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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필우입니다 Sep 06. 2023

 파르테논과 아폴론 신전



도리스식 신전의 극치 - 파르테논신전            


군사 수가 승패를 좌우를 가늠하는 잣대는 될 수 있어도 무기와 군대의 장비 수준 차이처럼 승패에 결정적인 역할을 하지는 못한다. 그리스 연합군의 긴 창, 접근했을 때 적을 살상하기 용이한 짧은 검, 투구와 청동갑옷과 방패가 위력을 발휘했다. 그리고 반드시 이기겠다는 의지도 무시할 수 없다.      


기원전 513년부터 시작된 페르시아 제왕 다리우스 1세와 그리스 도시국가들 간 세 차례에 걸친 정쟁은 그리스 승리로 끝났다. 다리우스 1세 아들 크세르크세스 1세 마저도 아버지 유언을 받들어 전쟁에 평생을 보냈지만, 하늘은 진정 그들 편이 아니었다. 




크세르크세스 1세의 아들 아르타크세르크세스 1세(ArtaxerxsesⅠ) 때 와서 ‘키몬의 평화체결’로 할아버지 때부터 이어오던 그리스 원정에 포기라는 종지부를 찍는다. 그리스로서는 승리라는 기쁨에 도치될 수만은 없었다. 두 차례 페르시아의 침탈로 그야말로 아테네는 폐허에 가까웠다. 특히 아테네 상징적이라고 할 수 있는 파르테논신전은 처절하게 파괴됐다.     



아르타크세르크세스 1세(세리에 지오비아나 1552년-1568년) 위키백과

이처럼 아테네는 평화가 찾아왔지만, 몇 번의 페르시아군의 방화로 폐허에 가까웠다. 이들이 가장 먼저 복원한 것이 파르테논신전이다. 승리를 안겨준 전쟁의 여신 아테나에 대한 칭송을 이어가야 했기 때문이다. 파르테논신전은 기원전 447년 당대 건축가인 페이디아스와 익티노스, 칼리크라테스 등에 의해 시작되어 기원전 432년에 와서야 마감할 수 있었다. 이렇게까지 공들인 까닭은 그리스인들에게 신화는 성경만큼 진실이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파르테논신전도 세계의 중심이 로마로 이동되면서 기독교를 국교로 삼은 로마에 의해 교회로 탈바꿈된다. 이뿐만이 아니다. 15세기 오스만제국의 이슬람이 발칸을 지배하자 모스크로 변신했고, 이곳에 무기를 보관했다. 베네치아가 그리스를 도와준다는 명목으로 포탄을 날려 신전의 일부가 파괴되는 비운을 맞아야 했다. 그러다가 1801년 약탈의 끝판왕 영국의 엘긴 경의 약탈이 이어지고, 지진까지 일어나 신전을 흔들어 놓았다. 인류 보편적 문화유산인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 공식마크가 파르테논신전의 기둥과 지붕을 기본으로 하고 있다는 것은 모두가 아는 사실이다.                 




세계의 배꼽 - 델피 아폴론 신전


고대 그리스인들, 특히 폴리스 도시국가들은 중요한 결정을 내릴 때 신에게 가부를 묻는 관례가 있었다. 앞에서 보았듯 죽고 죽이는 전쟁 와중에서도 신의 뜻을 물었다. 이 행위를 신탁神託이라고 하는데, 우리 동양에서 무녀에게 점을 치게 함으로써 접신한 무녀의 입을 통해 신의 소리를 듣는 의식과 같다. 



그리스 델피 아폴론신전


이곳 델포이에도 신화가 하나 전해내려 오고 있다. 이곳에는 대지의 여신 가이아가 저 홀로 낳은 아들 피톤이 살고 있었다. ‘썩다’라는 어원을 가진 피톤은 거대한 뱀, 혹은 용의 모습을 하고 있었으며, 파르나소스 남쪽 기슭에서 암컷 피티아를 거느리며 가이아의 신탁을 전했다. 그러나 성격이 포악해 동물과 사람까지도 마구 잡아먹다가 때마침 태양의 신이자 예언의 신이었던 아폴론이 신탁 터를 찾아다니 중 이 소식을 듣고 화살로 피톤을 죽였다. 이때 암컷 피티아는 죽이지 않고 대신 신탁을 전하게 했다고 한다. 이후로 피톤이 점쟁이의 어원이 되었으며, 이곳 지명 역시 피톤에서 델포이로 변했다.


델포이가 세계의 중심이라고 여긴 것은 고대인들은 이 땅이 평평하다고 인식했으며, 델포이가 옴파로스, 즉 세계의 배꼽이라 생각하고 있었다. 지중해(Mediterranean Sea)란 말도 지구 중심에 떠 있는 바다란 뜻이니 이러한 전설이 생겨난 것이 당연한지도 모른다. 신들의 제왕 제우스가 독수리 두 마리를 동쪽과 서쪽에서 각각 놓아주며 세계의 중심으로 날아가게 했더니 바로 이곳 델포이에서 만났다. 사람들은 그곳을 표시하기 위해 옴파로스(그리스어로 배꼽, 종 모양을 한 돌)로 표시했다. 그곳에 태양의 신 아폴론을 위한 신전을 세웠다. 



옴파로스증후군이란 말이 있다. 자기아류自己我流가 쌓이는 폐쇄적 반복이 습관처럼 축적되어 배타적 이기심, 외부의 공포 등에 갇혀 우물 속 개구리처럼 사는 사람을 이 증후군이라고 부른다. 의외로 우리 주변에 많이 찾아볼 수 있는 부류다.      


신탁에 의존하는 것은 인간들뿐만 아니라 신들도 예외일 수 없었다. 바람둥이 제우스 역시 신탁을 무한 신뢰했던 것 같다. 아킬레우스의 어머니 테티스의 미모에 혹했으면서도 그가 낳은 아들이 아버지를 능가할 것이라는 신탁을 듣고 테티스를 평범한 인간과 결혼시킨 것만 봐도 알 수 있다. 


이 외에도 신탁에 의해 생겨난 전설이 많다. 아버지를 죽이고 어머니와 결혼한다는 오이디푸스의 신화도 그중의 하나다. 이로 인해 오이디푸스콤플렉스라는 것도 생겨났다. 비슷한 이야기가 또 있다. 우연하게도 자신의 외할아버지를 죽이는 페르세우스 신화도 이곳에서 출발한다.


미래를 미리 안다는 것은 불행을 피해갈 수 있다는 점에서 일면 다행이지만, 어떻게 보면 더한 불행이 될 수도 있다. 미래에 대한 예언을 듣지 않았더라면 그냥 모르고 지나쳤을 수도 있을 일을 지레 불안해하며 확실한 불행으로 만들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람이라면 누구나 본능처럼 내일을 걱정하고, 미래에 대해 하나라도 알고 싶어 하기 마련이다. 



델포이 신전은 고대 그리스 사람들에게 가장 중요하고 신성하기 짝이 없는 장소였다. 영험하다는 소문이 돌자 지중해는 물론이고 아프리카, 아시아 등 각지에서 몰려든 사람들로 붐볐다. 그러자 여론과 정보를 교환하는 장소로 변했고, 이를 토대로 신탁을 자의로 해석할 수 있었을 법하다. 아테네, 스파르타, 코린트 등 도시 폴리스들의 중요 결정도 바로 이곳에서 이루어지곤 했다. 자연스럽게 아고라가 형성되고, 신에게 바칠 용품을 파는 곳도 생겼으며, 전리품을 보관하는 창고도 만들어졌다. 특히 아테네가 페르시아와의 마라톤 전투에서 승리를 기념하기 위해 도리아식 기둥이 우뚝 솟은 보물창고도 만들었다.



델피 아테나 신전



아폴론신전과 조금 떨어진, 올리브나무숲 사이로 난 길을 따라가면 매우 매력적인 신전의 흔적이 나타난다. 스무 개의 도리스식 외부 원형기둥과 열 개의 코린트식 내부 기둥으로 톨로스식 원형을 이루고 있다. 이곳이 바로 아테네의 수호신 아테나를 숭배하기 위한 신전이다. 원형 가운데 아테나 신의 조각이 있었을 것으로 추정된다. 비록 흔적뿐이지만 위에서 내려다보았을 때 상상만으로도 충분히 가능하다. 온전한 기둥과 벽을 상상해 이어붙이고, 원형의 지붕을 올린 모습은 빼어난 멋을 자랑하면서도 기교와 힘이 어우러진 완벽한 아름다움을 간직한 건물이었을 법하다. 


옴팔로스(델포이 박물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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