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 전문가
2021년 세 번째 뚜벅이 여행을 마쳤다. 떠나고 싶다는 마음 하나로 시작된 여정이 정기 스케줄이 된 지 어느덧 4년을 향하고 있다. 두 남자 모두 계획에 진심이다. MBTI로 이야기한다면 J 성격을 가졌다. 하지만 뚜벅이 여행을 하다 보면 예상치 못한 일들이 발생하곤 한다. 쌓여있는 경험을 토대로 두 남자는 여행에서 만큼은 너그러워진다. 무슨 일이 어떻게 발생할지 모르는 여행, 기존의 ‘나’ 다움에서 벗어나는 순간이 여행에서 시작되는 것이다.
맛집, 관광지로 가득한 여행, 먹고 자는데 불편함이 없는 여행, 사람들은 종종 모든 것을 해결해 주는 패키지 상품을 이용하곤 한다. 여행 전문가에게 모든 일정을 맡기기도 한다. 하지만 두 남자의 여행에서는 여행 전문가 따위는 없다. 모든 것을 결정하고 실행하는 주체는 바로 ‘두 남자’이기 때문이다. 이번 2022년 네 번째 뚜벅이 여행기에는 새로운 ‘나’를 발견할 수 있었던 일이 일어난다. 변수를 맞이 한 두 남자는 과연 어떤 여행을 하고 온 것일까? 과연 두 남자는 이 순간을 극복할 수 있을 것인가?
두 남자는 오늘도 떠납니다!
2022년 네 번째 뚜벅이 여행, 배움의 여행
1일 차 – 진주
다행이다. 진주까지 KTX가 뚫려 있어서. 공군이라면 다시 오고 싶지 않은 도시 진주, 공군을 전역한 사람이라면 진주를 기피할 가능성이 높다. 왜냐하면 진주에는 공군훈련소가 있기 때문에 진주에 발을 내딛는 순간 없었던 PTSD(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가 생길 수 있기 때문이다. 두 남자 중 한 명은 공군 출신이다. 진주역에 도착하자마자 그 한 명은 깊은 한숨을 푹 내쉬었다.
2020년, 부모님 곁을 떠나 혼자 진주까지 왔던 그는 2022년에 다시 이곳을 찾아왔다. 많고 많은 도시들 가운데 하필이면 진주였을까...
진주시를 가로지르는 남강변을 걸었다. 굶 주려던 배를 채우기 위해 시장으로 향했다. 진주에는 특별한 음식이 있는데 그것은 바로 진주냉면이다. 날이 비교적 쌀쌀했지만 이곳까지 와서 진주 냉면을 먹지 않을 수 없었다. 진주냉면은 평양냉면, 함흥냉면과 달리 고명이 많이 들어간다. 육전과 채소가 가득한 냉면이었다. 형형 색색의 고명들이 면 위에서 춤을 추고 있었다. 맛 또한 고명의 양과 비례하여 다양한 맛이 났다. 입 안에서 교향곡이 펼쳐지듯 감칠맛부터 시작해 새콤, 달콤, 매콤한 맛까지 느껴졌다.
밥을 해결하고 진주성을 향했다. 논개의 영혼이 담겨 있는 곳, 임진왜란 당시 논개는 일본인 장수를 유인해 강으로 투신했다. 논개가 투신한 강이 바로 진주성 앞, 남강이다. 진주성 안에 있는 촉석루에서는 유유히 흐르는 남강의 모습을 볼 수 있다. 누각에 올라 흐르는 남강의 모습을 바라본 두 남자는 마음이 경견 해졌다. 과거의 아픔이 함께 겹쳐 보였다. 지금은 아름다운 윤슬이 남강을 비추고 있지만 500년 전의 이곳은 침략으로 인해 백성의 눈물로 가득했다. 누각 아래에는 논개가 뛰어내렸던 곳을 추모하기 위해 조금 한 비석이 새워져 있었다. 비석 아래에는 절벽이었다. 이곳을 주저 없이 뛰어내린 그녀의 용기가 마음 한 구석을 뜨겁게 달궜다.
2일 차 – 하동
진주에서 하동을 가기 위해서는 무궁화호를 타면 된다. 부산에서 목포를 향하는 7시간 남짓 걸리는 그 열차에 몸을 실으면 된다. 하동역에서 내려 바로 앞에 있는 하동버스터미널로 가 목적지인 녹차밭까지 가기 위한 여정을 시작했다.
하동은 두 남자가 여행하면서 자주 애용했던 ‘카OO맵’이 작동하지 않는 지역이었다. 즉 터미널이나 정류장에 붙어 있는 시간표대로 버스가 움직이는 곳이었다. 두 남자는 일정에 필요한 버스들의 시간표를 찾아 찍었다. 앞으로 하동에서는 휴대폰에 저장된 그 시간표들만 믿어야 했다.
녹차밭, 녹차밭을 위해 하동의 어느 마을에 도착했다. 버스에 내리자마자 있는 커다란 나무 아래 평상이 있었다. TV속에서만 봤던 시골의 모습이었다. 동사무소, 학교, 우체국이 모여있는 동네였다. 방아갓의 기름냄새, 양조장의 술 냄새가 두 남자를 환영했다. 그 옆으로는 쭉 뻗어있는 녹차밭이 있었다. 여름이 아닌 녹차밭은 생각보다 삭막했다. 푸릇푸릇 보다 거뭇거뭇 에 가까운 모습이었다. 녹차밭을 운영하는 사장님은 멀리서 온 관광객이 신기했는지 두 남자를 계속해서 쳐다봤다.
‘녹차 밭은 여름에 오셔야 이뻐요. 근데 오늘 같이 바람 많이 부는 날 오 사면 사람이 없어서 괜찮기도 하고요!’
‘아....’
‘어디서 오셨어요?’
‘저희는 서울에서 왔습니다!’
‘멀리서 오셨네요. 여유롭게 즐기다 가세요!’
짧은 탄식이 찻집을 매웠다.
아뿔싸, 여름에 녹차밭을 와야 했던 것이었다. 두 남자는 사전에 공부하지 않았던 것이다. 다시 말해 맘이 이끄는 데로 진주에 갔었으니 주변에 있는 하동도 가야 했고 하동에 간다면 녹차밭을 방문해야 한다는 1차원적인 생각만 한 것이다. 두 남자의 오판이었다. 홀짝홀짝 녹차를 마셨다. 그래도 어두운 색의 녹찻잎으로 가득 찬 밭을 바라보며 생각했다. 둘 다 계획에 어긋나는 것을 싫어했지만 눈앞에 있는 녹차밭을 부정할 수는 없었다. 아무 말 없이 녹차를 마시며 생각을 정리했다.
문제가 발생했다. 버스가 오지 않았다. 하루에 1~2대만 다니는 지역인데 버스가 시간표대로 움직이지 않았다. 방법은 택시를 타는 것뿐이었다. 택시를 타지 않으면 이 마을에 고립되어야 한다. 뚜벅이 여행의 첫 고비가 찾아왔다. 하지만 정말로 택시를 타지 않으면 움직일 수 없었기에 끝내 지역 콜택시를 불러 하동을 떠났다. 쌀쌀하게 불었던 바람, 우중중한 색의 녹찻잎, 오지 않는 버스 그 어느 것도 계획대로 되지 않았다. 두 남자는 아무 말 없이 입을 다물었다. 다시 진주로 넘어와 다음날을 준비했다. 먼저 내가 입을 떼었다. ‘그래도 이렇게 계획이 틀어져봐야 나중에 또 대처하지 안 그래?’ 친구도 이 말에 공감했다. 입을 깡 다문 하동 여행은 두 남자에게 큰 교훈을 주고 떠났다.
3일 차 – 통영
진주에서 1시간 버스를 타고 이동해야 한다. 통영 버스 터미널 앞에 있는 M사 햄버거 가게가 반가웠다. 통영은 아름다운 바다가 공존하는 해양도시다. 버스를 타고 숙소로 가는 사이에도 창문 사이로 푸른 바다가 보였다. 버스에서 내린 순간 바다 냄새가 코 끝을 스쳤다.
시락국의 질문
시래깃국, 통영에서는 시락국이라고 불린다. 어시장 안에 있는 시락국집을 찾았다. 원래는 시장 상인들을 위한 간이음식점에서 시작했지만 통영 내 관광객이 증가함에 따라 일반 음식점으로 그 범위가 확장되었다. 시래깃국을 시키면 눈앞에 펼쳐진 수십 가지의 반찬을 이용할 수 있다. 계란말이, 김치, 해초 등등 집반찬과 함께 먹는 시락국이라니... 여행을 온 관광객이지만 마치 집에 온듯한 느낌을 받았다. 특별한 맛이 있는 것은 아니었다. 그저 집에 온듯한 따듯한 느낌을 느낄 수 있었다. 익숙함을 느끼는 것, 여행을 통해 느껴보지 못한 감정중 하나다. 이전 편에서 이야기했듯이 여행을 통해 새로움을 느끼는 것을 강조했다. 하지만 통영에서 만난 시래깃국은 나에게 익숙함을 선사했다. 집에서도 충분히 먹을 수 있는 음식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두 남자 모두 이 음식에 감탄했다. 그 이유가 무엇이었을까...
통영이 준 질문은 이전 여행지였던 하동의 경험과 묘하게 겹쳐 보였다. 통영은 두 남자에게 익숙함도 새로움이 될 수 있지 않을까? 에 대한 질문을 선사했다. 이 질문에 대한 답을 찾아야 했지만 두 남자는 쉽게 이야기할 수 없었다. 그동안 그들이 경험했던 여행이 이번의 여행을 통해 부정될 수 있다는 생각에 두 남자는 깊은 고민에 빠졌다.
이번 여행 은 두 남자에게 질문을 던졌다.
1. 준비하지 못한 상황은 어떻게 대처할 것인가?
2. 익숙함 속 이질감이란 무엇인가?
두 남자는 여행을 통해 받았던 감정 중 가장 이질적인 느낌을 받았다. 계획대로 흘러가지 않았던 점이 그들을 괴롭히기도 했다. 이전과 같은 뚜벅이 여행이었지만 이번 여행은 배움의 영역과 가까웠다. 완벽의 추구보단 상황에 대한 유연성을 가지는 것, 익숙함 속에도 새로움이 존재한다는 점이 바로 그것이었다.
두 남자는 4년이 지난 2025년에도 2022년의 여행을 기억한다. 학생을 지나 사회인이 된 두 남자는 ‘그려려니 마인드’를 가지게 됐다. 내 뜻대로 되지 않은 일에 자신을 힘들게 하지 않는 것. 나 자신만큼은 나를 괴롭히지 않는 것. 이것이 그날의 하동과 통영이 선사한 소중한 선물이 아니었을까? 조심스럽게 추측해 본다.
다음편 : 여름 특별편 뚜벅이 여행