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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성조와 덕이 Apr 29. 2024

홀로 앉은 까치를 보며 생각하다

k-컬처는 그냥 나온 게 아니다


'이이화의 못 다한 한국사 이야기'


타민족을 침략해 본 적이 없는 나라



아침부터 빗줄기 소리가 요란하다. 빗소리도 좋아하는데 창가 처마 밑에 까치가 와서 깍깍거리기까지 했다. 워낙에 거센 빗줄기에 엄두가 안 난 듯 멍한 까치는 날개가 함빡 젖어있었다. 오래 앉았다 갈 것으로 기대했는데 부르르 몸을 털더니 어느 순간 휑하니 사라졌다. 올 때처럼 갈 때도 거기 없었던 듯이. 더 나은 곳이 있거나 누가 보는 걸 알았나 보다. 그래도 오늘 무슨 일이 있으려는지 누군가는 기분이 좋아졌다. 


유난히 잦은 비가 왔다 하면 듬뿍듬뿍 온다. 그걸 좋아라만 할 건 아닌 것 같다. 20여 년 전 이이화 선생님이 쓰신 역사 에세이 서문에도 환경오염 걱정이 있었다. 기상이변이 맞다.


대륙의 동쪽에서 긴 생명력으로 내재적 발전을 이룩해 왔고 식민시대를 지나 분단시대를 살아가는 우리 민족 이야기를 굵직굵직하게 들려주신다. 원로 역사 학자님이 쓰신 역사 이야기다. 여러 신문과 잡지에 발표했던 소중한 글이다. 잠시 보고 넘기려 했는데 한 편도 그냥 지나칠 수 없었다. 제대로 알아야 할 이야기였기에 줄을 쳐 가며 읽었다.




총 31편의 역사 에세이다. '파벌의식은 민족성인가'라는 글이 있었다. 일제 식민지 지배자들이 한국 민족은 단결할 줄 모르며 분열을 일삼는다고 한민족의 민족성인양 선전했다. 그 논리로 그들은 식민지 지배를 합리화했다. 파벌의식은 어느 집단에서고 나타나는 현상이고 먼저 우리 역사에서 그 형태를 찾아본다. 그리고 남북에서 동서 현상으로 팽배해진 현상을 짚으셨다. 


'우리나라는 봉건체제에서 일제침략기, 근대사회와 산업사회 그리고 자본주의로 이행하였다. 이 과정이 단계적으로 발전하지 못하여 모순이 커지고 더욱이 자생의 것이 아니라 외래의 것을 수입하거나 수용하다 보니 우리에게 맞지 않은 경우들이 많았다.'라고 한다.


'우리나라는 마을과 마을, 부족과 부족, 지역과 지역사이에 경쟁을 하기도 하고 투쟁을 벌이기도 하며 구성원끼리 공동체를 이루며 살아왔는데 자기 집단의 이익을 위해 패거리를 짓게 되었다. 이것이 굳어져 파벌을 낳게 되었다.'


'조선 중기에 그 파벌이 고착화되는데 첫째가 '문벌'로 양반출신의 지배층이 얻은 벼슬과 녹과 군역의 면제 등이다. 두 번째는 '학벌'로 근대이전에는 과거 공부를 위한 것과 공맹의 도학을 익히는 것이었으나 주자학을 학문의 교조로 삼은 조선조의 학문 풍토는 주자학을 벗어나면 이단이 되었단다. 이 주자학 서원의 학맥이 당쟁으로 연결되었다.'


세 번째 파벌로는 '지연'을 든다. 신라가 통일한 후 고구려권, 백제권, 신라권이 우리 민중의 의식 속에 자리 잡게 되었다. 고려 왕건이 이들의 힘을 합해 신라를 무너뜨렸으나 신검의 끈질긴 저항에 감정을 품고 백제권 유민에게 차별의 굴레를 씌웠다고 한다. 그러나 고려는 일부 지역에 차별을 한정하였으나 실제로 하지 않았고 그때까지는 지역의식이 그리 심하지 않았다고 한다.  


조선 초기 함경도 중심의 인사들이 중앙정부에 반기를 들어 함경도 평안도 황해도 인사들의 등용이 제한되었고, 조선 중기는 호남지방이 차별을 받았다. 정여립이 벼슬에서 물러나 호남 인사 중심으로 모반을 꾀했다는 이유였다. 조선 후기에 와서는 경상도가 차별을 받았는데 노론중심의 기호지방과 정권투쟁을 벌여 밀려난 탓에 벼슬길이 막힌 경우란다.


결국 조선조에는 특정 지역만이 벼슬을 독점했고 모든 기득권을 누렸으며 이 문벌 학벌 지연은 조선조의 당쟁과 깊은 연관을 맺는다. 한국 파벌의 큰 덩어리는 결국 지배층 사이에서 시비를 가리는 일로 때로는 정권을 잡으려고, 때로는 기득권을 계속 독점하려고 일어난 일로 보셨다.


선생님은 오늘날 가장 큰 파벌 문제로 '지연'을 들었다. 예전에 남북을 얘기했는데 지금은 동서현상이 나타나고 경쟁의식이 악성 파벌의 모습을 나타내기 시작한 것은 박정희 정권 때 경상도 출신을 정권 유지의 핵으로 삼아 다른 지역 출신을 견제해 온 것을 예로 드셨다.


선거 때마다 두 지역의 표를 얻으려고 사람들을 충동질하게 되면서 적대감으로까지 번져 갔다고 이는 자유와 평등을 기본으로 하는 민주사회의 본질을 흐리게 하는 의식이라고 하셨다. 24년 전에 드신 예인데 지금도 나타나는 동서의 깊은 골은 마음을 착잡하게 한다.





유구한 세월 동안 우리 민족은 타민족을 침략하여 노략질한 적이 없다. 지배층의 오만과 독선으로 백성의 삶이 피폐해졌을 때는 민중의 힘으로 바로 세우려는 열망이 일어났다. 그러한 나라가 민족을 팔아먹은 친일부역배의 처벌은 물론 그 죄상도 제대로 조사하지 못했는데, 동서의 골이 깊어진다는 것은 얼마나 큰 힘의 낭비일까. 더 큰 적을 두고 말이다.


더 큰 적은 수없이 많다. 지척의 땅에서 수천 년간 우리 민족을 괴롭히고 노략질했던 나라뿐 아니라 힘의 논리 앞에 아부하여 자신과 제 자손의 안일만 꽤 하면 된다는 정신도 적이다. 유구한 역사와 우리말과 우리글을 가지고 K-컬처를 이룰 수 있었던 것은 그러한 정신적인 적들과도 싸워이긴 수많은 사람들의 실천이 있었기 때문일 것이다. 


민족과 후손이 알아주지 않아도 이름 없이 스러져간 많은 독립애국자들이 있었다. 역사를 공부하는 것은 눈앞의 이익만을 위하는 소인배들의 술수와 조작을 알아채고 더 크게는 주변국의 술수와 농간도 제대로 읽기 위함이기도 할 것이다.


개인의 생각과 힘은 미미하다. 혼자만의 고집과 주장은 외롭다. 하지만 사회의 연장자라면 우스갯소리라도 힘의 논리에 편승하여 자신부터 지켜야 한다는 말은 하지 말았으면 좋겠다. 그게 이름 없이 스러져 간 수많은 애국자들과 이 나라를 세우고 지켜낸 사람들을 위한 최소한의 예의가 아닐까 생각한다.


우리가 이룬 세계 1등이 참 많다. 타민족을 침략해 본 적 이 없다. 좀 더 힘내보았으면, 슬기로워졌으면, '지연'으로 힘 낭비하지 말았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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