부터 듣고 싶어 하겠습니까? 고작 회사 전체 매출의 1% 수준 기여하고 있는 신사업 조직에 숫자를 기대하겠냐는 말입니다. 허허, 이거야 원, 내 스탭이 이 정도 수준밖에 안 되어서야... 다시 한번 해보세요!"


"네, 사업부장님. 금일의 보고는... 유통 사업부의 내년도 계획을 말씀드리는..(중략)"


"다시, 다시! 아니 기획팀장이라는 사람이 이것밖에 못하나? 이래서 내가 어디 가서 우리 기획팀장이라고 당당히 말할 수 있겠냐고! 다시!"


몇 번의 다시!라는 고성과 함께 기획팀 전원은 10분 만에 조 상무 방에서 쫓겨났다. 기획팀원이 부족했는지, 기획팀장이 부족했는지, 그도 아니면 조 상무의 눈높이가 높아서 인지는 중요치 않았다. 그저 지난 일주일간의 노력이 10분 만에 쓰레기통에 처박혔다는 패배감이 쓰라릴 뿐이었다.


그리고 조 상무는 자신은 너그러운 사람이라는 듯, 이 팀장에게 다시 4일의 유예기간을 주었지만...

2차전의 결과는 더 처참했다.  




그 뒤, 기획팀장은 조 상무 앞에서 발표를 할 때면 말을 더듬는 버릇이 생겼다. 원래 어디 가면 말만 잘 떠든다는 소리를 듣던 인물이었는데, 불과 기획팀장 보임 9개월 만에 지금은 무대에 서서 말하는 것을 극도로 꺼리게 되었다. 특히나 조 상무가 포함된 경영진 앞에서의 발표는 안쓰럽다 싶을 정도로 눈치를 보거나, 헤매기 일 쑤 였다.


조 상무의 가스라이팅을 기획팀장이 버텨내지 못하자, 실질적인 기획팀장의 업무들은 오롯이 유 차장님에게 전가되기 시작했다. 

'이게 다 너를 팀장, 그 이상의 리더를 만들기 위한 나의 육성 방식이다'라는 사탕발림의 말과 함께... 



이전 에피소드가 궁금하다면:https://brunch.co.kr/brunchbook/sociopath


이미지 출처:Photo by Sivani Bandaru on Unsplas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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