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아니스트 문용희 선생님을 만나다
왠지 아껴서 보게 되는 책처럼 몰랐던 분야를 넘겨다 본 날은 아이처럼 마음이 설렌다.
아무리 똑똑해도 삶은 유한하다. 어쩌면 우린 한 생을 살아가면서 인류가 쌓아온 문명을 개미 눈물만큼 알고 즐기다가 갈지도 모른다. 쉽게 따라 흥얼거리는 노래도 수많은 장르가 있고 음악이라는 예술에는 또 얼마나 무궁무진한 이론 실기가 발달했는지. 한 분야 분야마다 수많은 사람들이 고유한 첨 탑을 쌓아 올렸다. 그중 하나라도 온전히 배워서 누리고 향유할 수 있다면 축복이다.
손에 쏙 들어오는 크기지만 부피는 제법 되는 책, 좋아하는 색인 파란색 표지의 '안도현의 발견'을 읽고 있다. 가방에 넣어 들고 다닌 지 일주일이 넘었다. 시인들이 쓰는 산문집은 언어가 함축적이다. 그래서 한 바닥을 읽고 나면 덮어두고 한 동안 생각한다. 어떨 땐 두어 페이지 읽고 한나절이 간다. 보고 싶은 책이고 집에서라도 읽을 것 같아 싸 오지만 출근하며 그대로 들고 가기를 반복한다. 유년에 아껴가며 베어 먹었던 달디 단 복숭아 같다.
주최자가 1년 여 전부터 공들였던 음악회가 개최되었다. 사제지간이 함께하는 피아노 연주회다. 클래식은 까막눈이었고 피아노곡이라면 조지 윈스턴이나 차이코프스키 피아노협주곡 정도, 그것도 학창 시절에나 들었는데 그런 피아노 연주회를 간간이 들으러 간다. 초대한 사람에게는 미안하지만 정말 소의 귀가 따로 없다. 그래서 느끼려고 하지만 그저 경외감만 든다. 우리나라 1세대 피아니스트 문용희 선생님의 연주회가 지난밤에 있었다.
피아노가 그렇게 다양한 소리를 내는 줄 몰랐다. 무대를 밝히는 조명과 부드러운 음률이 꿈속으로 이끄는 듯했다. 정말 꿈이었는지 컴컴한 객석은 숨소리도 들리지 않았다. 1시간이 그렇게나 짧을 줄이야. 준비해 간 꽃다발을 전하고 들떠서 뭐라고 인사를 했는데 그게 창피하기도 하고 아침이 여느 날 같지가 않다. 설렘 존경심 차분함 그런 마음이 남았다. 스스로 겸손해지는 느낌이랄까. 조금 달리 보이는 세상, 주위가 환기되는 느낌이기도 하다.
그 주위가 환기되는 느낌은 꼭 대가들이 쓴 산문집을 들고 후루룩 읽어내지 못하고 되새기는 느낌과 닮았다. 한 바닥을 읽고 덮어두고 깊어지는 생각을 따라가듯이 비 갠 가을날 밤 듣고 온 피아노 선율이 아직 남았다. 어쩌면 한동안 마음을 휘돌 것 같다. 지금까지 해보지 못했던 새로운 분야를 돌아보게도 할 것 같고 작은 용기도 심어줄 듯하다. 셀렘과 동경에는 나이가 없다.
다시 '안도현의 발견'을 펼친다. 3장 '사람의 발견'에서 소개해주는 소중한 사람들의 흔적을 한 명 한 명 따라가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