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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흔들의자 Nov 28. 2022

#22. 사업보고(2) : 자신만의 꿈.

(직장 내)소시오패스가 만연한 시대, 고군분투 직장 생존기  Vol.2

*극 중 등장하는 인물/단체/사업/사연 등에 유사함을 느낀다면, 당신 상사도 소시오패스 입니다.
**극 중 등장하는 인물/단체/사업/사연은 모두 허구입니다만, 일부 경험담에 기반했습니다.


 직장생활을 하며 꿈을 꾸어 본 게 언제일까.

'매출 실적이 좋은 스타 영업사원이 되겠다', '일잘러인 사수처럼 되겠다', '현업 경험을 갖춘 기획자가 되겠다' 등 먼 미래보다는 가까운 미래에 어떤 모습이 되겠다고 원한적은 있지만 그보다 먼 미래를 바라보는 꿈을 꾸어본 것은 오래전 일이다.


신입사원 시절, '이 회사의 CEO가 되겠어!', '나는 숫자에 밝으니 CFO가 되겠어' 등등 패기 넘치게 한 회사의 C레벨을 꿈꾸기도 했었지만, 연차가 쌓여갈수록 그건 나의 능력과 노력만으로는 쟁취할 수 없는 것임을 깨달은 뒤로는 그러한 꿈은 한켠으로 치워둔 지 오래다.


대기업에서 별(임원)을 달고 나면, 직장인으로서 어느 정도 성공을 거뒀다고 볼 수 있다. 그 뒤로는 치열한 생존 게임을 하게 된다고는 하지만, 조 상무는 생존을 넘어 좀 더 야망이 큰 캐릭터였다. 그리고 그 야망을 사업보고라는 무대를 통해 거침없이 드러낼 줄 아는 '광팔이'이기도 했다.

 



10월 15일 오전 10시 (회사 내 대회의실)

꽤 많이 경영진 보고를 위해 드나든 대 회의실이지만, 이렇게 경영진들만 모인 보고 자리는 언제나 숨이 막히는 듯한 분위기다. 특히나, 외부에서 온 임원이 하는 신규사업에 대한 사업보고는 그 이목이 쏠리는 자리라 더더욱 날카로운 분위기를 연출했다. 그런 살엄음판의 분위기에 아랑곳하지 않고 조 상무는 태연하게 본인이 하고 싶은 말을 경영진들의 지원에 감사함을 빌어 표현하기 시작했다.


"오늘 이 자리에 계신 대표님 이하, 많은 경영진 분들의 도움으로 B2C 유통사업부가 출범한 이래 지난 10개월 동안 많은 시행착오를 겪으면서도 이 자리까지 올 수 있었습니다. 다시 한번 물심양면으로 도와주신 대표님 이하 경영진 분들께 이 자리를 빌어 먼저 감사의 말씀을 드리고 보고를 시작하겠습니다...(중략)"


무대에 올라 선 조 상무는 거침없이 본인이 생각하는 올해의 성과와 미흡했던 점, 그리고 그것들을 어떻게 보완해 나갈지에 대해 설명해갔다. 성과는 드러내되, 미흡한 점은 개선할 방향성을 내세워 절대 못했다고 말하고 있지 않은 교묘한 보고서였지만 확신에 찬 조 상무의 보고에 리드되어 어느 누구도 그 지점에 대해 지적을 하지는 않았다.


올해의 성과, 그리고 내년도 계획을 보고한 데 이어 조 상무가 그리도 공을 들이던 3개년 계획, 5,000억짜리 사업으로 키우겠다는 내용으로 발표가 이어졌다. 예상보다 아니, 예상하지도 못한 허황된 숫자에 회의실 분위기는 술렁였지만 조 상무는 예견했다는 듯, 이해한다는 듯 참석자들을 돌아보며 말을 이어갔다.


"아마 지금 나와있는 3년 뒤, 유통사업부의 모습을 보고 다들 이게 무슨 황당한 소리냐라고 생각들 하실 겁니다. 저 또한 이게 단순히 사업부장으로서 이 자리에 섰다면 저러한 황당한 숫자를 들고 발표를 드릴 수 없을 겁니다. 저 숫자가 당장 3년 뒤 제 스스로 목을 죄는 숫자이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렇게 5,000억이라는 숫자를 들고 보고를 드리는 건 그만큼 이 사업이 중요하고, 또 크게 성장할 수 있는 사업임을 확신하게 때문입니다.


저는 꿈이 있습니다. 기존 B2B 사업구조에서 성장의 정체를 겪고 있는 우리 회사가 경쟁사를 넘어서 B2C 유통 사업으로 빠르게 체질을 전환한다면 다시금 지속 가능한 성장을 하는 회사로 변화할 수 있습니다.


유통사업부는 '한 개의 사업부문을 넘어, 하나의 회사가 된다'라는 각오로 이 사업에 임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이러한 성장을 통해 좋은 인재, 좋은 제품, 좋은 유통을 지속적으로 확보하고 고객에게 새로운 가치를 끊임없이 제공할 수 있을 것이라 확신합니다... (생략)"

       



이번보고는 꿈을 앞세워 조 상무가 제안한 프레임의 승리였다. 허황된 3개년 계획이었으나, 조 상무의 꿈/비전에 흡족해 한 대표님은 사업계획의 타당성/정합성은 논외로 하고 제대로 추진하여 성과를 내보라고 격려했다. 이어진 질의응답에서도 대표님의 칭찬이 있었기에 각 경영진들도 사업계획의 정교함보다는 어떻게 지원을 할 것인가에 초점이 맞춰져 논의가 이루어졌다.


결국 그의 '광팔이는 성공'했고, '이제는 모두가 판돈을 걸고 게임에 참여해야 하는 상황'이 되어버렸다. 조 상무에게 시달리며 그렸던 추상화가 예상외의 대성공을 거두었지만, 사업부 구성원으로서 하나도 기쁘지 않았다. 그가 말한 꿈은 온전히 그 자신만을 위한 꿈이기 때문이다. 그가 이루고자 하는 꿈을 위해 얼마나 많은 구성원이 육체와 정신을 갈아 넣으며 업무를 하게 될지 그게 걱정될 뿐이었다.


그렇게 첫 광팔이를 대 성공한 조 상무는 거하게 술을 마시러 사라졌고, 이유모를 패배감에 젖어든 기획팀원들은 평소와 달리 누구 하나 술 한잔 하자는 제안 없이 조용히 집으로 퇴근을 했다.


  

이전 에피소드가 궁금하다면:https://brunch.co.kr/brunchbook/sociopath


이미지 출처:Photo by Product School on Unsplas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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