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직장 내)소시오패스가 만연한 시대, 고군분투 직장 생존기 Vol.2
이 글은 소시오패스 직장상사 밑에서 오늘도 온갖 고초와 어려움을 겪고 있는 직장인 분들에게 드리는 위로와 공감의 글이 아닌, 제 스스로가 겪은 지옥 같은 직장생활에 대한 기록이자, 그들의 만행을 잊지 않고 그들과는 같은 길을 걷지 않겠다는 '타산지석의 사료'임을 밝힙니다
*극 중 등장하는 인물/단체/사업/사연 등에 유사함을 느낀다면, 당신 상사도 소시오패스 입니다.
**극 중 등장하는 인물/단체/사업/사연은 모두 허구입니다만, 일부 경험담에 기반했습니다.
현재 기획팀에는 전력 외의 팀장 1명을 포함해 기획파트 3명, 경영관리파트 1명, 비서 1명 총 6명이 근무하고 있다. 각자의 자리에서 연초 업무분장에 따라 맡은 업무를 책임감을 갖고 처리해 나가고 있지만, 신규 사업부에는 예상치 못한 새로운 업무가 계속 발생하고 있고 연초의 업무분장보다는 훨씬 넓은 범위의 일들을 각자 도맡아 처리해가고 있다.
그건 비단 기획파트, 경영관리파트 업무를 맡은 팀원뿐만 아니라, 비서 업무를 수행하는 팀원에게도 해당하는 일이다. 우리 팀의 비서는 현업 마감 업무와 병행하여, 조 상무의 비서업무를 수행하고 있는데 연초에 비해 조 상무가 요구하는 비서 업무의 범위가 점차 넓어져 이제는 혼자 감당하기엔 어려운 지경에 이르렀다.
9월 3주 차 (추석을 며칠 앞둔) 화요일 오전 조상무 방
"이 팀장, 잠깐 들어와 보세요. 급하게 처리해야 할 일이 있습니다."
"네 상무님, 어떤 건 이실까요?"
"내가 지금 거래처로 외근을 나가려고 하는데 차에 물이랑 다과가 없다고 하네요. 이전부터 몇 번 얘기하려고 했는데 비서가 하는 업무에는 임원 차에 간식과 물과 같은 것들을 때에 맞춰 챙겨놓는 것도 중요한 일입니다. 굳이 내가 말하지 않아도 잘 처리할 거라 생각했는데 매번 어디 나가려고 할 때마다 이러니 이 팀장이 앞으로는 이런 일로 외근 나가는데 불편하지 않게끔 신경 쓰도록 하세요."
"아.. 네, 상무님. 일단 급한 건 지금 제가 지하주차장 차량에 빨리 가져다 놓겠습니다."
"그래요, 다과는 간단한 스낵이랑, 껌, 향이 좋은 사탕 같은 것들을 가져다 두라고 비서에게 미리 언질도 해두세요. 이런 사소한 의전까지 매번 내가 일일이 지시를 해야 합니까? 앞으로는 알아서 미리 좀 챙기세요!"
이 팀장은 부리나케 생수 500ml 한 박스와 간단한 주전부리를 챙겨 지하주차장으로 뛰어내려 갔고, 약 10분 뒤 생수와 다과를 차에 실어 뒀다는 이 팀장의 전화를 받고서야 조 상무는 외근을 위해 본인 방을 나섰다.
같은 날 오후 사내 카페
"유 차장님, 전 비서 업무가 안 맞나 봐요. 조 상무님이 이것저것 알아서 해달라는 것들 솔직히 잘 못 챙기겠어요. 이런 것까지 하려고 제가 여기 입사했나 싶기도 하고요. 전 원래 비서 업무로 입사한 것도 아니고 인원이 부족하다고 해서 마감 업무를 주로 하되 비서 업무를 겸하는 것으로 하고 여기로 온 건데 이건 완전 반대가 돼버린 것 같아요."
"민 사원 입장을 나도 이해해. 조 상무님이 원하는 의전 수준이 너무 높은 것도 있고 하나라도 부족하면 매번 기획팀장을 불러다가 뭐라고 하니 스트레스도 많을 것 같고, 일단 올해만 보내고 나면 인사팀에 한번 얘기해 볼게. 전문 비서분으로 새로 채용해 달라고."
"솔직히 제가 그때까지 버틸 수 있을지 모르겠어요. 주 5일 술을 드시니까 매번 대리기사 분을 섭외해서 약속 장소로 차량이랑 같이 보내드리는 것도 너무 힘들고, 차량에 내려가서 이것저것 떨어진 것들을 눈치껏 채워 넣는 것도 못하겠어요. 요새는 밤만 되면 대리기사분이 제대로 약속 장소로 가셨을까 노이로제에 걸릴 지경이에요. 전속기사분이 배정되는 건 올해는 힘든 거죠?"
"아, 그건 총무팀이랑 협의해서 최대한 일정 당겨볼게요. 매번 술자리 할 때마다 민 사원이 대리기사 섭외해서 차량까지 보내주느라 고생인 거 잘 알고 있어요. 일정이 안 맞아 조금이라도 늦어지면 기획팀장에게 엄청 나무라는 것도 익히 알고 있고, 우리 3개월만 참아봅시다. 어떻게든 개선 방법을 찾아볼게요."
유 차장님의 끈질긴 노력과 총무팀, 인사팀의 전폭적인 협조로 새해에는 조상무 담당 전속 기사분이 배정되었다. 민 사원도 외근 때마다, 술자리 약속 때마다 기사를 배정하고 차량과 함께 약속 장소로 보내느라 더 이상 스트레스 받지 않아도 되게 되었다.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전문 비서 역할을 할 새로운 비서 분도 팀으로 배정되었다. 그러나 새로운 기사분, 비서 팀원이 합류했음에도 민 사원은 새해가 되고 2달 만에 회사를 그만두었다. 지난 1년간의 비서 업무 병행으로 회사생활이 너무 힘들었다던 민 사원은 한동안 쉬고 싶다는 말만 남기고 회사를 떠났다.
민 사원 후임으로 온 비서 분도 약 반년만에 퇴사를 한걸 보면 비서의 업무분장이 잘못되었거나 모시는 임원이 유별나거나 둘 중 하나였겠지만, 그 누구도 해당 임원의 유별남을 탓하는 사람은 없었다. 그저 그를 모시는 구성원만 계속 바뀌어갈 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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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미지 출처:Photo by Carl Heyerdahl on Unsplash