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성공단 L공장 구내식당]
하지만 탈출 과정에서 전혀 음식을 먹지 못해서 본능적으로 자극되는 생존을 위한 제어할 수 없는 식욕으로 음식 냄새, 그것도 고기 냄새가 나는 가장 가까운 건물로 접근하기 시작했다. 아직 여명이 밝기 전이라 주위는 칠흑같이 어두웠고, 별다른 인기척은 없었다.
철수는 솜털까지 다 솟아오를 정도로 극도의 긴장을 유지한 채, 가장 가까운 건물 안 구내식당 쪽으로 은밀하면서도 날렵하게 몸을 움직였다. 커다란 세척기 안에 갈비찜을 하려고 물에 담궈 핏물을 빼고 있는 갈비들을 보자 철수는 뒤도 안 돌아보고 달려들어 마구마구 날 것으로 씹어 먹기 시작했다.
바로 그때 식당 출입문이 열리며 누군가가 슬며시 들어오는 소리가 들렸다. 이른 새벽부터 음식 준비를 하려고 온 건지 다른 목적으로 들어온 건지는 모르지만 들어와서도 바로 불을 켜지 않았다. 그리고는 철수가 있는 그 장소로 곧장 오는 것이 아닌가. 철수는 한쪽 구석으로 몸을 숨기고 있다가 그 여자가 다가와 세척기 안의 상황을 보고 소리를 치려는 그 순간 그녀의 입을 틀어막았다.
"미안합네다. 그래서는 안된다는 걸 알지만 너무 배가 고파서 어쩔 수가 없었슴네다. 용서하시라요. 조금만 먹고 가겠슴네다. 제발 부탁함네다. 여성동무!"
"음 음 음...."
여자가 신음소리를 내며 완강하게 저항을 하다가 철수의 손가락을 물고는 소리치려고 하자 그 순간 철수는 자신도 모르게 그 여자의 허연 목덜미를 물어서 경동맥을 끊어서 즉사시켜버렸다. 그녀의 목덜미를 물고 피를 삼키는 동안 철수는 알 수 없는 묘한 희열과 함께 그녀를 죽인 죄책감을 동시에 느끼고 있었다.
"미안합네다. 미안합네다. 내래 용서하지 마시라요. 나도 살고 싶어서 어쩔 수 없이 그랬시우."
철수는 참회의 눈물을 흘리고 연신 통곡하면서도 내부에서 폭발하듯 밀려드는 저항할 수 없는 충동에 오른손을 그녀의 배에 쑤셔 넣고는 내장을 꺼내서 걸신들린 듯 씹어먹기 시작했다. 그러다 이번에는 그녀의 내장을 입안 가득히 씹어대면서 웃는 건지 우는 건지 알 수 없는 미친듯한 광소를 터트리기 시작했다.
배가 부를 정도로 그녀의 내장과 간을 먹어치운 철수는 사람들이 몰려들기 전에 그녀의 시신을 든 채로 이동해서 인근 저수지에 버린 다음에 그대로 산쪽으로 달아나기 시작했다. 방개동과 후릉쪽 산자락을 타고 김포시 애기봉 전망대를 바라보는 강폭이 가장 좁은 곳까지 이동해서는 조강을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그 순간 부스럭거리는 소리와 함께 멧돼지 새끼가 아래쪽으로 이동하다 파지직하는 소리와 함께 고압 전류에 그대로 타버려서는 통바베큐가 되어버렸다. 철수는 가슴을 쓸어내리며 인민군들이 고압전류를 확인하러 오기 전에 바로 강을 도하하지 않고 근처에 몸을 은폐하고는 흘러가는 상황을 예의주시했다.
"이야! 오늘은 모처럼 돼지고기로 포식하겠슴둥!"
"어떻게든 살다 보니 이런 날도 오디 안 캈어?"
"상급 병사 동무! 이거 우리끼리 먹어치웁시다."
"동무래 여기 막 들어온 하급 병사라 잘 모르갔디만, 그랬다가 소좌 동무 아는 순간 우린 죽은 목숨이야. 소좌 동무께 상납하고 떡고물이나 나눠 먹자우!"
"알갔슴네다! 상급 병사 동무!"
"그나저나 고압전류는 차단하고 온 거 맞슴메?
인민군 1: 길티요. 뎐기 아끼느라 하루에 몇 번 틀지도 않찮슴네까?"
"길티! 오늘은 밤이 되기까지는 더이상 고압전류는 안틀기야. 날래 저 돼지 새끼래 들쳐 업고 가자우!"
"네, 상급 병사 동무! 알갔슴네다!"
철수는 예상치도 못한 귀한 정보를 듣게 되었다. 더 이상 고압전류가 흐르지 않으니 바비큐가 될 걱정 없이 조강 쪽으로 내려갈 수 있다는 말이었다. 문제는 아직 이 시간에 강의 수위가 높다는 점이었다. 철수는 다시 동물적인 움직임으로 은신을 하며 낮 12시 30분까지 조강의 수위가 줄어들기를 기다렸다. 조강의 수위가 바닥을 드러낼 정도로 물이 빠지자 철수는 뒤도 돌아보지 않고 바닥이 드러난 조강을 향해 달리기 시작했다. 그러자 경비병 1이 비상 사이렌을 울리며 소리치기 시작했다.
"비상! 비상! 전방에 탈주범 발생! 비상! 비상!" 비상 사이렌이 울리자 인민군 소좌는 발작을 하듯 소리를 질러댔다.
"뭐하네? 따발총으로 빨리 갈기디 않고. 기관단총이든 포든 모든 중화기를 동원해서 있는 대로 쏟아부어라우. 절대로 살아가게 해서는 안 돼. 글카면 우린 다 아오지 탄광행이야!"
기관단총과 중화기 머신 건과 포를 일제히 쏘아댔고, 그 중 몇 발이 철수의 몸을 관통해서 철수를 쓰러뜨렸다. 몸의 여러 곳이 뻥 뚫리며 바람이 지나가는 시원함이 느껴짐과 동시에 과다출혈로 철수는 잠시 의식을 잃었다. 북한과 남한의 절반 사이에 있는 갯벌에 쓰러진 철수는 한 동안 움직임이 없었다. 조강 너머에 있는 애기봉을 지키고 있는 해병 대대도 모두 비상 경계 태세에 돌입해서 언제든 대응 사격을 할 수 있게 철수를 엄호할 준비를 하고 있었다.
"저거이 죽은 거 맞디?"
"네, 소좌 동무! 총알이 여러 발 관통해서 사람이라면 틀림없이 죽었을 겁네다."
"글티! 사람이라면 죽어야 마땅하지. 오늘 운이 좋구만! 잘하면 이 공적으로 특진해서 평양으로 갈지도 모르갔어. 아하하하하!"
인민군 하사가 망원경으로 철수가 쓰러진 조강의 갯펄 위를 살피다가 갑자기 놀라서 소리치기 시작했다.
"소 소 소좌 동무! 저 간나새끼래 꿈틀거리는 게 아직 살아있는 듯 함네다."
"메야? 그 무슨 말도 안 되는 개소리야?"
"정말임네다. 이걸로 한번 보시라우요."
망원경을 건네받고 철수가 쓰러진 곳을 본 인민군 소좌는 미친듯이 외쳐댔다.
"쏘라우! 무조건 죽이라우! 있는 대로 퍼부어라우!"
투투투투투! 쾅쾅! 기관단총을 비롯하여 머신 건과 장사포가 터지는 소리가 천지를 요란하게 울리며 조강 양안의 긴장을 최고조로 끌어올리고 있었다. 쿰틀거리며 자신의 몸을 관조하던 철수는 두 팔로 어렵게 몸을 일으키며 다시 필사의 각오로 조강 건너편 애기봉을 향해 미친 듯이 달리기 시작했다. 애기봉 연안에 근접하자 해병대도 북한군에 일제히 대응 사격을 하면서 철수를 엄호해줬다.
[합동 심문 센터]
해병대의 도움으로 애기봉을 지키는 해병 대대에 알몸으로 도착한 철수는 갯벌로 도배가 된 몸을 샤워하고 나서, 응급 치료를 받았다. 그러고 나서 해병대원 한 명이 갖다 준 추리닝을 입고는 지프차에 탑승하고는 서초동에 있는 경찰, 국정원, 기무사로 이루어진 합동 심문 센터로 호송되었다. 조형사는 A4 용지 한 묶음을 철수 앞에 툭 던져주며 철수에게 뭔가를 주문하기 시작했다.
"여기다가 출생부터 입국까지 과정을 자세하게 적습니다. 알겠습니까?"
"네?"
"무슨 말인지 모르겠습니까? 통역이 필요해요?"
"그게 아니고 제가 글을 쓸 줄 몰라서 말입메다. 말로 설명하면 안되겠슴네까?"
조형사는 곤란한 표정을 지으며 날카로운 눈빛으로 철수를 바라보다 입을 열었다.
"그 참 번잡스럽게 말이야. 그럼 잠시만 기다려 봐요."
조형사는 노트북을 가져와서는 심문조서를 작성하듯 철수의 출생부터 남한으로의 입국까지 과정을 철수가 불러주는 대로 타이핑했다. 경찰에 이어서 기무사 소령 A씨는 철수에게 북한에서의 군사과 관련된 경험과 시설이나 지형 등에 대해서 심문을 했고, 국정원 요원 K씨는 철수의 친족관계와 탈북의 동기나 목적에 대해서 심층적으로 질문했다.
운동시간이나 조사 대기를 할 때 빼고는 다른 사람들과 접촉할 기회가 없이 침대 하나와 책상 하나가 있는 독방 같은 고시원 크기의 방에서 1달 여 정도를 보낸 철수는 사회 정착 과정을 밟기 위해서 경기도 안성 삼죽면에 있는 하나원으로 이송되었다.
[하나원]
"반갑다! 난 강준석이야! 너는?"
"난 박철수야. 아직 글도 몰라. 잘 부탁해."
"배우면 되지 뭐가 걱정이야. 내가 도와줄게. 난 문지강이야, 반가워!"
"난 고민수다. 잘 지내보자."
"여기 오니까 혼자 외롭게 독방에 있지 않아서 좋네. 철수는 무슨 직업을 선택할 거야?"
"난 바리스타가 되려고 해. 준석이 너는?"
"응, 나는 제과제빵을 배울거야. 지강이랑 민수 너네는 뭐 할 건데?"
"난, 한식을 배우보려고 해. 배고플 일은 없을테니까. 흐흐!"
"난, 헤어를 배울 거야. 니들 머리는 내가 다 잘라줄게."
"아 그리고 여기는 종교기관도 있어서 예배도 드리고, 예불도 가능하던데 너네들 종교 있어?" 철수는 머리를 긁으며 강준석에게 궁금한 것을 물어보았다.
"아니, 없는데...있어야 해?"
"뭐, 없어도 되지만 그래도 있는 게 낫지 않겠어?"
"우린 지금까지 없이 살았자나. 그러니 이제는 가질 수 있는 건 다 갖는 게 좋지 않갔어?
해서 말인데, 난 교회 가서 예배 드리려고. 거기가 먹는 걸 제일 많이 준대. 꽃 같은 계집애들이 제일 많다고도 하고."
"아새끼래 속셈이 따로 있었구만."
"그럼 민수 넌 어떻게 할 건데?"
"뭘 어떻하간? 나도 교회 가야지."
"그럼 나도 교회 갈래." 준석이 마저 교회에 가겠다고 하자 철수도 그에 호응하듯 말했다.
"다들 교회 가면 나도 따라가야지."
"하하하!"
그렇게 다같이 뭐가 좋다고 신나게 웃다가 준석이 심하게 기침을 하기 시작하자 궁금한 철수가 준석에게 물어보았다.
"동무! 어데 아프네?"
"야. 남한 말투 배워 놓고서 동무가 뭐야? 동무가. 내가 어렸을 때부터 일종의 불치병 같은 게 있어. 폐와 간이 너무 안 좋아서 쉽게 지치고 기침도 심한 편이지."
"병원에서는 뭐래?"
"어렸을 때 폐렴을 심하게 앓은 데다가 영양실조로 너무 고생해서 간이 많이 상했대.
뭐 정기적으로 무슨 호르몬 주사를 맞아야 한다는데 뭔 말인지 잘 모르겠어.
그래도 지강아! 난 말이야 남한에 와서 이렇게 살 수 있다는 게 꿈만 같아!"
"그래! 지금은 그저 열심히 직업훈련 받고서 사회로 나가 악착같이 돈벌어서 결혼도 아고 애새끼도 낳아 기르면서 행복하게 살 생각만 하자우.
고럼 준석이 병도 고치고 행복하게 살 수 있는 날이 오지 않겠어?" 고민수도 한 마디 거들었다.
"그래야지."
"자자 여기 피트니스 센터도 있다고 하던데, 수업 하기 전에 다 같이 한번 가보는 게 어때?" 문지강이 제안하자, 다들 힘차게 고개를 끄덕였다.
"좋아!"
"쇠뿔도 단김에 빼라고 지금 가보자!"
"그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