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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큐레이터의 서가 Apr 09. 2021

추상미술 별건가요 #9 무의식 분석, 추상미술을 만들다

형태 분석과 조형 분석이 20세기 추상미술의 탄생에 절대적인 공헌을 했지만, 추상에 이르는 또 하나의 커다란 길이 있었다. 무의식의 분석이다.


George Henslow, An alleged psychograph, 1919




다다와 초현실주의


1차 세계대전이 발발하자 기계문명이 열어줄 것으로 기대했던 멋진 미래의 꿈은 산산이 부서지고 말았다. 20세기의 서양 근대인들은 과학기술의 발전이 인간의 미래를 밝혀줄 것이라고 믿어 의심치 않았다. 그러나 전쟁이 터지자 사람들은 우리가 알아왔던 인간들이 아니었다. 사람들은 짐승들 같이 살육과 파괴를 일삼았다. 현실은 지옥이 되었다. 암울한 현실을 벗어나 희망찬 세계를 펼쳐 보일 뭔가 새로운 대안이 필요했는데, 그 대안으로 모색된 것이 잠재의식(subconciouness)의 분석에 기반한 다다와 초현실주의였다.


La Révolution surréaliste, 1927




오토마티즘(automatism)


20세기 초, 의식 있는 서구의 지식인들은 세상을 지옥으로 만든 이성을 더 이상 신뢰할 수가 없었다. 20세기 전위예술은 무의식이라는 새로운 세계를 찾아 나섰다. 무의식의 세계는 이성과 현실의 논리가 작동하지 않는 세계로서 무의식/초현실에 접근하기 위해서는 자동기술법(automatism)이 필요했다. 오토마티즘이라는 자동기술법은 의식이 관여하지 않은 상태에서 자동적/무의식적으로 작동하는 방법이었다.


볼스, 무제 또는 폐허가 된 도시, 1946-47


1차 세계대전이 일어나자 유럽의 전위예술가들은 중립국 스위스로 몰려들었다. 그들은 1차 세계대전을 낳았던 전통적인 유럽의 문명을 전적으로 부정했다. 그들은 기성의 모든 도덕적, 사회적 속박으로부터 정신을 해방시키고 개인의 진정하고 근원적인 욕구에 충실하고자 했다. 그것을 위해 전위예술가들은 새로운 조형언어를 필요로 했는데, 새로운 조형언어는 자동기술법(automatism)이었다.


잭슨  폴록, 메아리, 1951




우연성



다다와 초현실주의는 무의식의 상태에서 자동적으로 작동하는 자동기술법을 통해 기성 예술에 반대하는 반문화, 반예술 운동을 펼쳤다. 자동기술법의 가장 큰 특징은 우연성이었다. 우연성은 기계같이 잘 짜 맞추어진 로고스 중심의 합리적인 서구 세계에 대항하는 도구였다. 자동기술법에 기반한 우연성은 놀라운 결과들을 쏟아내었는데, 콜라주·추상표현· 퍼포먼스· 해프닝 등이 그것이었다.


(좌) 쿠르트 슈비터스, Louis, 1936 (우)  쿠르트 슈비터스, Anna 북의 표지, 1887 


다다와 초현실주의는 무의식의 상태에서 일어나는 여러 감정들은 끄집어내어 시와 미술, 연극 등으로 표현해냈다. 다다와 초현실주의자들은 무의식의 상태에서 우연성을 통해 추상에 도달하였는데, 쿠르트 슈비터스(Kurt Schwitters)는 여기저기 주변에서 주어 모은 폐품들을 콜라주한 작품을 만들어내었다. 슈비터스가 길에서 주운 조각들과 잡동사니들을 소재로 만들어낸 콜라주는 거의 추상이었다.


나무판이나 아스팔트 등에 종이를 대고 연필 등으로 문지르면 무늬가 베껴지는데, 프로타주(frottage)라는 기법이다. 프로타주는 우연성이 극대화할 수 있는 방법으로 초현실주의자들이 우연적인 효과를 얻기 위해 즐겨 사용하였다.  


Nicola L.K., 프로타주, 2008 





추상 표현


초현실주의 작가들은 화폭에 무작위적으로 물감을 떨어뜨리거나 스며들게 한 후 그것들을 연결해 추상미술을 만들어내기도 하였다. 다다이스트들은 잡지나 신문에서 오래 낸 단어들을 무작위로 섞은 후 하나씩 뽑아내어 배열하여 다다 시라는 추상적인 문학작품을 만들기도 하였다. 후에 다다와 초현실주의의 자동기술법에 주목한 그룹이 20세기 미국을 대표하는 추상표현주의였다.



Arshile Gorky, 사과 과수원,  1943-7년경



추상표현주의는 추상미술과 표현주의를 결합시킨 말로 형태를 알아볼 수 없을 정도로 파괴하여 추상에 이르는 미술이다. 잭슨 폴록은 무아지경의 상태에서 내면에서 일어나는 순간순간의 감정들은 화면에 표현했다. 폴록은 캔버스 주변을 돌아다니면서 물감을 흘리기도 하고 붓에 물감을 듬뿍 묻혀 뿌려댔다. 무의식 상태에서 물감을 떨어뜨리고 돌아다니면서 뿌리고 칠했다 하여 그의 그림을 드립 페인팅(Drip painting) 또는 액션 페인팅(Action Painting)이라고 불렀다.



작업 중인 잭슨 폴록




해프닝, 퍼포먼스



자동기술법의 우연성은 콜라주나 추상표현에 머물지 않았다. 자동기술법은 해프닝과 퍼포먼스를 낳았다. 현대미술은 완성된 작품만이 아니라 작품을 제작하는 과정 및 그 과정 중에 발생하는 제스처에 주목했다. 작품의 제작을 위해서는 아이디어를 실행하는 예술적 행위가 필요하다. 20세기 미술은 작품의 제작 과정을 분석하여 완성된 작품과 제작 행위를 분리해내었다.


이강소, 닭의 퍼포먼스, 1975



1975년 9회 파리 미술비엔날레에서 선보였던 이강소의 <닭의 퍼포먼스>이다. <닭의 퍼포먼스>는 살아 있는 닭을 전시장에 가져다가 벌인 해프닝이었다. 전시장의 닭은 전시장의 이곳저곳을 돌아다니며 회분(灰粉)이 묻은 발로 전시장 돌아다니며 시간의 흐름 속에서 자신의 족적(작품)을 남겼다.


분석은 단순히 조형이라는 좁은 개념에 머무르지 않고 작가의 생각과 그의 내면에 잠재한 무의식, 그리고 작품 제작 행위와 작품의 제작 과정에까지 연결되어 20세기 미술을 혁명적으로 바꾸어 놓았다.


베를린 다다 오프닝, 19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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