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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필우입니다 Mar 21. 2024

‘오빠!’라고 불러봐

평행선 부부 명절나기



           

후진은 없다. 직진뿐이다. 물러섬이란 죽음보다 치욕이다. ‘신의 채찍’이라 불리던 훈족조차도 서구를 침략할 때 유리하면 나아가고, 불리하면 물러섬을 가장 중요한 전투 자세로 여겼다. 도망치는 것은 승리를 위한 전략이지 결코 치욕으로 느끼지 않았다.     

 

승리라는 더할 수 없는 이익을 위해 취한 전략일 뿐이다. 그러나 우리 집 벌꿀오소리에겐 해당되지 않았다. 그 속에 스스로 꽈리를 튼 악마를 제어할 힘이 없는지도 모른다. 그러나 성공과 실패는 자매간이듯 사랑과 분노가 공존한 터라, 스스로 무엇을 알고, 무엇을 모르는가를 오롯이 파악하고 있었던 것이다. 즉 마인드컨트롤은 불가능할지라도, 본능의 촉수는 늘 승리를 갈망한 까닭에 결국 악전고투를 벌이더라도 자신의 이익에 도달한 지난날의 경험을 잊지 않았음이다.      


싸대기 사건은 지혜로운(?) 남편의 위기관리 능력이 발휘되면서 유야무야 넘어갈 수 있었다. 물론 비굴한 웃음을 여러 번 연기해야 했지만, 결과가 중요한 까닭에 그 정도 따위야 앞으로도 백번은 더 할 수 있다. 쪽팔림이 배를 따고 들어올 것도 아니고, 내 쌈지에 돈이 사라지는 일도 없다.




대충 씻고 내 돈 만 원짜리 스무 장이 공중으로 훨훨 날리는 환상을 보며 잠자리에 들었다. 꿈이었지만, 너무나 예쁜 꿈이었다. 하얀 꽃길을 걸었다. 가운데 큰 꽃송이가 길을 막아 밟아야 할 정도였다. 나는 꿈에서조차 향기를 맡았다. 착각이겠지만, 잊을 수 없는, 장미와 백합이 섞인 향기였다. 눈을 뜨면서 해몽 검색엔진을 돌렸다. 겸손, 결백 뭐 이따위가 나왔다. 그렇지 않아도 결백한 인성이라 별호를 ‘효정曉淨’에서 ‘결백’으로 바꿀지 생각 중이었다. 그리고 겸손이 지나쳐 때론 교만하단 오해도 부르는데 말이다.   

   

각설, 늦게 잠든 터라 아침에 일어나니 해가 중천에 떠올랐다. 집은 먼지가 떨어지는 소리가 들릴 만큼 조용했다. 그때다. 고양이 하품 소리가 들렸다. 아는 체하는 순간, 냥이들이 간식 달라며 냥냥 집사를 따른다. 먼저 밤새 놈들이 싸지른 오물부터 처리하고, 물그릇 씻어 신선한 물로 갈았다. 사료 그릇 역시 깨끗하게 닦아 충족시킨 후 간식을 나눠 주었다. 그러자 집은 다시 침묵에 들었다. 나는 순간 한숨 더 잘까 갈등하였으나, 이내 공원으로 운동 가야겠다고 고처 먹었다. 그런데 딸아이가 눈 비비며 거실에 등장하였다. 운동을 포기하는 순간이다.     



작는 놈 '호두'

여느 휴일이 아니라, 명절연휴가 이틀이나 남았던 터다. 밤새 굶주린 뱃속부터 달래야 했다. 멸치다시 육수를 만들고, 떡만둣국을 끓었다. 음식의 향기는 햇살을 이겼다. 벌꿀오소리가 거실로 나오자, 딸아이가 거실에서 냥이를 안고 둥기둥기 한다. 속으로 그랬다. 나도 네 아이를 안고 둥기둥기 하고 싶다고……. 아무래도 생전에 경험할 수 없을 거라는 생각이 들자 기운이 빠진다. 그렇다고 음력 정초부터 부정적인 생각으로 비관에 빠질 순 없다. 희망은 언제나 존재하는 것, 매번 반복하지만, 현실주의자는 기적을 믿는다.     

 

물김치를 담아냈다. 옆에서 눈을 비비던 벌꿀오소리가 그냥 있기 민망한지 김치를 꺼낸다. 그리고 부침개와 명절 음식 갈비찜을 데워 상에 올린다. 떡국을 그릇에 담고, 달걀지단과 쇠고기 고명을 올린 후, 김 가루로 마감해 완성하였다. 아들아이가 음식 향기에 이끌려 식탁에 합석하면서 모처럼 네 식구가 한 자리에 모여 떡만둣국을 먹었다. 네 식구 중 아버지만 입을 다물고, 셋이 돌아가며 수다를 떤다. 목청을 높이는 아들을 보며 사내자식이 말도 참 많다는 생각을 했다.      


설거지를 끝냈다. 나의 벌꿀오소리는 딸아이와 여전히 수다 삼매경이다. 그 와중에도 부침개를 꾸역꾸역 입으로 밀어 넣는다. 위대한 인물이 틀림없다. 그런 후, ‘커피를 한 잔 마실까?’ 하더니, 봉지 커피를 한 잔 타서 마신다. 도무지 알 수 없는 포유류다. 나는 달아서 싫고, 프리마가 들어서 더 싫은데, 참 저렴한 입이라 칭찬할 수밖에 없는 그녀다. 커피는 크래커와 함께 먹어야 맛있다며 기다란 봉지를 뜯는다. 보는 것만으로도 배가 부르는 기막힌 경험을 또 한다. 내 돈 20만 원이 생각났다. 그냥 넘어갈 일이 아니다. 정초에 밀린다면 일 년이 밀리게 되고 결국 매번 발려야 한다.     

 

“끗발 마저 볼까요?”     


이 짧은 말에 눈이 눈깔사탕만큼 커지고, 크래커를 가득 문 입은 문드러져가는 함박꽃이 된다. 그리고 딸아이는 흥미진진한 관전자가 되어 응원의 박수를 보낸다. 소위 개평이란 것을 기대했던 까닭이다.     

 

“어제와 자리 바꿔!”     


내 말에 벌꿀오소리는 아무래도 ‘너 같은 인간쯤이야’ 하듯 순순히 바꿔준다. 나는 어젯밤과 달리 부엌을 옆으로 비스듬히 보며 앉았다. 딸아이에 의해 선이 정해지고, 떨어지는 깃털도 자를 만큼 날 선 검으로 승부를 가리기 시작하였다. 물론 점 5백 원으로 말이다. 역시 고스톱은 배부른 자가 불리하다.


그리고 ‘고스톱 풍수’라는 것 역시 무시할 수 없음을 나는 증명하였다. 풍수란 배와 같아서 가벼운 곳은 눌러주고, 무거운 것은 드러내야 한다. 좌청룡, 우백호, 전주작, 북현무야 다 아는 사실이나, 등 뒤로 모산母山을 두고, 좌우로 바람을 막고, 앞에 흐르는 물과 넓은 들판을 바라보며 먼 산을 집으로 끌어들이는 터가 사람이 살기 좋은 터다. 고스톱 역시 이와 크게 다르지 않다. 내 옆에 딸아이가 허한 곳을 메우고, 앞에 베란다가 시야를 확보해 주었으며, 뒤로는 안방으로 통하는 벽이 떡 버텨주니 이미 시작도 하기 전에 게임이 끝났다고 보면 된다. 어젯밤과 정반대의 상황이 벌어졌다.     





흔들고 쓰리고에 피박은 기본이요, 코주부 복개미는 항상 나의 차지였으며, 똥을 싸는 순간 홀라당 쳐서 먹으니 돈도 돈이지만, 약발이 올라 얼굴이 불타는 오징어로 변한 나의 벌꿀오소리의 거침 숨소리가 알 수 없는 긴장과 불안감으로 휘몰았다. 단언컨대 고스톱은 흥분해서는 절대로 이길 수 없다. 흥분하면 잘 보이는 패도 안 보이게 된다. 먹지 말아야 할 것을 덜렁 먹게 되면서 상대로 하여금 쾌재를 부르게 한다. 그리고 절대로 내선 안 될 패를 아무 생각 없이 바닥에 패대기친다. 낙장불입이라는 규정이 이럴 때 필요한 것이다.     



한 시간이 채 지나지 않아 어제 잃은 돈 20만 원을 되찾았다. 그리고 또 한 시간이 되자, 벌꿀오소리 구리 알 같은 돈 20만 원을 내 주머니로 공간 이동하게 하였다. 고백건대 결코 속임수를 쓴 적이 없다. 앞서 말한 것처럼 고스톱은 살짝 배가 고플 때 가장 큰 기력을 발휘한다. 나는 다 계획이 있었다. 아침에 떡만둣국 반 그릇에 만족하였음이다. 대신 나의 벌꿀오소리는 곱으로 드렸음은 말할 나위가 없다. 그것에 더해 갈비와 부침개에 커피, 크래커까지 뱃속으로 밀어 넣었으니 볼 장 다 본 셈이다.      


현금을 잃은 상대는 오기가 생기고, 이익을 챙긴 나는 여유가 생긴다. 이겼을 때 그만두라! ‘게임은 즐겁게, 끝낼 때는 단호하게!’ 정선 카지노가 비웃으며 부르짖는 불가능한 슬로건이다. 더 하자고 벌꿀오소리가 특유의 깡다구를 부려보나, 침묵! 꾹 다문 입술에 오소리 침이야 튀던 말든 아무런 상관이 없다. 이익은 영원하니까 말이다. 나의 벌꿀오소리는 이 억울하고, 분해서 미칠 것만 같은 작금의 현실을 인정하고 싶지 않았을 게다. 표정이 딱 그랬다.      


벌꿀오소리 입술은 고무줄처럼 얇아지고, 눈은 미늘처럼 변했다. 얼굴이 붉그데데 한 것이 무슨 일이 일어나지 않을까 염려스러웠지만, 옆에 심판이자, 관전자였던 딸아이를 믿었다. 물론 딸아이에게 개평으로 누런 이파리 한 장 던졌다. 그러자 제 어미 심정도 아랑곳없이 코 평수 늘려서 좋아한다. 현실은 냉혹한 것, 나는 손에 돈 40만 원을 부채처럼 펼쳐 팔랑이며 거실을 뱅글뱅글 돌아다녔다. 입에선 ‘너는 너밖에 모르고, 나는 나밖에 모르고, 우리는 길을 걷지 평생선~~’하며 최신 인기가요 ‘평행선’을 콧소리를 섞어 불렀다. 고개를 좌우로 흔드는 추임새도 잊지 않았다.      


나는 안다. 나의 벌꿀오소리 시선이 돈을 따라 이동하는 것을 말이다. 이때를 놓쳐선 안 된다. 비장의 한 수를 던졌다.     


“오빠! 해봐 이 돈 다 줄게.”      


아! 이 랄지 같은 상황이여! 하는 듯하였다. 아주 짧은 순간 갈등의 눈빛을 읽었기 때문이다. 기실 나는 연애 5년은 물론, 결혼 생활 33년이 지나는 동안 나의 벌꿀오소리로부터 한 번도 ‘오빠’소리를 들어본 기억이 없다. 건방지기 짝이 없는 벌꿀오소리는 나보다 나이가 무려 네 살, 호적 나이로는 다섯 살이나 적지만, 그토록 건방진 연애와 신혼생활이 좋은 추억으로 남아 있을 리 없다. 해서 이때를 놓칠 수 없었던 것이다.     

 

그러나 이내 작정한 듯 고개를 돌려 시선을 피한다. 그리고 이렇게 덧붙인다.

“할일 없나?”

숫제 반말이다. 꼭 일이 있어야 ‘오빠’하는 거 아닌데 말이다.  그렇다고 대번에 물러설 수 없다. 다시 현금 찌르기 공격!


"콧소리로 하면 따블, 윙크를 더하면 따따블..."


"웃기고 있네!"


찰나! 얼굴이 붉어지는 것을 나는 놓치지 않았다. 그러나 이내 본래의 모습, 벌꿀오소리로 돌아왔다. 결국 나는 웃기는 남편이 되었다. 그리고 그토록, 그렇게 간절하게 바랐던 ‘오빠!’ 소리를 듣지 못하였다. 나의 벌꿀오소리 지능이 좋았던 것인지, 아니면 알량한 자존심을 끝까지 내세우고 싶었던 것인지 알 수 없으나, 나 같았으면 ‘오빠!’ 소리 백번도 더 했을 법하다. 아니, ‘누나!’라고도 할 수 있다. 쪽팔림은 순식간이고, 이익은 영원하니까 말이다.   

   

그리고 나는, 마음이 잔잔한 호수의 잔물결 같은 나는, 성정이 솜처럼 부드러운 나는, 정서가 아기 피부만큼 말랑한 나는 기어이(?) 딴 돈을 돌려주고야 말았다. 큰방 화장대 위에 슬그머니 올려놓자, 못 본 척한다. 이는 결코 집안의 평화를 위해서가 아니다. 마음이 태평양처럼 넓은 남자와 한 집에 산다는 것을 알려주고 싶었을 뿐이다.      


역시 꿈이 들어맞았다. 겸손하면서 결백한 남편이라는 것을 나의 벌꿀오소리에게 알려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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