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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누비 Nov 06. 2023

출처 없는 미소

사랑을 지키는 가장 간단하고 쉬운 노력

허겁지겁 준비를 마치고 차에 탔을 때, 우리의 기분은 나의 다짐과 달리 아직 평행선을 달리고 있었다.


운전 중에도 항상 내 손을 꼭 잡아주던 그였지만 오늘은 양손으로 운전대를 잡고는 내 손을 잡아줄 기분이 아님을 티 냈다. 그의 그런 모습에 더욱 날이 선 나는 그까짓 거 상관없다는 듯 일부러 창 밖을 응시했다.


창 밖의 쨍한 햇살과 반팔에 가디건 하나만 걸쳐도 되는 완벽한 5월의 날씨는 차 속의 어지러운 감정들과 너무 대비됐다.


어른이 되어서도 내 감정을 성숙하게 돌보는 것은 참 어려운 일이지만, 감정이라는 것은 남이 풀어줄 수 없으며 결국 내가 나 스스로를 다독여서 풀어야 함을 알기에 나는 창 밖을 응시하며 내 마음을 혼자 다독였다.


이럴 때 가장 도움이 되는 사고는 감정의 원인을 상대가 아닌 나에게서 찾고, 감정을 나의 욕구와 관련지어 생각하는 방법이다.


내가 지금 왜 기분이 나쁠까? 내가 중요시 여기거나 원하는 바가 이뤄지지 않았나? 내가 지금 바라는 것은 무엇일까? 등의 질문을 하며 내 감정들을 하나씩 들여다보면 나름 명확한 답이 나온다.


그래, 나는 김밥을 싼 것에 대해 오빠한테 고맙다는 말을 듣고 싶었구나! 생각해 보면 오빠의 요청이 그렇게 기분 나빴던 건 아닌데... 그저 오빠의 말투와 태도가 서운했었네... 이건 아까 오빠랑 다 이야기가 끝난 거니깐 내가 빨리 넘어가야겠다. 근데 아직까지 서로 꿍한 건 왜지? 아까 말로는 서로 풀었어도 감정을 풀 시간적 여유가 없어서 그랬나...? 내가 오빠한테 너무 쌀쌀맞게 굴었나? 나는 오늘을 엄청 기대했는데... 신나게 놀러 가고 싶었는데 상황이 이렇게 꼬여버리니 기분이 더 안 좋은 거 같아! 그래...! 이 기분으로 에버랜드를 갈 수는 없어!


생각을 마치자 나는 당장 뭐라도 해야겠다 싶었다.


일단 우리의 팽팽한 기싸움을 끝내기 위해 나는 어제 산 복숭아맛 젤리를 뜯었다. 말랑하고 달콤한 젤리를 먹으면 우리의 마음도 조금은 녹지 않을까 싶은 마음이었다. 나는 젤리를 운전하는 그의 입에 하나, 내 입에 하나씩 넣었다. 나는 젤리를 평소보다 더 잘근잘근 씹으며 젤리의 달콤함이 빨리 내 기분을 업! 시켜주길 바랐다.


젤리를 먹으며 우리는 서로에게 무미건조한 질문들을 툭 툭 던졌다. 별로 중요하지 않은 내용의 대화였지만 이런 상황에서 서로에게 툭 툭 던지는 질문들은 다른 뜻을 내포하고 있었다.


‘나 지금 너한테 말 걸고 있다~ 노력하고 있다~‘

‘응 나도 지금 대답 길게 했다~ 나도 노력하고 있다~’


서로가 하는 질문과 답들은 그 언어적 의미를 넘어 서로가 이 냉랭한 싸움을 끝내기 위해 나름 큰 공을 세우고 있음을 어필하고 있었다.


그렇게 표정 하나 없이 무미건조한 대화를 이어가다 그가 대뜸 신나는 음악을 틀었다. 빠른 비트의 흥겨운 음악은 아침 일찍부터 서로 얼굴 붉히며 싸웠던 우리의 성난 감정들을 조금씩 누그러뜨렸다.


그가 틀어준 음악을 들으며 무심코 창 밖을 내다봤는데, 사이드 미러에 비친 나 자신과 눈이 마주쳤다. 사이드 미러 속 여자는 무척이나 차갑고 건조한 표정을 짓고 있었다. 그런 거울 속 여자의 얼굴이 무척이나 못나 보였다.


나는 반사적으로 그의 표정도 살폈다. 아니나 다를까 그의 표정 역시 차갑고 건조했다. 그는 속으로 어떤 생각을 하고 있을지 궁금했다. 혹시 여기서 먼저 웃는 사람이 지는 걸까? 누가 더 근엄하고 진지한지 내기를 하는 거였나?


그도 나만큼 노력했음을 알기에 나는 우리가 여기서 더 지치기 전, 아주 늦지 않은 타이밍에 그에게 옅은 미소를 지어 보였다.


미소의 출처는 딱히 없었다. 그와의 대화가 즐거워서도 아니고 행복해서도 아니었다. 그저 미소를 지어야 할 타이밍이라 미소를 지었을 뿐이었다.


그럼에도 나의 미소는 그와 나 사이에 흐르던 팽팽한 기류를 와르르 무너뜨린 일등공신이 됐다. 나의 미소에 그는 웃음으로 답했고 그는 다시 내 손을 잡았다.


우리는 그렇게 우리만의 편안한 상태를 되찾았다. 나의 출처 없는 미소는 우리의 사랑을 지키는 가장 간단하고 쉬운 노력이었던 것이다.


에버랜드에 도착한 후, 우리는 텐션을 끌어올려 하루종일 신나게 돌아다녔고, 서로에게 맛있는 것을 먹여주고 아껴주며 옆에 있는 서로에게 최선을 다했다. 그리고 퍽 사랑하는 연인처럼 서로에게 안겨 사진을 찍었다.


우리는 겉에서 보기엔 그저 행복한 한 쌍의 커플이었다. 근데 이 날따라 내가 진짜 행복한 건지, 행복을 연기하는 건지 의문이 들었다.


나 정말 행복해서 웃는 걸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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