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누비 Nov 19. 2023

위장된 행복

연애의 각본

 나 정말 행복해서 웃는 걸까?

아님, 행복하려고 웃는 걸까?


어느 날 갑자기 생긴 이 의문은 나를 은근하게 짓누르기 시작했다, 며칠, 몇 주에 걸쳐 나의 삶을 관찰한 결과 나에게는 두 가지 종류의 행복이 존재했다.


하나는 정말 진심으로 느끼는 행복이고, 다른 하나는 내가 억지로 만드는 행복이었다.


안타깝게도 그와 있을 때 느끼는 행복은 후자인 경우가 대부분이었다. 그 행복은 눈과 입은 웃지만 마음은 채워지지 않는 어딘가 모르게 불편한 행복이었다.


그렇게 위장된 행복 안에서 살아가는 날이 많아질수록 진심으로 행복한 감정이 무엇이었는지 잘 기억이 안났다.


진심으로 행복하게 하하하! 웃었던 것이 언제였더라?


언제부터 그와 이런 가짜 행복을 만들고 있었던 걸까. 나는 왜? 무슨 이유로 행복을 위장하는 걸까?


나와 그는 이 연애를 시작할 때, 둘 다 결혼을 염두에 두고 진지하고 진중하게 만남을 시작했다. 지금 와서 생각해 보면 그때의 나는 말만 진지하고 행동과 마음은 진지하지 못했던 철부지였지만... 그는 내가 싫어하는 담배를 끊었고, 독실한 기독교인인 나의 부모님이 원하시면 교회까지 가겠다는 결심까지 하고서 나에게 만남을 제안했었다.


결혼을 생각하며 만난다는 것은 나로 하여금 이때까지와는 180도 다른... 성숙한 연애를 하게 했다. 연애에 있어 재미가 다였던 나였지만 그와 만나며 신뢰를 쌓는 법, 배려하고 희생하는 법, 서로를 위해 노력하고 맞춰가는 법을 배웠다. 그와는 어떤 어려움이 와도 헤쳐나갈 수 있겠다는 마음이 들었고, 인생의 동반자로서 참 괜찮은 사람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였을까.

시간이 지나 그와의 만남에서 권태를 느끼고, 사소한 다툼이 시작되고, 서운함이 쌓여가도 나는 이 인연의 끈을 놓고 싶지 않았다. 그와의 만남에서 행복을 느끼지 못하는 나 자신을 발견했을 때, 나는 내가 스스로 행복을 만들기로 했다. 이 연애에 ‘행복’이라는 각본을 내가 직접 쓰기 시작한 것이다.  


처음엔 그저 내가 쓰는 이 각본을 ‘성숙한 연애’를 위한 노력으로 생각했다. 나는 내가 느끼는 우울한 감정과, 관계에서 느끼는 권태, 서운한 감정들로 우리의 시간을 망치고 싶지 않았다. 성숙하게 어른스럽게 연애하는 것은 원래 다 이런 거라고 생각했다.


그렇게 ‘성숙한 연애’라는 단어에 갇혀 쓰기 시작한 내 연애의 각본은 나를 점점 숙련된 연기자로 만들었다.


큐사인을 받으면 자신의 감정과 상관없이 웃거나 우는 배우처럼, 나는 내가 쓴 ‘행복’이라는 각본에서의 역할을 충실히 해나갔다.


나는 어쩌면 관계를 위해, 행복을 위해 노력하는 성숙한 사람이 되어 보고 싶었는지도 모르겠다.


아무튼 나는 그렇게 우리의 행복을 지켰다. 얼굴은 웃어도 마음은 우는 그런 행복이었을 뿐. 그저 나 자신이 존재하지 않았을 뿐이었다.

이전 02화 출처 없는 미소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