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직업훈련

by 김하록

[하나원 피트니스 센터]

제법 시설이 잘 갖춰진 피트니스 센터 안에는 남녀 할 것 없이 열심히 구슬 땀을 흘리며 러닝 머신 위에서 달리는 사람들, 스쿼트를 하는 사람들, 아령을 들고 운동하는 사람들, 종아리 운동을 사람들, 윗몸 일으키기, 클라이밍 운동을 하는 사람들로 북적거렸다.


진한 땀 냄새와 여성의 하얀 목덜미 살을 보자 철수는 제어할 수 없는 살심이 솟구치는 것을 느꼈다. 재빨리 몸을 돌려 화장실로 달려가서 문을 걸어 잠그고는 자신의 충동을 다스리려 했다. 하지만 너무도 강한 욕망에 자신의 팔뚝을 물어뜯어서는 피와 살점을 마구마구 씹어먹기 시작했다. 인기척을 살피고는 슬며시 화장실로 나와서 피 묻은 입을 닦고는 자신의 팔을 일단 내의로 꽁꽁 묶어서 지혈을 했다.


철수는 자신의 몸에 발생한 변화를 이해하지 못했고, 사람의 살을 먹고 싶다는 이런 충동을 느낄 때마다 강한 도덕심으로 억제해 왔다. 하지만 하얀 목덜미 살이 눈앞에서 아른거릴 때에는 도저히 참기가 힘들었다. 한편 레깅스를 입은 여성들의 몸을 적나라하게 보는 게 처음인 듯 준석과, 민수, 지강은 눈치도 없이 불끈불끈 솟아오르는 남성을 어찌할 수가 없어 양손으로 가리면서도 여성들의 가슴과 힙에서 시선을 떼지 못하고 연신 힐끔힐끔 쳐다보고 있었다.


"철수 아새끼래 어디로 간기야?"

"글쎄 여성동무들 보더니만 그대로 화장실로 달려가던데..."

"철수 이 새끼래 설마 화장실에서 똘잡이 하는 거 아니겠지?"

"그럴지도 모르지. 흐흐흐."

"우리도 그만 쳐다보고 운동하자우. 여기 자주 와야 친해지고 그러지 않겠어?"

"길티."

"그러자우."


그렇게 준석과, 민수, 지강이 운동을 마칠 때쯤 철수의 팔도 이미 지혈이 되었고 어느 정도 상처도 아물어 있었다. 철수는 자신의 몸에 생긴 변화를 제대로 이해하지 못했고 여전히 강력하게 자신을 지배하고 있는 도덕성으로 자신의 몸에 깃든 본능과 싸우고 있는 중이었다.


그렇게 숙소로 돌아와서 쉬고 있던 철수는 방 동료들이 운동을 마치고 돌아와서는 옷을 갈아입고 아침을 먹으러 가자고 말할 때 즈음에는 팔이 거의 아물어 있었다. 내키지는 않았지만 같이 식당으로 가서 배식판에 반찬과 국을 받아 들고는 한 테이블을 잡고 밥을 먹기 시작했다. 다들 동태국이 시원하다고 맛있게 먹고 있는데 철수는 왠지 음식에 손이 가지 않았다. 궁금한 강준석이 철수에게 그 이유를 물어보았다.


"왜 그래? 속이 안 좋네?"

"굴곡진 몸매가 여실히 드러나는 여성 동무들 보니까 그 생각만 나고, 밥 생각이 안 나는 거야?" 문지강이 느물거리며 농을 늘어놓기 시작하자 고민수가 맞장구를 쳤다.

"이미 화장실에서 용두질하고 온 모양인데. 크크크!"

"아님둥! 그게 아니라 진짜로 속이 별로 안 좋아. 나도 모르갔어. 정말이지 모르갔어. 왜 그런지 속이 이 음식들 보니까 속이 메스꺼워. 자꾸만 소 간 같은 걸 먹고 싶은 생각이 드는 게 나도 모르겠어."

"그러면 커피는 마실 수 있는 거야? 어떻게 바리스타가 되겠다는 거이가?" 준석이 반문하자 철수는 기다렸다는 듯이 대답했다.

"길티! 커피는 마시고 나면 항상 기분이 좋아진단 말이야. 얼른 밥 먹고 있으라우! 난 맥심 커피나 한잔 타 마셔야겠어."


[직업훈련]

바리스타 교육을 하는 장소로 들어간 철수는 왠지 마음이 편해지는 것을 느꼈다. 그런데, 그곳에는 아침에 레깅스 차림으로 피트니스 센터에서 트레드밀을 달리던 차인애도 와 있는 것이 아닌가.


"자 여러분! 반가워요. 전 오상철이라고 합니다. 오늘 여러분과 커피콩의 종류와 로스팅 하는 방법과 로스팅하는 단계에서 커피의 맛과 향의 차이점을 인지하는 로스팅 프로파일링 훈련을 할 거예요."

"선생님! 현재 가장 값비싼 커피콩 몇 가지와 비싼 이유와 맛과 풍미는 어떤지 좀 설명해주세요." 차인애가 손을 들어 생뚱맞은 질문 하나를 했다.

"세계에서 가장 비싼 커피콩의 순위는 여기저기 다릅니다.그래서 딱 정해진 것은 없지만, 전문가의 입장에서 말해보면 10위는 코피 루왁으로 사향고양이가 먹고 배설한 것을 추출하여 만든 것으로 450g당 약 78만원 정도 합니다. 9위는 파나마 에스메랄다 몬타나랏으로 가격은 코피 루왁과 같습니다.

7, 8위는 파나마 엘리다 게이샤 그린탑 GW-1과 GN-1으로450g당 86만원, 105만원, 6위는 파나마 핀카 과류모 게이샤 블랙 450g당 약 130만원, 5위는 파나마 엘리다 게이샤 그린탑 내츄럴 450g당 약 134만원입니다."


오상철의 설명이 이어지는 가운데 철수가 궁금한 것이 있는지 손을 들어 질문을 했다.

"선생님! 9위부터 5위까지 다 파나마란 이름을 가졌는데 어떻게 다른가요?"

"파나마는 나라 이름이고, 잘 보면 파나마 뒤에 나오는 에스메랄다, 엘리다, 핀카는 커피를 재배한 농장 이름을 말합니다. 같은 게이샤 커피콩이라도 어떤 농장에서 재배했는지에 따라 가격이 다릅니다." 그러자 이번에는 차인애가 또 궁금한 점을 물어보았다.

"선생님! 왜 유독 파나마에서 재배된 커피가 비싼 건가요?"

"그건 파나마에 높은 고도와 극도로 외딴 지역 그리고 비옥한 화산 토양이 많아서 맛과 풍미가 뛰어나기 때문입니다."

"선생님 4위부터 1위까지도 마저 설명해주세요."


철수가 사뭇 궁금한 듯 설명을 요구하자 오상철 강사는 친절하게 말을 이어갔다.


"4위는 블랙 아이보리로 450g당 약 1500달러 정도 합니다. 아라비카 커피 체리를 아이보리 커피 회사의 코키리에게 제공하여 코끼리의 소화기관을 통과하여 대변으로 나온 것을 추출하여 만든 것으로 코피 루왁과 마찬가지로 독특한 풍미가 있습니다.


4위와 5위 사이에 컬럼비아 오스피나 그란 카페가 있는데, 해발고도 7700~7900 피트의 높은 고도에 있는 화산토양에서 재배되고 450g당 약 185만원 정도 합니다. 균형잡히면서도 복잡한 맛과 부드러운 마무리가 특징입니다.


3위는 파나마 라마스투스 루이또 450g당 290만원 합니다. 2위는 파나마 핀카 누구오 게이샤 워시드로 450g당 336만원 합니다. 1위는 파나마 엘리다 아구아까시오로 450g당 무려 538만원 합니다. 이 커피 한 잔에 얼마나 할까요?"


"5 만원" 차인애가 선방을 날리자, 장미순이 "10 만원", 조성철이 "20 만원", 유선희가 "35 만원"을 불렀다.

"자 다른 분 없어요?" 그러자 철수가 "50만원"을 불렀다.

"오 맞았어요. 이 커피 한 잔에 50만원 합니다. 그런데 어떻게 알았어요?"

"선생님 표정 보니까 더 썼으면 하는 표정이라서 화끈하게 올려 봤습니다."

"오 눈치가 빠르네요. 아주 훌륭한 바리스타가 될 수 있을 것 같네요. 자 오늘 공부할 로스팅 프로파일링이라는 게 뭘 의미하는지 아는 분 있나요?"


다들 누가 먼저 말문을 열어주기를 기다리면서 눈치만 보고 있다. 철수는 용어 자체가 생소해서 손을 들고 질문을 하지 않을 수 없었다.


"선생님! 프로파일링의 뜻이 뭔가요? 저희는 남한에 온 지 얼마 되지도 않아서 아직 용어가 생소합니다."

"아 그래서 다들 눈치만 보면서 주변을 살핀 거군요. 프로파일링이라는 말은 원래 범죄수사에서 많이 사용되는 말이에요. 예를 들면, 범죄 시각, 장소, 도구, 공범여부, 범행 수법, 피해의 부위 및 정도, 유전자 증거 등 현장의 흔적들, 범인의 사체 처리 방법 등 범죄와 관련된 모든 정보들을 수집․분석해서 범인과 범죄행위의 특성 등을 알아내고 범인 검거에 도움을 주는 과정이에요."


그러자 차인애가 확인하듯이 질문을 던졌다.


"선생님 그 프로파일링이라는 것이 로스팅에도 중요하다는 말씀이신 거죠?"

"네, 맞습니다. 아주 중요하지요." 이에 질새라 박철수도 자신이 생각하는 것이 맞는지 오상철 강사에게 확인을 구하는 질문을 던졌다.

"선생님이 좀 전에 범죄 프로파일링과 관련해서 하신 말씀을 토대로 하자면, 로스팅 프로파일링이라고 하시니까 결국 커피콩이 자란 국가, 농장, 커피의 품종이 어떤 과정을 거쳐서 로스팅 직전의 장소까지 왔는지에 따라서, 그 각각의 상태에 맞게 로스팅을 어떻게 얼마나 오랫동안 어떤 온도에서 하는지를 기록해서 그에 따른 커피 맛을 분석․정리하는 것이 아닌가요?"

"오! 놀랍네요. 박철수씨! 연속해서 저를 놀라게 하신 분은 박철수씨가 처음입니다. 그러면 왜 로스팅 프로파일링을 하는지도 짐작이 가시나요?"

"대충요. 그러니까 커피의 원산지와 종류에 따라 로스팅이 달라지고, 같은 커피콩이라도 로스팅 시간과 온도에 따라 맛이 달라지니까 그 맛을 일관되게 내려고 프로파일링을 통해서 미묘한 변수를 기록해두는 거 아닌가요? 기록해둔 로스팅 레시피대로 하면 그대로 복제가 가능해지는 거니까요."

"철수씨는 남한으로 온 지 얼마 되지도 않았다면서 어찌 그리 놀라운 추론 능력을 갖게 됐는지. 감탄이 절로 나는군요. 정말 훌륭한 바리스타가 될 것 같군요. 하나원을 나서서 사회로 나가더라도 저를 찾아오세요. 저랑 커피에 한 번 빠져보는 것도 나쁘지 않을 거예요."


박철수를 보고 흐믓한 미소를 짓고 있는 오상철과 박철수를 번갈아 보면서 차인애는 자기도 모르게 점점 철수에게 빠져들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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