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4화 Coffee 그리고 여인!
"로스팅에 들어가기 전에 먼저 커피를 건조하는 방법에 대해서 알아보지요. 햇빛에 자연 건조하는 전통적 건조방식을 내추럴, 커피의 껍질만 제거하고 과육의 일부를 남긴 채 건조하는 허니 프로세싱, 그리고 열매의 과육을 제거하는 펄핑 과정과 점액질을 제거하는 과정을 마친 후 건조하는 방식인 워시드가 있습니다."
"선생님! 선생님 점액질이면 찐득찐득할 텐데 물로 쉽게 세척되나요?"
차인애는 궁금한 것이 있으면 망설이지 않고 수시로 질문을 던졌다.
"점액질은 불용성 물질로 내과피인 파치먼트에 단단히 붙어있기 때문에 제거하기 위해서는 발효와 같은 생화학 반응을 이용하거나 기계를 사용하여 물리적으로 제거해야 합니다. 생화학 반응을 이용한 방식에는 물 없이 발효시키는 건식 발효 방식과 물에 담가 발효시키는 습식 발효 방식이 있습니다. 기계를 사용해 제거하는 방식은 물 사용량이 적어 친환경적이며 작업시간이 짧아 과발효의 위험이 적은 장점이 있습니다."
가족을 위해 쌀 한 섬에 실험체를 자원했던 박철수도 궁금한 것이 많기는 마찬가지였다.
"선생님! 이렇게 여러 가지 건조 방식이 있는 건 그 방식에 따라 맛의 차이가 다르기 때문인가요?"
"네, 그것도 맞습니다. 건조 방식에 따라 커피 맛이 크게 달라집니다. 또 커피가 재배된 국가, 농장이 위치한 지역에 따라 태양 빛이 좋고 날씨가 안정된 지역이면 내추럴이나 허니 프로세싱을 선택하기도 하구요, 대량의 커피콩을 균일한 맛을 내기 위해서 전략적으로 워시드 방식을 채택하기도 합니다."
오상철의 답변이 끝나자 이수희라는 여학생이 처음으로 질문을 했다.
"각각의 건조 방식에 따라 어떤 차이가 있나요?"
"내추럴과 허니 프로세싱의 경우 과육 안에는 수분과 당분이 포함되어 있어 과육을 벗기지 않고 말리게 되면 단맛의 일부가 생두로 스며들게 됩니다. 그래서 내추럴, 허니 프로세싱은 플로럴 아로마, 단맛, 다양한 화합물로 커피 자체의 깊은 풍미를 묵직한 바디감과 함께 즐길 수 있는 반면에 자칫 제대로 관리하지 못할 경우 맛이 조금 지저분하거나 품질에 있어서 균일하지 않을 수 있다는 단점이 있습니다.
반면에 워시드 방식은 모두 동시에 물을 이용하여 씻은 다음 건조하기 때문에 한 번에 가공하는 생두들의 품질이 비슷하고, 상대적으로 깔끔한 맛을 내는 장점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렇지만 커피가 지닌 다양한 플로럴, 아로마, 신맛, 단맛 등을 잃어버리는 단점이 있습니다."
역시 이날 차인애가 질문을 쉴 새 없이 이어가며 수업의 열의를 주도했다.
"(테이블 위에 놓인 여러 가지 종류의 커피랏을 가리키며) 선생님! 테이블 위에 일정한 간격으로 아홉 줄로 진열된 커피콩들이 다 각기 다른 방식으로 프로세싱된 커피인가요?"
"네, 맞아요. 내추럴, 허니 프로세싱도 워시드 방식으로 각각 건조한 커피콩들인데, 한명씩 차례대로 냄새를 맡아보시고 어떤 특징들이 있는지 같이 나눠보도록 해요."
철수도 궁금한 것이 있었는지 손을 들어 질문을 했다.
"선생님! 중앙에 있는 다섯 줄의 커피콩들은 색상이 다 다른데 그게 허니 프로세싱을 한 커피콩들인가요?"
"네, 맞아요. 펄프 그러니까 점액질이 가장 많이 제거된 것부터 가장 적게 제거된 것까지 차례대로 화이트, 옐로우, 골드, 레드, 블랙 허니로 불립니다. 레드 허니, 블랙 허니처럼 더 많은 점액질과 더 짙은 빈의 색깔을 가진 커피빈들로부터 더 훌륭한 단맛과 바디감을 경험할 수 있어요.
여기 첫 두 줄의 커피빈들이 내추럴, 중간에 다섯 개가 허니 프로세싱 또는 펄프드 내추럴이고, 끝에 두 줄에 있는 커피 빈들이 워시드 프로세싱을 한 커피빈입니다. 자 다들 직접 냄새도 맡아보고 눈으로 그 특징들을 확인해 보세요."
바리스타 공부에 가장 열정적으로 임하고 있는 차인애부터 시작해서 박철수, 이수희, 그 외 훈련생들이 차례대로 나와서 테이블 위에 진열된 커피콩들을 이리저리 살펴보고 냄새도 맡아보면서 정말 열성적으로 관찰했다.
차인애의 하얀 목살과 경동맥을 타고 뇌로 가는 혈관의 맥박 소리까지 들렸지만 철수는 어떤 식인의 충동도 일지 않았다. 커피빈에서 나는 800가지가 넘는 아로마향이 철수의 마음을 이상할 정도로 차분히 가라앉혀 주었다.
철수가 바리스타 과정을 선택한 결정적인 이유이기도 하였다. 커피빈을 가까이서 같이 살펴보게 되자 차인애와 철수는 서로를 힐끔힐끔 바라보며 어색한 기류가 흐르는 것을 느꼈다.
"자 직접 커피빈들을 관찰하니까 어때요?"
"냄새도 조금씩 다르고 과일 향도 나는 것 같기도 하고 어떤 커피빈에서는 꽃향기도 나는 것 같아요."
"어떤 것은 버터 향과 견과류 향이 나는 것도 같아요." 차인애와 이수희의 대답에 이어서 철수도 느낀 바를 말했다.
"캬라멜 향기도 나구요. 그 외 알 수 없는 수많은 아로마 향이 나는 것 같아요."
"와 다들 감각이 좋네요. 왠지 이번 바리스타 과정은 대성공을 거둘 것 같은 느낌입니다. 철수씨는 대충 몇 가지 정도 냄새를 맡을 수 있었나요?“
"저는 너무 많은 냄새가 나서 아마 미쳤다고 하실 것 같아요. 하하하."
"아니 괜찮으니까 한번 그 냄새의 수를 대충 말해봐요."
오상철은 내심 놀라며 철수에게 답을 요구했다.
"정확하게 어떤 냄새라고 자세하게 표현할 재주는 없지만 각기 다른 냄새가 수백 가지 나는 것 같아요."
"오! 정말 갈수록 저를 감탄케 만드네요. 맞습니다. 커피에는 800가지가 넘는 아로마향이 있습니다. 일반인은 정말 많아야 십 여 개 전문가라도 한꺼번에 수십 가지를 동시에 맡을 수는 없는데 그에 비하면 철수씨는 정말 대단합니다. 그럼 이제 로스팅에 대해서 공부해 볼 텐데요. 로스팅은 말 그대로 볶는 것입니다. 하지만 매우 섬세한 터치가 필요한 볶음이죠. 흐흐. 로스팅에서 제일 중요한 요소 두 가지가 뭘까요?"
"요리에서와 마찬가지로 온도와 시간 아닌가요?" 차인애가 여성답게 요리와 관련지어 대답을 했다.
"이번 훈련생들은 참으로 센스가 남다르네요. 맞습니다. 로스팅 속도 그러니까 시간으로 볼 수 있겠죠. 그리고 온도입니다. 온도상승률을 “Rate of Rise” 줄여서 ROR이라고 하는데, 로스팅의 진행속도를 나타내는 지표입니다. 내추럴과 허니는 특유의 달콤함을 보존하기 위해서 워시드에 비해 투입온도를 낮추고 커피가 충분히 볶아지도록 느리게 진행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반면에 워시드 커피는 빠르게 로스팅해서 산미를 보존합니다. ROR을 낮게 유지하기 위해서는 투입온도를 낮춰야 합니다. 밀도가 낮고 저고도에서 재배되는 브라질 내추럴 커피를 로스팅할 때는 고지대 워시드 커피에 비해 투입온도를 약 30%가량 낮춥니다."
조금 자세하고 구체적인 설명으로 들어가자 이수희가 궁금한 바를 물어보았다.
"선생님! 온도상승률은 어떻게 조절하나요?"
"열과 공기입니다. 로스팅 중에 수분이 증발하고 커피콩의 색이 노랗게 변하면서 당 성분의 캐러멜화가 시작되는데, 1차 크랙까지 시간을 길게 가져가면 아로마, 단맛, 바디감을 강화시킬 수 있습니다.
캐러멜화가 너무 빨리 진행되면 당이 캐러멜화가 될 시간이 부족하기 때문에 커피의 단맛 상당 부분이 사라집니다. 캐러멜화가 시작되면 열을 70%에서 40~50%로 열을 더욱 떨어뜨려 캐러멜화 시간을 늘립니다. 제가 아까 커피에는 몇 개 이상의 아로마 화합물이 존재한다고 말했나요?"
"800개 이상이 존재한다고 하셨습니다. 그런데 선생님, 제가 지금 당장에 그 800개 이상의 냄새를 맡을 순 없어도 훈련하면 가능한가요?"
차인애가 대답과 동시에 과도한 의욕을 담은 질문을 했다.
"네에? 정말로 그 800개 이상의 아로마 냄새를 식별하는 훈련을 하고 싶으신 거예요?"
"네! 전 뭐든 시작했으면 최고가 되고 싶습니다. (박철수를 일별하면서) 선천적인 능력이 떨어지면 후천적인 노력으로라도 극복해야지요."
"보통 사람에게는 거의 불가능하지만 부단한 노력을 하다 보면, 가능할 날도 오겠지요. 저희 바리스타들이야 어차피 평생 커피와 사랑에 빠져 살 테니 가능할 겁니다. 하하하."
"선생님! 800개가 넘는 아로마 화합물이 존재한다고 하셨는데, 그 향기를 로스팅하면서 다 보존하는 것이 가능하기는 한가요?"
이수희도 점점 질문에 가세하기 시작했다.
"네 질문 잘 하셨습니다. 결론부터 말씀드리면 가능합니다. 캐러멜화가 너무 빠르게 진행되면 이 중 일부가 약화될 수 있습니다. 너무 빠른 캐러멜화를 방지하기 위해 공기를 더 주입하고 열을 낮추면 완전한 향미 스펙트럼을 보존할 수 있습니다."
"선생님! 아까 크랙이라는 말씀을 하셨는데, 그게 무엇을 의미하는지 좀 알 수 있을까요?"
역시 용어에 생소한 박철수가 크랙이라는 말이 나오자 질문을 던졌다.
"아 맞다! 아직 영어로 사용되는 용어에 익숙하지 않을 텐데, 제가 깜빡했네요. 영어로 크랙은 “갈라지다, 갈라진 틈”을 의미합니다. 그러니까 커피가 오래 열을 받아서 더 이상 그 에너지를 속에 담아두지 못하고 속에서 터지면서 “타닥 탁” 콩 볶는 소리를 내면서 스팀과 탄소의 형태로 열을 발산하는 것을 말합니다. 이 때 공기를 주입해서 열을 날리고, 거기서 발생하는 스모키함과 쓴맛을 방지할 수 있습니다.
스모키함은 연기에 그을린 냄새나 맛이 나는 것을 말합니다. 어떤 언어를 사용하는냐에 따라서 주는 느낌이 다르니까 제가 설명하는 영어 용어들은 앞으로 그대로 영어 그대로 사용하는 게 더욱 고급스럽고, 세련되어 보여서 좋습니다. 바리스타 업계에서 통용되는 용어다고 생각하시면 마음이 편하실 거예요.
여러분이 평범한 커피가 아니라 스페셜 티 분야에서 성공하고 싶으시다면, 이렇게 1차 크랙 이후에 모든 요소를 일정하게 유지한 채로 로스팅을 마무리하는 것이 좋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