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직장 내)소시오패스가 만연한 시대, 고군분투 직장 생존기 Vol.2
이 글은 소시오패스 직장상사 밑에서 오늘도 온갖 고초와 어려움을 겪고 있는 직장인 분들에게 드리는 위로와 공감의 글이 아닌, 제 스스로가 겪은 지옥 같은 직장생활에 대한 기록이자, 그들의 만행을 잊지 않고 그들과는 같은 길을 걷지 않겠다는 '타산지석의 사료'임을 밝힙니다
*극 중 등장하는 인물/단체/사업/사연 등에 유사함을 느낀다면, 당신 상사도 소시오패스 입니다.
**극 중 등장하는 인물/단체/사업/사연은 모두 허구입니다만, 일부 경험담에 기반했습니다.
달콤한 추석 연휴가 지나고 나면 본격적으로 내년을 준비하기 위한 사업보고 시즌에 돌입한다. 특히나 신규 사업을 추진 중인 우리 사업부는 내년에 어떤 모습으로 성장을 준비 중인지 회사 내부에서도, 외부에서도 지켜보는 시선들이 많다. 과연 하나의 사업으로 잘 성장해 나갈 것인가라는 우려 섞인 시선이 반, 얼마나 잘하는지 지켜보겠다는 부정적 기조가 깔린 시선이 나머지 반이다.
그렇기에 올해 사업보고는 예년과는 다르게 많은 어려움이 있을 거라 예상은 했지만, 모든 여건을 뛰어넘어 조 상무가 팔고 싶어 하는 '광(光)'의 사이즈가 남다르기에 올해는 시작부터 난관에 봉착했다. 이를테면 우리가 달성하고자 하는 사업의 목표 수준과 달성 일정이 언제나 조 상무 본인의 머릿속에만 있기에 그가 품고 있는 꿈의 사이즈를 모르는 우리는 언제나 시작부터 깨지기 일쑤였다.
9월 말 월요일 오전 10시 사업부 주간회의 (32층 컨퍼런스룸)
"우리 사업부는 10월 15일 대표님 대상으로 사업보고가 있을 예정입니다. 이번 사업보고에서는 우리가 올해 준비하고 추진한 것들의 성과에 대해 우선 말씀드리고, 앞으로 달라질 미래의 모습들에 대해 보고드릴 겁니다. 회사 내 경영진, 그리고 그룹의 회장님에게까지 우리가 그리는 청사진을 각인시켜드리는 게 올해 우리 사업보고의 목표입니다. 기획팀을 중심으로 작업에 착수해 주시고, 여기 있는 각 부문의 리더들 또한 필요한 것들에 대해서는 물심양면으로 지원해 주세요."
"네, 사업부장님. 올해 사업보고 준비에 만전을 기해서 목표한 바를 꼭 달성하겠습니다."
"그래요, 사업보고회 초안은 10월 5일 날 봅시다. 여기 있는 리더들도 전부 참석해서 초안에 대해 논의해봅시다."
초안 보고까지 주어진 시간은 주말 포함 7일. 그 일주일 동안 우리는 조 상무가 말해준 적 없지만 한 번쯤 가슴속에 꾸었을 법한 본인의 그 꿈을 알음알음 추정하여 청사진을 그려냈다. 그리고 일주일 뒤, 우리가 야근과 철야로 만들어낸 초안 결과물은 어김없이 쓰레기통에 처박혔다.
2차 보고는 3일 뒤. 3일간 심기일전하여 미래 사업의 크기를 키우고, 결과물을 더 있어 보이게 포장하였지만 역시나 이번에도 문지방조차 넘지 못하고 회의실 밖으로 쫓겨났다.
"기획팀장, 우리 사업의 사이즈가 이것밖에 안 되나요? 당신 머릿속에 있는 미래와 내가 생각하는 미래가 이렇게나 차이가 나는데 당신이 내 스탭이라 할 수 있습니까?
"죄송합니다, 사업부장님. 다시 시간을 주시면 전반적으로 수정해서 재 보고 드리겠습니다."
"기획팀장, 3년 뒤 우리 사업부는 매출 얼마를 할 예정입니까?"
"네?! 지금 저희가 추정한 바로는 공격적으로 잡아서 약 1,500억 정도 예상하고 있습니다."
"틀렸습니다. 시작부터 아주 잘못됐습니다. 내가 명확히 말해줄게요. 3년 내 5,000억짜리 사업으로 사이즈를 키워오세요. 5,000억짜리 사업이 되기 위해 필요한 유통망, 물류, 제품, 인적 자원은 여기 있는 현업 리더들을 쥐어짜서라도 받아오고! 5,000억 사업의 그림이 그려졌을 때 나랑 논의를 시작할 수 있습니다."
그렇게 그의 꿈의 크기만을 듣고 쫓겨난 우리는 다시 야근과 철야를 반복하며 보고서 작업을 이어갔다.
올해 우리 사업부의 예상 매출액은 400억 남짓. 이 사업을 3년 뒤 5,000억의 사이즈로 그려오라는 건 누구도 그려보지 못한 아니, 그릴 수 없는 청사진의 모습이다. 하지만 그는 3년 뒤 5,000억짜리 사업의 사업부장을 하고 싶다고 한다. 그러니 어떻게든 그릴 수밖에 없다.
3년간 매출액 CAGR이 130%를 넘어가는 말이 안 되는 숫자였지만 어느 누구도 토를 달지 못했다. 그 숫자를 위한 유통망 확대 방안, 제품 신규 개발, 조직 충원 방안 등 모든 것들이 거꾸로 그려졌다. 한 사람의 머릿속에 있는 꿈 혹은 광을 팔기 위해 사업부는 일사불란하게 움직였다.
그가 제시한 5,000억의 숫자를 맞추기 위해 기획팀과 지원부서가 3일 낮밤을 고군분투한 끝에 어쨌든 숫자는 끼워 맞춰졌다. 5,000억의 숫자를 들고 조 상무가 처음부터 끝까지 보고 내용을 들은 건 10월 11일 오전이 처음이었다.
사업보고까지 남은 기간은 단 4일, 그때부터가 광을 팔기 위한 진짜 날 세우기가 시작된 시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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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미지 출처:Photo by Markus Spiske on Unsplash