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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큐레이터의 서가 Apr 09. 2021

추상미술 별건가요 #10 동작 분석, 추상미술을 만들다

1910년 3월, 마리네티는 토리노의 한 극장에서 3천여 명의 열광적인 군중들을 모아놓고 2차 미래주의 선언서를 발표하였다. 이 선언서의 핵심 내용은 근대문명의 다이너미즘(Dynamism)이었다. 현대사회의 특징이 다이너미즘, 즉 속도에 있다는 말은 사실이지만 도대체 움직이는 속도를 어떻게 화면에 그려 넣는 단 말인가? 


아무리 움직이게 그리려 해도 2차원의 평면에 그리는 순간 정지해 버릴 텐데... 움직임의 표현이란 시간의 연속이 전제 조건이다. 그런데 속도를 그리는 순간 아이러니칼 하게도 시간은 화면 위에서 정지되어 버린다. 움직임의 표현이란 시간의 연속이 전제 조건이다. 그런데 속도를 그리는 순간 아이러니칼 하게도 시간은 화면 위에서 정지되어 버린다.




운동 잔상(motion after image)


운동을 표현하려는 미술의 욕망은 아주 오래된 것이었다. 17세기, 바로크 미술의 대가 벨라스케스는 움직이는 물체(object in motion), 즉 운동을 표현하고자 했다. 벨라스케스는 기발한 방법을 동원하여 그럴듯하게 운동을 표현했다. 


벨라스케스는 숙달된 붓 터치(brush stroke)로 움직이는 물체의 윤곽선을 문질렀다. 운동하는 물체는 위치가 이동하고 있는 관계로 흔들리는 상태이다. 이러한 방법을 이용하여 그는 격렬하게 돌아가는 베틀의 움직임을 능숙하게 그려낼 수가 있었다. 벨라스케스는 운동 잔상(motion after image)을 이용했던 것이다.



벨라스케스, 베 짜는 여인들(부분), 1657. 벨라스케스가 그린 물레는 정말 돌아가는 것같이 보인다. 


운동(motion)이란 무엇인가? 어떤 기준점을 중심으로 물체의 위치가 시간의 경과에 따라 변화하는 현상이다. 운동을 표현하는 일은 시간에 따라 물체가 움직인 위치를 공간에 표현하면 되는 것이다.




움직이는 물체(object in motion)


영화(motion-picture) 라면 운동을 표현하는데 별문제가 없으나 그림에서의 속도의 표현이란 불가능하다. 공간이 정지되니 시간도 정지되어 버린다. 화면에서는 움직임의 표현이 불가능한 것이다.  움직임의 표현이란 시간의 연속이 전제 조건이다.


20세기 초, 마리네티의 열의에 감동한 미래파 화가 자코모 발라(Giacomo Balla)는 우격다짐으로 움직임을 표현했다. 진짜 움직임을  표현했다고 동의하기는 어렵지만 개는 분명 공간에서 움직이고 있다. 17세기의 벨라스케스는 숙달된 붓 터치로 윤곽을 깨트리는 방식으로 문질러 운동을 처리했다. 발라는 바로크 미술가들과는 다른 방법을 선택했다. 발라는 동물의 동작을 분석한 후 동작의 스펙트럼으로 운동을 표현해냈다. 공간을 정지시키고 시간은 확장한 것이다.


자코모 발라, 끈이 묶인 개의 역동성, 1912


인간의 눈은 동작의 스펙트럼을 볼 수가 없다. 인간은 눈은 동작을 연속적으로 보기 때문이다. 사람들이 동작의 스펙트럼을 체험한 것은 19세기 후반의 일이다. 1878년 머이 브리지는 24대의 카메라를 설치하고 촬영해 순간적인 동물의 동작을 기록하는 데 성공했다. 발라는 물체의 움직임을 찍은 연속사진을 이용해  동작의 스펙트럼을 화면에 나열했다. 


머이 브리지, 말의 연속적인 움직임, 1878


미래파의 속도 표현에는 머이 브리지(Eadweard J. Muybridge)의 연속사진이 커다란 영향을 끼쳤다. 머이 브리지의 연속사진에 영향을 받은 미래파 작가들은 반복적인 동작을 연속적으로 그려 속도를 표현해내었다.


머이 브리지보다 더 미래파에 영향을 준 것은 줄 머레이(Étienne-Jules Marey)의 크로노 포토그래피(Chronophotography)였다. 머레이는 시간을 노출시켜 실제 움직임을 재현했는데, 미래주의는 머리 브리지와 줄 머레이의 크로노 포토그래피를 이용하여 반복적인 동작을 이용하여 속도를 표현해낼 수 있었다.


줄 머레이, bars hochsprung, 1890


줄 머레이, Soldiersfootmili 




동작의 스펙트럼


미래파 작가들은 속도를 그리는 데 있어 입체파의 형태 분석방법과 점묘파의 색채 분석방법을 빌려왔다. 연속하는 동작을 속도감 있게, 역동적으로 표현하려면 형태를 면으로 단순화할 필요가 있었던 것이다.


Fortunato Depero, 모토사이클리스트, 1923


속도가 증가하면서 형태는 더욱더 추상화되어 나갔다. 입체파의 형태 분석법과 점묘파의 색채 분석법은 속도를 그리는 데 있어 매우 효과적이었다.


(좌) 루지 루솔로, 레이싱 카, 1947년경  (우)자코모 발라, 차와 빛의 속도, 1913    



움베르토 보초니, 공간 속에서 연속하는 특이한 형태, 1913 Wikimedia Commons


미래파의 대표화가 움베르토 보초니(Umberto Boccioni)는 힘차게 거리를 활보하는 인물의 연속적인 동작을 조각적인 형태로 바꾸어놓았다. 움직이는 동작을 조각적 형태로 바꾸는 일은 쉬운 일이 아니었다. 보초니는 이 작품을 만들기 위해 2년 동안 회화와 드로잉, 조각 등으로 인간 근육의 정확한 움직임을 연습했다. 그러한 노력으로 보초니는 공간 속에서 움직이는 신체를 삼차원적으로 강렬하게 표현하는 데 성공했다. 


움베르토 보초니, 움직이는 근육의 공간 속에서의 팽창,  1912-3   




필촉 분할(Divisionism)


속도란 움직임이다. 움직이는 물체는 흔들리는 상태이므로 형태와 윤곽이 선명하지가 않다. 그 흔들림의 상태를 반복된 형식으로 효과적으로 그리는 데에는 입체파의 조형 법이 효과적이었다.


움베르토 보초니, 도시의 소란, 1910


움직이는 물체는 그 흔들림으로 인해 색채가 선명치 못하다. 떨리는 색채의 표현에는 점묘파의 채색법이 효과적이다. 움직임이 더 커지면 형태와 색채는 더욱더 분해되어 추상화된다. 필촉 분할은 인상파가 태양빛을 그리는데만 유용했던 것이 아니라 미래파가 속도를 그리는데도 유용했다.  


자코모 발라, 발코니를 뛰어다니는 소녀, 1912


 미래주의의 움직이는 그림은 전적으로 카메라의 동작 분석 덕분이다. 기계의 동작 분석이 없었다면 20세기 초 미래주의의 움직이는 그림은 불가능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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