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웨덴 사람들은 데스클리닝을 합니다.
책 『내가 내일 죽는다면』은 생전정리지도사 과정 중 강사에게 추천받은 책이다. 제목이 좀 무겁다. '죽음'이란 단어가 주는 위압감 때문이다. 초록색 상단과 제목, 중간중간 들어 있는 저자의 따뜻한 삽화 덕분에 묘하게 마음이 풀어졌다.
부제가 '삶을 정돈하는 가장 따뜻한 방법, 데스클리닝' 낯설고 두려운 단어로 다가왔다. 하지만 책장을 넘길수록, 데스클리닝은 죽음을 준비하는 일이라기보다는 지금을 잘 살아내는 연습이라 느껴졌다.
스웨덴 사람들은 ‘데스클리닝(Death Cleaning)’이라는 말을 자연스럽게 쓴다. 직역하면 '죽음의 청소'지만, 그 안에는 다정한 철학이 숨어 있다. 죽음을 대비하기 위해 물건을 정리하는 동시에, 남은 삶을 가볍게 만드는 일이 데스클리닝이다. 죽음이라는 단어는 여전히 묵직했지만 책 페이지가 넘어갈수록 그 무게가 달라졌다.
저자 마르가레타 망누손은 이렇게 말한다.
“죽음을 가정하고 주위를 정돈해 보면,
앞으로의 인생은 훨씬 빛날 거예요.”
죽음을 이야기하면서도 이렇게 따뜻할 수 있다니. 이 문장은 내게 오래 남았다. 저자는 엄마와 시어머니의 데스클리닝을 했고 이젠 자신의 데스클리닝을 했다.
“하고 나면, 행복해질 거예요.”
그의 말처럼, 정리는 누군가를 떠나보내는 의식이 아니라 내 마음을 가볍게 하는 과정이다.
나는 정리를 잘하는 편이 아니다. 생전정리와 웰다잉 강의를 들으며 잘 죽기 위해서는 정리가 먼저 되어야 함을 인지했다. 죽음을 이야기하는 일이 곧 삶을 잘 살 수 있는 지름길이라는 것도 알게 되었다.
우리나라에서는 아직도 죽음이나 데스클리닝이 금기시되는 분위기였다.
복지관이나 도서관에서 이 주제로 강의를 하려면 ‘웰다잉’ 대신 ‘웰라이프’라는 이름으로 포장을 해야 한다
“죽음이라는 단어가 들어가면 안 돼요. 다른 단어로 바꿔오세요.”
하지만 이제는 조금 달라지고 있다. 사람들은 죽음을 피하기보다, 지금을 어떻게 살아갈 것인가에 관심을 가지기 시작했다. 복지관과 도서관에서도 웰다잉 교육 안내문을 쉽게 볼 수 있다. 죽음에 대한 대화가 서서히 사회의 언어로 자리 잡고 있는 것이다.
저자는 이렇게 조언한다.
“사진이나 편지, 사적인 서류부터 시작하지 마세요.
그건 가장 나중에 해야 할 일입니다.”
감정이 깊게 묻어 있는 물건은 우리의 발목을 잡는다. 읽고 또 읽으며, 다시 과거로 돌아가기 때문이다.
그는 크기가 크고 감정이 덜한 것부터 정리하라고 말한다. 옷, 책, 주방용품, 오래된 잡지들이 그 출발점이다.
정리란 결국 자신과의 속도 조절이다.
저자는 원피스 두 벌, 스카프 다섯 장, 재킷 한 벌, 신발 두 켤레만 남겼다고 한다. 가능한 일인가?
숫자가 중요한 게 아니다. 핵심은 ‘나에게 맞는 기준’을 세우는 일이다.
출판사에서는 이렇게 말한다.
“데스클리닝은 죽음을 위한 준비가 아니라,
지금을 더 행복하게 살기 위한 정리입니다.”
누군가의 사랑은 물건으로 남지만, 그 물건이 반드시 추억의 무게를 대신할 수는 없다. 우리는 언젠가 그 사랑을 정리해야 한다. 그건 이별이 아니라, 관계의 또 다른 형태다.
데스클리닝의 조언 중 두 가지가 특히 인상 깊었다.
“현재의 삶을 등한시하지 말라.”
“자신의 속도에 맞춰 천천히 하라.”
정리는 ‘빨리 끝내야 하는 일’이 아니다. 마치 숨처럼, 하루하루 이어지는 루틴이어야 한다. 정리하면서 나는 내 안의 불안을 들여다봤다. 조금씩 가벼워졌다.
<내가 내일 죽는다면>을 덮으며 생각했다.
이 책이 말하는 데스클리닝은 결국 현재를 사랑하는 법을 알려주는 철학이었다. 누군가를 위한 정리가 아니라, 내가 남기고 싶은 방식으로 삶을 다듬는 일.
이 책을 읽으며 ‘정돈’이라는 단어의 의미도 새롭게 다가왔다.
정리 없이 정돈은 없다. 먼저 덜어내야 정돈이 가능하다. 정리는 무엇을 가질지 결정하는 일이고, 정돈은 그것을 어디에 둘지 정하는 일이다. 정리는 과거와의 관계를 매듭짓는 일이고, 정돈은 현재를 단정히 살아가는 일이다.
결국 데스클리닝은 이 두 가지를 함께 품은 삶의 기술이다.
죽음을 가정한 정리는, 사실상 오늘을 단정히 살아내는 연습이다. 버림으로써 자유로워지고, 정돈으로써 평온을 얻는 것. 그게 바로, 삶을 정리하며 배우는 가장 따뜻한 행복이지 않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