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 초에 갖는 회의는 참여자가 족히 60여 명은 넘는다. 거대 조직의 살림살이를 소관별로 오너에게 보고한다. 다른 부서 일도 듣고 사람 구경도 한다. 12월의 낮 기온이 오랜만에 풀려선가? 건물을 나와 길을 따라 걸었다. 두 시간 넘게 앉았던 회의실을 나가며 뒤돌아 보는 사람이 드물었다. 붙드는 사람도 없었다. 그동안 내가 붙들고 차를 마셨던 것 같다. 오늘은 일부러 방문하고 싶은 부서도 없었다.
앞 세대들에게 할 수 있는 만큼 진심으로 대했다. 그들이 어떤 생각을 하고 떠났을지 모르지만 차별을 두고 그들을 대하진 않았다. 3~4년 정도인가? 기억이 그만큼만 돌아 보이는 건지 색다른 경험이 남았고 그 경험은 진행 중이다. 사람들의 행동과 태도가 다양하다. 그동안은 못 보고 살아온 것일까. 연말이라 새삼스레 느껴지는 건가? 일이 끝나도 사람은 남았는데 사람이 끝나는 경우가 꼽아진다.
애초에 속셈으로 다가온 게 분명하다. 그렇다면 내가 중요한 사람이고 중요한 위치에 있는 걸까. 내게서 얻을 무언가가 있었다는 것일까. 참 해괴하다. 그렇게나 과한 친절이 신기하긴 했다. 이 나이에도 사귀면 평생지기가 될 것이라 여겼으니 순진한 생각이었다. 낯선 인간에게 무얼 그리 기대를 걸었던 건지. 그래도 최소한 내 뜻으로 내가 판단하고 내가 전해준 진심이었으니 그만큼에서 접자.
'다른 사람에게 피해를 주는 것이 아니라면 그저 실망 같은 건 시켜도 된다고, 본질이 아닌 것에 의지하여 자신을 잃지 않도록 하라는 글(몬스테라 작가)'을 읽으면서 그 내용과는 전혀 다른 방향으로 위로를 받았다. 그(그녀?)는 또 이런 말도 했다. '사람은 때로 타인을 잃어야 자신을 지킬 수 있다'라고.
굳이 매사에 의미를 가지려 하지 말자. 흘러가는 대로 때로는 감정도 두고 갈 필요가 있겠다.
보수적인 동네 정 운운하는 분위기에 넌더리를 했어도 비겁한 자는 드물었는데 시절 탓인가. 계절 탓인가. 아니 내 마음 탓인가. 지난해 맞은 12월과 이렇게나 또 다른 12월을 맞고 있다. 바쁘다는 말은 핑계였나 보다. 두꺼운 책을 받아 들고 흥감해했으며 볼 책이 많아 좋아 죽겠다고 해놓고선 저녁 내내 횡뎅그레하던 찬바람을 붙들고 있다. 다시 12월이다. 다시 또 시작이다. 12월 다음이 1월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