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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필우입니다 Apr 11. 2024

외로움, 심연의 고독이 되다

여행은 자아의 퍼즐 맞추기



         

두 분 수녀님 좁은 어깨 사이를 비집고 은빛 햇살이 내려앉는다. 확고한 종교적 신념이 담긴, 이보다 더 경건할 수 없는 발걸음을 따라잡았다. 멀리서 목회자 주술 같은 소리가 나뭇잎 사이로 가늘게 들린다. 신을 향한 간절함이 남 같지 않다. 실골목을 벗어나 편도 2차선 인도에 올라섰다.      


차라리 골목이 좋았다. 타인의 무심한 눈길이건만 아무리 반복되어도 그때마다 제 혼자 한기를 느낀다. 그러니 내가 죄 없는 죄인인 양 고개를 숙일밖에….


오늘따라 더 좁은 인도, 울퉁불퉁 서덜길처럼 튀어나온 블록 모서리가 심장까지 치댄다. 그도 부족해 걸음을 방해하는 전신주가 이렇게 많았음을 새삼 깨닫는다. 도무지 어떤 힘으로도 쓰러지지 않을 것만 같은 거인을 상대할 자신이 없어 짧게나마 편의점 의자 신세를 진다. 괜히 담배를 끊었다. 다들 분주한데 나만 가뭇없다. 가없는 영혼의 고요.     


얼마를 걸었을까? 마치 일에 쫓기는 사람인 양 횡단보도를 바쁘게 건너고 휴대전화기를 들어 시간도 확인한다. 사방을 둘러보았다. 매끈하게 빠진 얼음장 같은 사각의 건물이 자본의 위용을 자랑하고, 넓은 배를 드러낸 10차선 도로를 위세 좋게 질주하는 자동차들이 저마다 바쁘다.


토막토막 하등 의미 없던 지난 순간을 이어 붙이자, 도무지 내가 어디를 향하고 있는지가 궁금했다. 깨닫고 보니 목적은커녕 갈 곳도 오라는 곳도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함께 천국에 가자는 인간의 유혹을 허세 좋게 뿌리친다.


역시 골목이 제격이다. 예수 천국을 뒤로하고 실핏줄처럼 이어진 골목으로 생소한 발걸음을 옮겼다. 한밤의 잔재들이 어렴풋이 남아 시선과 코를 비릿하게 만든다. 골목마저도 저마다 성격을 달리한다고 새삼 깨닫는다. 그래도 시멘트 담장 아래 한 줌 흙에 삶을 지탱한 노란 민들레가 자연의 경이로써 계절을 알린다. 깨진 간판 사이로 딱 고만큼 골목으로 햇살이 비친다. 태양이 주는 알량한 축복 같다.       


휑하게 열린 식당 출입문에 섰다. 하세월 객을 기다리며 졸고 있는 아주머니가 이방인 기척에 부스스 고개를 든다. 마주친 눈길이 외롭다 한다. 입을 가로로 찢어주고 돌아서자 빈총에서 쏘는 바람탄환이 등짝에 명중한다. 아주머니나 나나 순식간에 외로움이 코팅된다.


문 닫힌 분식집 입구에 ‘폐업’ 팻말이 작은 바람에 흔들린다. 그동안 고마웠다고 전혀 고맙지 않게 인사하고 있다. 작금의 상황이 마치 너 때문이라는 듯 씁쓸하다. 눈을 가까이해 빈틈으로 안을 들여다보았다. 먼지 묻은 집기들이 널브러져 침묵의 랩소디를 연주하고 있다. 공연이 끝난 후 무대 뒤의 풍경 같다. 절대로 열리지 않을 것 같은 출입문 아래를 발로 툭 찼다. ‘챙!’ 하고 공허가 가슴에도 공간에도 울린다. 짧은 순간 침묵을 즐긴다. 돌아섰다. 바닥에 빈 점포를 알리는 아크릴 팻말 떨어지는 소리가 들린다. 이제 외롭지 않겠구나.     



곁에 있어야 할 사람이 냉소를 머금은 채 마주 보고 있다. 눈에서 멀어지면 마음도 멀어진다는데, 순 거짓말이다. 몸이 가까이 있어 마음이 가까워져야 하건만, 어찌 된 일인지 점점 더 멀어지기만 하니 기가 찰 노릇이다. 이쯤 되면 마음을 비집고 냉기가 든 것이고, 그 틈에 몹쓸 바이러스가 정신을 갈라놓았다는 의미다. 한때 무지갯빛이 현실이라는 시공에 걸리자, 갈등으로 변신하는 일은 순식간이었다. 비난만이 난무하는 부정할 수 없는 미래를 마주한다.      


바람 부는 가지에 앉은 참새 신세라도 꿈이 있었으면 좋겠다. 골목의 끝은 골목이 아니다. 여행사 간판이 길잃은 자를 가로 막는다. 파란 하늘 아래 짙푸른 바다그림이 파노라마로 펼쳐져 있다. 문득 가슴에 파도를 담고 싶었다. 부딪치고 부딪쳐도 지치지 않는, 젊고 건강한 파도와 함께하면 가슴에 끓는 불신의 앙금이 가라앉을 것 같다. 어쭙잖은 사치, 알량한 자기연민, 얄팍한 지적 허영, 싸구려 혼돈, 낡은 영혼의 소리와 함께 어설픈 사색을 흉내 내며 버스에 올랐다.


분리수거도 힘든 난삽한 삶을 실은 버스가 외롭다 흔들린다. 의미 없는 목적지를 향해 쉼 없이 달려주니 그저 좋다. 숨죽이던 세포에 생동이라는 리듬이 빠르게 들려왔다. 창밖 풍경처럼 음과 박자가 정신없이 바뀐다. 망망대해를 품었던 가슴은 시간이 지날수록 지루에 빠진다.     


변덕, 마음의 소음을 벗고 잠을 청한다. 흔들리는 버스에서 잠을 잔다는 것은 기적보다 더 힘든 일임을 이내 깨닫는다. 침묵이 쌓이고 절대고독이 엄습한다. 벗어날 방법이 없다. 몸과 마음을 움츠리며 고독이 물어뜯도록 정신을 맡긴다. 창밖은 빈틈없이 화창하다. 게으른 놈이나, 놀기 좋아하는 백수가 딱 좋아하는 날씨다. 외로움에서 출발한 고독은 익숙해지기 마련, 가슴에 물기가 스며든다. 아마도 햇살에 습기가 차서 일 게다.     



목적지를 수정해 일찍 내렸다. 인내력이 바닥을 드러낸 것이다. 궁금해하라고 버스 기사가 품는 의문을 풀어주지 않았다. 저도 나만큼 외로운 게다.



기억 속 풍경은 아니지만, 그런대로 흡족했다. 고향에서 떠밀려 굴러떨어진 바위가 모래사장 가운데 놓였다. 파도는 물결을 타고 기세 좋게 밀려와 바위에 온몸을 내던져 부딪친다. 쉬는 법이 없다. 한 번 버림받은 바위는 꿈쩍 않는다. 포기를 모르는 파도는 포말로 부딪친다. 햇살에 물보라가 순식간에 피어났다 사라진다. 영상 화면을 정지해 머릿속에 각인한다. 화해의 빛인가?    

 

나아갈 용기도, 뒤돌아 오를 능력도 없는 바위를 가늠자로 해 언덕에 앉았다. 저 멀리 하늘과 바다는 경계를 잃었다. 온통 파란 세상에 흰 등대와 빨간 등대가 마주 보고 섰다. 더 멀어질 일도 더 가까워질 사연도 없다. 간극의 아름다움, 그 사이로 애지 만한 배가 가늘고 흰 선을 그으며 나아간다. 마음속 갈등의 음양이 뭉개지는 듯하다. 그간 형체에 집착하며 사유화하려던 과거가 의미를 잃었다.




상념을 깨는 기척에 뒤를 돌아다보니 할머니가 반갑다 인사한다. 고독한 이방인은 더 반갑다. 그러나 이내 경계의 시선을 보냈다. 활어 한 접시와 소주 한 병을 흥정한다. 할머니 손가락을 따라 시선을 돌리니 짧은 방파제 입구에 작은 컨테이너가 놓였다. 고독에 윤활유를 칠하란 뜻이었다. 파도 소리가 할머니 뒷말을 먹었지만, 돈을 건넸다. 기다려도 오지 않는다. 활어와 쓴 소주는 파도에 쓸려갔다. 성직자가 원한을 품은 것 같은 심정이 이런 거였다.


컨테이너로 향했다. 할머니가 파도가 뭐라고 하기에 넋을 놓느냐며 측은하게 바라본다. 응당 가져다주리라는 나만의 오해였다. 적은 돈을 지불하고 얻은 쾌락은 돈 만큼 짧았다.      

버스에 몸을 실었다. 어둠을 뿌리며 잘도 달린다. 창밖은 풍경은커녕 삶에 찌는 중늙은이가 어둠 속에서 마주 본다. 꿈을 많이 꾸어서 더 빨리 늙어버린 영혼이 세상을 향하고 있다. 절대 무위 고독 속 심연의 잠에 빠진다.      




꿈인가 환영인가, 온통 파란색에 더없이 희고 빨간 등대가 서로를 향해 빛을 나눠주고 있다.      

거실이 더 없이 밝다. 눈이 부시다.

아내가 돌아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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