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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필우입니다 Mar 14. 2024

평행선 부부의 명절 끝 진검승부

돈을 사수하되 관계를 정상으로 돌려라!



      

명절 연휴가 이틀이나 남았다. 이때 팽팽한 관계가 오랜 시간 지속된 부부가 어쩔 수 없이 얼굴을 맞대고, 한 지붕 아래 함께 숨 쉬고, 밥을 먹고, 시간을 보내야 한다는 것은 지뢰밭을 걸어가는 것과 비슷하다.      


시시때때 숨을 조여 오는 갈등의 시선이 증폭되면, 증오의 프레임이 확산하게 마련이다. 과거로 인한 관계의 냉대, 지난날 함께 걸어온, 아름답던 무덤덤하던, 치가 떨리던 지난날 추억의 시공간에 숨통이 꼭꼭 막히게끔 검정 비닐로 꽁꽁 싸매는 것과 같다. 그렇게 긴 시간이 이어진다면 내가 돌이키고자 했던 정체성 포인트는커녕 지난 인생은 허무뿐일 것이다. 존재의 가치 유무 자체가 사라질 판이다.     


처가에서 동생과 한판 승부를 펼친 후 결국 무승부로 끝난 뒤 집으로 돌아온 나의 벌꿀오소리와 나는 딸아이의 지혜로운 제안으로 인해 식탁에 담요를 펼친 후 마주 앉았다. 우리 가족을 화기애매하게 단련시키려면 갈등과 반목의 반복이 아니라, 사랑과 증오, 지속과 단절, 전쟁과 평화의 혼란 상태에서 지혜를 발휘해 결론에 이르는 일이다. 이렇게 본다면 불필요한 만큼 필요한 것도 없다. 결국 우리 가족은 불필요한 상태로의 진입을 선택하였던 것이다.      


드디어 화려한 칼라, 그림 카드 48장이 놀이마당에 등장하자 나는 손가락을 풀었다. 이를 본 딸아이가 손목을 풀자, 벌꿀오소리는 목을 비튼다. 역시 스케일이 남다르다. 나는 고스톱판에서 나름대로 규칙이 있다. 상대를 속이지 말라, 그러나 상대가 속아줄 의향이 있으면, 상대가 속아 넘어갈 것이라고 확신이 설 경우에는 경우가 다르다. 속여도 걸리지만 않으면 속인 것이 아니니까.    

  

그리고 반드시 부엌을 등지고 승부를 걸어야 승률이 높다. 이 무슨 귀신 씻나락 까먹는 소린 줄 모르겠지만, 자칭 타짜 선배에게 들은 불문율이다. 또 하나, 내 앞에 오로지 자기 패만 보고 상대의 패는 전혀 생각지 않고 달려드는 인간을 앉히지 말라. 경험상 판이 돌아갈수록 내 허파가 뒤집어질 가능성이 짙다. 그리고 마지막, 요즘 도시에서는 잘 보기 귀한 풍경으로 변하였으나, 시골로 갈수록 상가에서 고스톱판이 빈번하게 벌어진다. 이때 상주에게 돈을 빌려서 치면 승률 100%다. 이 또한 돌아가신 조상님의 공덕이 깔린 까닭이라 홀로 생각하였다. 귀신은 귀신끼리 통하는 법이니까.    

 

각설, 선 잡기부터 밤일낮장, 낙장불입, 쌍피 정하기, 똑딱, 판 쓰리, 피박, 광박, 설사 등 정겹기 짝이 없는 단어로 이루어진 일정한 규정을 정했다. 그런 후 재차 점검을 한 후에야 실전에 돌입하였다. 당연하게 내가 첫판을 7점으로 났다. Go를 부를 수 있었으나 딸의 표정을 봐서 Stop 해준 것이다. 그런데 가장 큰 실수를 범했다. 나는 점 5백 원으로 기억하였고, 나의 벌꿀오소리는 점 백 원이라며 우긴다. 딸아이가 눈치를 살피더니 엄마 편을 들어 어쩔 수 없이 700원에 만족하여야 했다. 도합 1,400원을 땄다. 그러나 ‘초장 끗발 막장 매타작’이라는, 고스톱판 진리를 경험해야 했다.      






문제는 그때부터 생겼다. 똥 쌍피, 비 쌍피, 국화 쌍피, 난초 쌍피, 코주부, 복개미는 여지없이 벌꿀오소리 차지였다. 그놈의 끗발은 끝낼 기미조차 없이 따따블로 설쳤다. 무려 열 판이 펼쳐질 동안 한 번도 이기지 못했다. 별도의 고스톱 과외를 받지 않고선 있을 수 없는 일이다. 흔들고, 피박은 당연, 광박에 고돌이까지 물리면 한 판에 5~6천 원은 허깨비 기침처럼 날아간다. 다음에 먹을 양식을 내 앞에선 벌꿀오소리가 날름날름 집어먹는 데 얄미워 미치는 줄 알았다. 이럴 땐 그 흔한 설사도 외면한다.     

 

결국 5만 원 가까이 잃었다. 점 백 고스톱판에서 5만 원이라니? 아무리 생각해도 불가사의다. 내가 아침이면 씻고, 닦고 광내는 싱크대를 뒤로 둔 탓일까? 나는 그곳이 부엌이라고 생각하며 등을 진 것인데, 등 뒤에 굴뚝이 없으면 이 속설은 그냥 가설일 뿐이라고 풍수학상 의심만 했을 뿐이다. 무려 50년 만의 결론이었다. 자리를 바꾸자고 할까? 아니다. 이는 사나이로서 너무 치졸한 모습을 보이는 꼴이다. 실력이 달리니까 운이 없다는 식의 변명으로밖에 들리지 않는다.   

  

이때, 딸아이가 피곤하다면 손을 턴다. 그렇다면 둘만의 승부가 남았다. 둔탁한 목검이 아니라, 핏빛 진정 승부 말이다. 복수심에 불타 고집을 부려 점 5백 원으로 상향 조정하였다. 그러나 이후에 변한 것은 딱 하나 있었다. 내 주머니에서 15만 원이 더 나갔고, 나는 허탈함에 빠져 속일 생각은커녕 상대가 나를 속였을 것이라는, 다분히 치졸한 의심을 하기에 이르렀다.      


얼굴이 붉어졌다. 반대로 상대는 무진장 냉철했다. 얼굴에 변화라곤 찾아볼 수 없었다. 그야말로 동영상에서 본 벌꿀오소리의 집념을 보는 듯하였다. 반대로 나는 의욕이 바닥을 치고, 더불어 피곤이 몰려오면서 돈에 대한 집착이 무디어지면서, 승부욕이 고갈된 지 오래다. 시계가 새벽 한 시를 넘겨 30분에 가깝게 다가가고 있다.      


이제야 나의 벌꿀오소리가 하품한다. 결국 저도 생명체, 아니 포유류였던 것이다. 이때를 놓치면 평생 후회한다. 상상도 못 할 제안을 했다.     


“우리 볼태기 때리기 할래요?”


역시 효과 만점, 눈이 확 떠진 상대방이 상대인 나를 분노의 시선으로 노려보았다. 광선을 받으며 마주했지만, 나는 당황하지 않고 '딱 뻑 끝!'이 아니라 능청을 떨었다.


“당신 조는 듯하여 농담했습니다.” 했다.

그래도 이글대는 눈빛을 거두지 않았다. 그리고 이렇게 말한다.


“해!”     


아 씨, 큰일났다! 성질을 까마득히 잊고 나불거린 대가가 너무 무겁게 달려들었다. 그렇다면 물러설 곳이 없는가. 정말로 진검승부를 벌여야 한단 말인가? 정말로 나와 그녀의 관계는 더 처참하게 일그러지는가? 그녀와 모든 인연이 분리수거도 힘든 쓰레기 더미에 처박히는 것인가!      


“농담이라니까! 그러면 지금까지 내 돈 다 돌려주면 하죠.”

설마 돈까지 돌려주면서 하자고 할까 하는 나의 지혜로운 공격이었다. 그러나 벌집을 쑤셔놓고야 말았다. 이제는 얼굴색이 새파랗게 변해서 이런다.     

“미쳤나!”

“누가요? 내가? 당신이요?”


이 말을 들은 나의 벌꿀오소리는 목에 힘을 주며 바들바들 떨고 있다. 광선 공격을 당한 나의 시선은 자연적 아래로 떨어졌다. 그러나 알량한 자존심은 살려야 했다.


“당신과 연애 5년, 결혼 33년 동안 살면서 정상이면 그게 비정상이죠.”   

  

아! 결국 우리의 관계는 도돌이표였다. 시난고난, 나의 입에 의해 우리의 갈등은 끝낼 기미조차 사라지고 말았다. 그러나 화해의 신은 여전히 존재한다고 굳게 믿었다. 내일은 내일의 태양이 떠오를 테니까.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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