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E.하우스먼, 가장 어여쁜 나무 벚나무
이번 주말을 고비로 벚꽃이 다 날아갈텐데 '하롱하롱, 분분이 흩날리는' 꽃비를 맞으러 호수공원을 돌기로 했는데 과연 화요일까지 버텨줄는지, 작년처럼 하룻만에 바닥에 빈틈없이 눈내린 듯 다 져버린 공원을 돌게 되지 않기를 바랄 뿐이다. 저 그림은 그때 찍은 사진을 본뜬 것이라 바닥에 가득한 꽃이 사실이고, 저 수북한 나무의 꽃은 내가 욕심사납게 메꾼 가짜 꽃이다. 아이들 유치를 뽑을 때 이미 하얀 영구치가 쑥 밀고 올라오듯이 이미 연둣잎이 꽃잎을 다 밀어내고 팔랑거리고 있었다. 물론 새잎도 꽃만큼이나 예쁘지만, 겨우내 맺힌 마음을 풀어 헤쳐 봄을 접수하는 데는 역시 벚꽃만한 것이 없다. 그러니 속절없이 금방 닥치는 '벚꽃엔딩' 주말에는 무슨 일이 있어도 그대와 함께 흠뻑 흩날리고 휘날려 줘야만 주체할 수 없이 '울렁이는 기분'을 다스릴 수 있는 것이다.
가장 어여쁜 나무 벚나무, 저 작가는 겨우 스무살에 인생에 쉰 번 남은 벚꽃 구경을 아쉬워하며 숲으로 가겠다고 한다. 스무 살에 남은 봄을 헤아려 보다니 저런 청춘의 마음이 깊어 보여서 놀랐다. 작가는 과연 몇 번의 봄을 만났을까 궁금해 연보를 찾아 보려다 그만 두었다. 쉰 번보다 적었어도 맘 아플 것 같고, 그보다 단순히 많았다고 해서 유의미할 것 같지도 않았다. 나는 일흔을 기점으로 하면 올해까지 쳐도 아홉 번 남았다. 백 세 인생이라고 해봤자 남는 장사도 아니다. 평균과 통계에 속지 말고 그저 그 해 내 벚꽃을 챙기리라.
아기엄마의 유모차 미는 속도로 조심스럽게 천천히 올라온다는 벚꽃 개화 속도를 계산했다는 과학자의 말이 무색하게 언제부터인가 동시 다발적으로 꽃이 핀다. 양달에 있는 라일락과 조팝꽃이 진달래 개나리 목련과 같이 핀다. 친정엄마가 무심히 "옛날에는 저 조팝꽃이 하얗게 필 때 조를 심었단다." 하시기에 요즘엔 꽃보고 심었다간 얼어죽기 십상일 거라 대꾸하고는 내 머릿속도 엉켜버렸다. 나에게 몇 번 남은 봄, 늙으신 엄마에게 몇 번 남았을까 봄, 피었구나 하고 반기기 무섭게 지고 마는 꽃이 일흔 번 연거푸 말해주는 말귀를 알아들었나 말았나. 남은 봄 세지 말고 그냥 한 봄 한 봄 정답게 노닐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