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박필우입니다 Feb 15. 2024

보약을 들이키듯 과거를 반추하다

아내가 통장에 돈을 보냈다

    

이쯤에서 그리 많지는 않지만, 뱃살공주 단점을 까발려야겠다. 이유가 있다. 문득 내가 인류 폭탄제거반이란 생각이 들기 때문이다. 형제들까지 동원할 까닭이야 없지만, 혈통을 중시하는 터라 이해를 돕기 위해서다.   

  

큰 처제는 별명이 휘발유다. 한 번 불붙게 되면 강력한 화력을 자랑한다. 그러나 종교의 힘으로 극복하면서 박사학위에 도전해 지방자치단체 가족의 평화를 위한 상담소 소장으로 대의를 이뤄가는 중이다. 진정 멋지고 아름답지 않은가! 형부 생일은 한 번도 빠트리지 않고 꼭꼭 챙겨주는 착한 처제다. 화만 끓이지 않으면 말 그대로 천사다. 초창기 형부 시절에 멋모르고 불을 붙였다가 화상 입을 번 하였던 기억이 있다. 인심도 넉넉하고 후한 편이라 최고의 처제다.     


작은 처제는 부탄가스다. 순식간에 주변의 모든 것들까지 상처를 입힐 수 있는 가공할 폭발력을 지녔다. 그러나 정의의 여전사인 까닭에 네거티브한 선과 그 대의명분이 분명하다. 따라서 화력의 심지를 돋우거나 불속에 던지지만 않는다면, 평화로운 비둘기 같은 여인이다. 처제가 잘 다루는 야생화와도 같다.


남자들 틈에서 실외 인테리어와 조경 공사로 명성을 얻어가는 중이라 감각도 남다르다. 일선에서 막노동꾼들을 진두휘하는 모습은 얼빠진 큰 형부 열 몫은 하는데 감히 누가 건드릴까? 가끔 공무원 갑질에 부들부들 떨면서 전화로 언니에게 넋두리를 늘어놓는 모습을 본다. 조심하여야 한다. 매사 녹음기를 켜고 일을 하기 때문이다. 그리고 큰 형부를 가장 좋아한다고 한다. 손이 커서 줄 때는 내 것 네 것 없이 마구 퍼 돌려 울 뱃살공주가 콧구멍 평수를 넓혀가며 이득을 취할 때가 가장 많다.      


그렇다면 우리 뱃살공주 별호는 무엇일까. 단언컨대 타의 추종을 불허하는 신나, 즉 시너(thinner)다. 불이 온전히 붙기도 전에 순식간에 세상을 무(無)의 진공상태로 만들어버리는 파워를 자랑한다. 당연하겠지만, 휘발유나 부탄가스라고 해도 시너를 이겨낼 이는 세상에 없다. 휘발유나 부탄가스조차 시너 앞에서 눈물을 보일 때가 있다.


그뿐이면 다행이다. 뒤끝도 오래가 그 불편함이란 짝이 없다. 인분이 무서워서 피하지는 않겠지만, 일단은 처제들이 꼬리를 내릴 때가 대부분이다. 일단 갈고리눈에 무시무시한 치우천왕과 같은 표정과 서너 옥타브가 높은 화난 조수미 목소리에서 상대를 순식간에 제압하는 터라, 시작하기도 전에 절반의 승리를 쟁취한 후 경기에 임한다. 동시에 장인장모 조차 뒤에서 조정하는 예리한 지혜도 발휘해 위너(Winner) 자리를 빼앗기지 않는다.     


시너를 이기는 요소가 처가에 딱 하나 있긴 하다. 그가 바로 막내이자 외동아들 처남이다. 고집이 세서 그렇지, 말에 막힘이 없어 사리분별이 분명하고 조리가 있다. 누나들 틈에 성장해선지 흥분도 잘하지 않는 체질이다. 어릴 때 누나를 언니라고 불렀던 기억이 쪽팔린다고 하지만, 처남은 그냥 매우 연약하고 부드럽고 사랑에 목마른 이기적인 천사일뿐이다. 능력도 남달라 부동산 투자(나는 투기라고 하지만)의 귀재다. 휘발유나 부탄가스와 잘 어울리지 않더라도 시너와는 죽이 맞아 둘이 일을 할 때 바라보면 그렇게 정다울 수 없다. 일을 하면서도 아는 것이 많아 수다가 넘친다.     

  

자칭 글쟁이이자, 예술가이며, 독서가인, 넘볼 수 없는 높은 인성과 수준을 자랑하는 자형을 존경하기는 하는 듯하지만, 진심인지 나는 알 수 없다. 그러나 처남도 숨겨둔 성질이 있다. 물질이라는 역린을 건드리는 우를 절대로 범해선 안 된다. 그러나 시너는 처남이 타던 외제차도 챙겼고, 나 역시 멋진 자전거를 빼앗다 시피 하였으니 그만하면 처남으로서 자격은 충분하다. 칭찬에 고래가 춤추는 모습은 말 그대로 예술이다.    

  

그렇다면 막대하게 이들을 생산해낸 우리 장인장모는 무엇일까? 생각해보자. 이 모두를 섞어놓은 채 잠들어 있는 시한폭탄이 아닐까 추정할 뿐이다. 아니면 불붙이지 않은 다이너마이트든지.     

단언컨대 나는 결국 피해자다. 인류 폭탄제거반이라고 생각하면 맞다. 하필이면 뱃살공주를 나만 데리고 살아야 하는지 하늘이 원망스러울 때가 있다.




욕인지 자랑인지 모르겠다고? 당연하게도 칭찬이자 자랑질이다. 어딜 감히 귀한 큰딸을 고생시키는 사위 놈이자, 실업자 형부이며, 말만 앞세우는 형부이자, 무능한 자형이 누나를 흉본다는 것은 결코 있을 수 없지 않은가 말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도 할 말이 많다. 옛날이야기 하나 한다. 뱃살공주도 기억할 법한 추억이다. 출근하면서 시내에서 오후 2시에 만나자며 약속했다. 약속시간 전부터 아무리 기다려도 나타나지 않았다. 한 시간이 지나 혹시 오는 도중에 사고라도 났을까 싶어 집에 전화를 걸었더니 “여보세요?” 하며 받는다. 나는 콘크리트 바닥에 머리를 박고 싶어 환장하는 줄 알았다. 집에서 시내까지 대략 한 시간은 결리는 거리다. 약속시간 늦는 것은 30분은 애교, 한 시간은 옵션, 두 시간은 기본이다.      


또 다른 사연이다. 오랜 직장 생활 끝에 프리랜서를 선언하던 그해 겨울, 궁색한 일거리를 보다 못한 뱃살공주가 가사에 도움을 준다는 명목으로 작은 가게라도 꾸리려 준비하던 중이었다. 기억을 더듬으면 휴대폰이 일반화 된지 얼마 되지 않았던 시절이기도 했다. 때마침 밤새 함박눈이 내렸고, 아침이 밝자 날씨가 풀려 햇살에 눈이 녹으면서 도로가 질퍽질퍽해졌다.      


거래선 사람을 만나 대화 도중이었다. 잘 울지 않은 내 휴대전화기가 요란스럽게 울었다. 집에서 온 전화다. 상대방에게 예를 구하고 수화기를 열었다. 어라? 전화가 너머 들리는 목소리가 심각했다. 분명 아내와 장인이 싸우고 있다. 이것은 이렇고, 저거는 저렇고…. 도무지 무슨 내용인지 알 수 없지만, 심각한 일이 분명하였다. 전화를 걸었으면 내게 뭘 물어 본다든지, 도움을 요청하든지가 정상이지만, 여보세요! 라고 아무리 불러도 두 부녀가 싸움에 한 치의 양보도 없다. 상대의 말이 끝나기도 전에 말을 끊고 목청을 높이며 되받는다.      



전화를 끊었다. 두 부녀의 성격을 아는지라 그냥 두었다간 큰일이라도 날 것 같았다. 눈이 녹고 있던 터라 택시 잡기도 쉽지 않았다. 겨우겨우 택시를 타고 말 그대로 헐레벌떡 집으로 왔다. 그러나 집은 너무나도 평온하였다. 도리어 뱃살공주가 대낮에 집에 무슨 일이냐며 되묻는다. 장인 역시 너무나 평소와 다름없는 모습(약간 상기되고 긴장된)으로 아내 가게 실내공사 중이다.

어이 없다. 아버지랑 왜 싸웠냐고 물었다. 아내가 정색하며 '싸우다니?' 한다. 장인이 갑자기 들이닥쳐 싸움 운운 하는, 능력조차 일천한 사위를 이상한 놈 쳐다보듯 하였다. 가게에 달린 방으로 들어갔다. 전화기 수화기가 열려 있고 세 살 아들이 아버지를 반갑게 맞는다. 아들이 전화기를 만지다 수화기가 들렸고, 동시에 1번을 눌려 내게 연결된 것이었다.      


몸에 힘이 빠져 나갔다. 그냥 두 부녀의 일상적인 대화가 그랬다. 다른 이들보다 서너 옥타브가 높고, 말도 빠르다. 스스로 얼굴까지 붉어가면서 대화를 하는 것이 보통이라는 사실이다. 특히 정치 이야기, 집안 미래에 대한 이야기는 대화가 아니라 확성기 앞에서 동시 웅변을 토하는 듯하다. 이는 성격이 급한 까닭도 있지만, 정통으로 핵심을 찌르는 표현능력과 단어의 부족이 상대로 하여금 이해의 폭을 헷갈리게 만드는 요인이다. 아내는 빨래와 집안 청소를 하면서, 아버지는 가게 공사를 하면서 일상적인 대화를 나누었을 뿐이다. 서로 의견이 다른 것이 아니라 뜻을 함께할 때도 마찬가지다. 소리로 싸움을 직감할 정도라면 나는 분명 상대음감의 소유자다.      


덧붙이면, 자기주장이 강하면 대화에서 다툼으로 번지곤 한다. 양보 없는 대화, 상대를 누르기 위한 대화는 나를 다독이지 않으면 결국 이익보다 손해가 크다. 목소리를 높인다고 해서 설득력이 높아진다면 모두 마이크를 달고 살지나 않을까. 생각이 빠르다보니 잊히기 전에 뱉어야 하고, 그러다 보니 나도 모르게 목청이 높아진다. 이는 재치가 부족한 탓이다. 재치는 인위적이지 않고 자연스럽게 나타나야 유쾌한 대화가 이뤄진다.


말은 근거가 있어야 하고, 이치를 따져야 한다. 그러려면 자연히 숙성의 시간을 거쳐야 한다. 눌언(訥言), 눌변(訥辯), 눌헌(訥軒), 눌문(訥文) 이 모두가 스스로를 낮추는 단어들이다. 빈 깡통이 요란하다. 달변가의 날랜 혀가 부메랑이 되어 돌아온다는 것이 동서고금의 이치다. 말을 잘한다는 것은 아는 것이 많다는 뜻이기도 하다. 그러나 말하는 것은 지식의 영역이요, 듣는 것은 지혜의 영역이다. 잘 들어주는 것이 소통의 핵이다.    

  

동물과의 대화도 교감이 먼저다. 말이란 입에서 숙성해서 바람의 숨결을 타듯 자연스럽게 나와야 한다. 병은 입으로 들어오고, 우환은 입으로부터 나온다.      



* 오후 1시에 모임이 있어 급하게 나가야 한다는 조급함이 글을 이상하게 맺음하게 되었다. 비문이나 오타도 있으리라.

이전 13화 냉전과 휴전 사이 ③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