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동안 살짝 다른 여행을 하였다. 역사가 내게 던지는 교훈과 우리 문화재가 주는 진실에 사색하고 사고하며 나를 찾아가는 과정의 보약을 즐겼다. 그런 까닭에 어느 시각으로, 어떤 모습으로 얼마만큼 보느냐가 더욱 중요한 내 마음 순화의 실마리가 되기도 하였다.
참 오래되었다. 노마드, 삶의 유목민에겐 여행이란 필연적으로 뒤를 돌아보게 하는 마력이 있다. 여행은 자아라는 퍼즐을 맞추기 위한 시간, 내 삶도 그러하다. 인생은 종착역보다는 그 자체를 즐기는 과정에 목적이 있다. 결과가 빤하다면, 길을 벗어날 용기와 지혜가 필요한지도 모른다.
암울하고 넌더리 나는 현실을 벗어나고 싶을 때 현실에서 도망치듯 훌쩍 떠나곤 하였다. 어쩌면 벌꿀오소리가 휘두르는 암묵적 묵언의 폭력에 맞서는 비장의 카드였다. 패배의 조각을 모아 괴나리봇짐에 둘러메고 회심의 미소를 머금고상황을 벗어나곤 했다. 예봉을 피하는 것이 아니라, 서로에게 간극의 마력이 주는 아쉬움과 허전함에 대한 미련을 극대화하기 위한 까닭이다. 찔러도 피 한 방울 나오지 않을 벌꿀오소리에겐 해당되지 않을 수 있겠지만, 그도 이전에는 인간이었음을 충분히 증명할 수 있으리라 생각하였다.
외로워도, 아무리 외로워도 혼자 걷는 발길은 절대고독도 녹이는 마법이 발휘되곤 한다. 누군가 깨끗이 쓸어놓은 길을 감사하며 그렇게 밟고 간다. 때론 아무도 가지 않는 길을 갈 때도 있다. 먼 길을 돌아갈 때도 있고, 험한 길을 헤치고 갈 때도 있다. 상상하며 길을 만들어 가기도 한다. 그러다 보면 길이 아닌 길도 갈 때도 가끔 있다. 구닥다리 카메라 둘러메고, 어쩌다 솜씨 없는 터수에 스케치북 하나 있으면 그만이고, 산문집 한 권 넣고 나면 가슴엔 행복한 포말이 몽글 솟는다.
이마에 송골송골 맺혀오는 땀방울이 기분 좋게 하는 이유란, 가끔 생각지도 못했던 횡재수가 있어서다. 산길에서 반기는 이름 모를 야생화 몇 송이 가냘프게 피어 있다거나, 답사 지도에도 나오지 않은 석탑 부스러기를 발견했을 때 들려오는 가슴의 환호성을 기억하기 때문이다. 사실 더 한 것은 오다가다 만난 사람의 인연에 짙게 배 있는 삶의 진실이 숨어있어서다. 인연에는 세상사 고달픔을 잊게 하는 숨은 지혜가 담겨 있으며, 사람의 진솔한 향기는 머리와 가슴까지 맑게 해 주곤 한다.
어린 시절, 여명이 밝기도 전에 멀리 산사에서 울리는 범종 소리를 들으며 힘겹게 단꿈을 밀어내던 아이였다. 초등학교 3학년 때부터 해 오던 신문배달 일을 하기 위해서였다. 사찰의 종소리는 나의 아침을 깨우는 소리이자, 하루를 어린 소망을 함께 여는 소리였다. 그래서인가, 굽이친 길을 돌아설 때 불어오는 단 맛의 바람은 청량한 범종소리로 변화되는 신기로 몸의 고단함을 잊는다. 자작자작 걷는 발걸음에 사색이 묻어나고, 삶에 힘겨웠던 시간도 맑게 정화하는 보이지 않는 장치가 있다. 그렇게 걷다 보면 어김없이 우리 옛사람들의 숨결이 담긴 이야기가 산길 끝에서 반긴다.
이 모든 게 문화재와 역사의 현장 답사쟁이로 살아온 삶이 이토록 행복한 까닭이다. 역사와 애환과 선현의 삶을 거슬러 오르면 종교의 편협함도 없으며, 강요하지 않은 자유로움이 널려있기도 하다. 그렇게 다녀와 메모와 사진을 정리 할 때면 나도 모르게 이상한 한숨이 샌다. 미련이 남아서요, 모자란 감성에 저급한 욕심이 있어서라는 것을 나는 안다.
“그거 찾아다니면 밥이 나와, 술이 나와?”
우리 집 벌꿀오소리가 미련한 애착을 보다 못해 하는 말이다.
‘그래도 가끔은 술도 얻어 마시고 밥을 얻어먹기도 하는데…….’
입에서 우물거릴 뿐 정작 대꾸는 할 수도 없다.
대화의 결론은 늘 그랬다. 우리 집 벌꿀오소리와 답사 가는 일정으로 언성을 높이며 다투었다. 일상의 의무는 등한시한 채 답사에 빠져있다는 것이 이유였다. 결국 딸아이의 제안과 아들의 응원에 힘입어 타협점을 찾았다. 가족여행으로 몇 단계 업 데이트하였다. 여행의 목적지 동선에서 폐사지 딱 한 곳만 들리기로 하면서 화합의 실마리를 찾았다. 가족의 화목을 위한 의지만 위대한(?) 남편의 속좁은 아량이었다.
동해를 향하는 길, 운전은 늘 그랬듯 벌꿀오소리 차지다.오로지 직진의 순간, 아찔한 기억도 많다. 초행길의 서울, 88올림픽도로에서다. 시속 100km 전용차도 중간에 멈추는 만용, 뒤를 따르는 차들이 고함을 치며 바람처럼 옆으로 지나칠 대의 아찔함은 더 상상하기도 싫은 기억이다. 고속도로에서 길을 잘못 들었다며 중앙에 떡하니 버티는 절체절명의 순간에 다행하게도 나는 없었다. 딸과 처제들 머리를 타고 흐르는 번개 불빛과 동시에 간 떨어지는 소리는 시공을 뛰어넘어 지금도 이명처럼 남아 있다.
“언니야, 일단 진정하고 앞으로 가자!”
사정하는 큰 처제의 떨리는 목소리에는 목숨을 구걸하는 파장이 담겨 있었음이다.
고속도로에 올렸다 하면 스스로 베스트 드라이버로 착각하는 여인이다. 앞에 보이는 차는 무조건 추월하는 똥차 조수석에 앉아본 적이 있는가? 서울까지 가는 도중에 여태껏 추월한 차가 아까워 휴게소에 한 번도 들리지 않는 여인네와 살아본 적이 있는가? 오줌보를 쥐고 사정하던 구질구질한 기억을 삭제할 수 없어 더 고통이다.
“그러게, 차에서 캔 맥주 마시지 말라니까!”
하며, 지금껏 추월한 차들을 아쉽게 떠올리고 있을 것이리라.
지금도 나는 조수석에 앉았다가 내릴 때면 다리가 마비되며 뻣뻣해지는 경험을 하곤 한다. 손잡이를 잡은 어깨와 팔도 뻐근하다.
그뿐이면 다행이다. 다른 차가 뒤를 바짝 따를 때면 운전 매너 운운하며 화를 머리끝까지 솟구치는 아내다. 그런데 정작 자신의 행위는 한결같이 너그럽다. 국도 산길에서 소형차 뒤를 버릇처럼 바짝 붙여서 따를 때다. 제발 바짝 붙이지 말고 여유 좀 두고 가자고 사정하였다. 명쾌한 대답과 달리, 끝내 쫓기듯 앞서가던 차 앞바퀴가 도랑에 빠지고서야 만족하는, 그따위 기억을 추억으로 간직하는 여인과 나는 함께 산다.
그 앞차에 여리고 여린 가련한 여인이 운전 중이었다. 혹여 아이라도 타고 있었더라면, 상상도 하기 싫은 기억이다. 문제는 의식에 있다. 마음과 달리 성질을 다스리지 못하는 벌꿀오소리 본능이 모든 것들을 상쇄하기 때문이다.
가는 도중 딸아이에게 사정하였다. 용돈 운운하면서 네가 운전하라고 말이다. 그런데 희한한 일이다. 벌꿀오소리는 직접 운전하지 않으면 차멀미한다. 참 기막힌 드라이버 운명이다. 그래도 참으라고 목숨을 저당 잡힌 소심한 항거 끝에 휴게소가 나올 때마다 쉬었다 가기로 타협점을 찾았다.
돌고 돌아서 목적지와 하등 상관없는 곳에 도착하였다. 차에서 내리자 바람이 불어 귓불을 스치고 지나간다. 가슴이 설렌다. 문득 고개를 들자, 선산 낙산동 삼층석탑이 오랜만이라며 환하게 반긴다. 세상에 배신당하고 가장 아파할 때 눈물로 위로하던 그 석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