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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누비 Jul 30. 2023

또 가고 싶은 곳이 생기다

[태국 북부 여행] Day 4 - 치앙마이

한국에서 읽은 치앙마이 여행 책들

나는 여행계획을 치밀하게 짜는 편은 아니지만 사전조사는 열심히 하는 편이다. 치앙마이를 오기 전 한국에서 치앙마이 여행 관련 책을 네 권 정도 읽었다. 책을 읽으며 여행 준비를 하는 과정은 나에게 숙제보다는 설렘 가득한 행복한 시간이었다. 나는 책에 나오는 곳 중에서 가고 싶은 곳은 구글지도에 모조리 표시해 두었는데, 여기 와서는 매일 아침 그 지도를 보며 그날 그날의 계획을 세우고 있다. 오늘도 아침에 동생과 함께 침대에 누워 오늘 하루의 계획을 세웠다. 오늘은 반캉왓과 왓우몽 그리고 재즈바를 가는 것으로 정해졌다.


반캉왓을 가려고 나왔을 때, 동생이 오늘은 택시 말고 오토바이를 타자고 했다. 나보다 다섯 살 어린 동생은 나보다 겁도 한참 없었다. 나는 생각도 많고 겁도 많은 편인데, 동생은 생각도 없고 겁도 없는 편이라 동생과 같이 다니다 보면 동생 덕분에 나 혼자였으면 못 할 좋은 경험도 많이 하게 되는 것 같다. 그리고 무엇보다 나의 걱정을 괜한 걱정이라며 아무렇지도 않게 치부해 주어 어린 동생에게 위로받을 때가 많이 있다.

동생이 타고 온 오토바이

여하튼 동생 덕분에 나는 오토바이를 탈 용기를 얻어 각자 볼트와 그랩으로 오토바이를 한 대씩 불렀다. 안전이 최우선이기에 헬멧은 꼭 썼다. 나는 타면서도 태국에서 사고 나면 병원은 어쩌지, 보험은 되나?라는 생각을 했는데, 생각보다 안정감 있는 운전에 뒷 손잡이를 꽉 붙들고 있던 손의 긴장을 풀 수 있었다.


내가 먼저 도착하고, 후에 동생이 도착했는데 동생은 너무 재미있지 않았냐며 신나서 내렸다. 동생은 그 이후에도 계속 오토바이를 타자고 했다. 나도 다섯 살 어렸으면 저랬으려나. 근데 타다 보니 오토바이가 꽤 괜찮은 이동수단 같아 보였다. 일단 택시보다 가격이 저렴하고(두 명 이상은 택시가 더 저렴하다.) 막히는 구간도 택시보다 더 빨리 지나갈 수 있었다. 가끔 뻥 뚫린 구간에서 질주하면 그 나름 시원하고 짜릿한 맛도 있었다.

반캉왓 초입에 있는 샵

그렇게 오토바이를 타고 도착한 반캉왓은 아기자기한 샵들이 모여있는 곳이었다. 반캉왓은 내가 치앙마이를 간다고 했을 때, 대만친구가 자기가 너무 좋았던 곳이라며 추천해 준 곳이기도 했다. 그 친구도 뜨개질로 직접 가방을 만드는 친구인데 반캉왓을 와보니 왜 그 친구가 여기를 제일 좋아했는지 알 것 같았다.

The Old Chiang Mai Cafe' Espresso Bar

나는 허기가 져서 일단 점심을 먹자고 했다. 동생은 별로 배가 고프지 않다고 했지만, 나는 밥을 안 먹으면 도저히 움직일 수 없는 저질 체력이라 뭐라도 먹어야 할 것 같았다. 돌아다니다 카페가 있길래 들어갔는데 다행히 음식을 팔았다. 우리는 팟타이, 팟카파오무쌉, 땡모반을 시켰다. 오우! 기대하지 않았는데 너무 맛있어서 배가 안 고프다고 한 동생도, 나도 그릇을 싹싹 비웠다.

타투 스티커와 열쇠고리 만들기체험

든든하게 먹은 우리는 길거리를 돌아다니다 타투 스티커를 여기저기 붙이고 계시는 멋쟁이 한국 아주머니를 보았다. 스티커인데 저렇게 예쁠 수 있다니!! 타투 스티커에 홀딱 반한 우리는 바로 마음에 드는 타투 스티커를 하나씩 골라잡고 몸 이곳저곳에 붙였다. 다 붙이니 뭔가 힙한 여행자 같아 기분이 좋았다.


반캉왓 내에는 여러 가지 체험을 할 수 있는 공간이 마련되어 있는데, 우리는 곰돌이를 물감으로 칠하는 체험을 했다.  90밧치고는 괜찮은 체험이었지만 시간이 없어 물감을 제대로 말리지 못하고 들고 다니다 여기저기 찍히고 긁혀 쓰지 못하게 되어 버렸다. 아쉽...


우리는 반캉왓을 나와 왓우몽으로 가는 길에 치앙마이 여행 유튜브에 매번 등장하는 No.39 카페를 찾았다. 에어컨이 나오는 실내는 좁았고 야외는 너무 더웠다. 가운데 있는 호수는 내가 생각한 것과 달리 조금 조잡했고. 주변이 잘 관리되지 않아 예쁜 느낌은 별로 없었다. 아마 기대가 커서일지도! 이래서 인스타 사진은 믿으면 안 된다...! 어쨌든 우리는 너무 더웠기 때문에 다른 카페로 이동하여 한 시간 정도 쉬고 왓우몽을 갔다.

왓우몽

왓우몽은 동굴사원으로 1200년대에 지어진 사원이다. 사원으로 들어가는 길에 개 한 마리가 우리를 바라보며 앞장서 가길래 길을 안내해 주나 보다 하고 따라갔다. 그러다 개와 눈이 마주쳐 안녕! 하며 애교를 부렸는데 개가 험악한 표정을 지으며 날카로운 이빨을 드러냈다. 동생과 나는 식겁하며 옆길로 도망쳤다. 치앙마이에는 들개들이 엄청 많은데 그 이후로는 개 눈을 피하며 다니는 중이다.


왓우몽은 입장료 20밧을 받았다. 신을 벗고 동굴 내부로 들어가니 부처상을 모시는 곳이 몇 군데 마련되어 있었다. 불교 인들은 돈을 내고 절도했다. 오래된 사원이어서 그런지 이제까지 봤던 사원들 중에 가장 화려하지 않았다. 우리는 빠르게 한 바퀴를 돌고 후다닥 나왔다. 동굴이라 그런지 아님 사람들이 맨발로 다녀서인지 이상한 냄새가 코를 괴롭혔기 때문에 오래 있을 수 없었다. 여기는 머무는 시간이 짧다면 굳이 안 와봐도 될 것 같았다.

님만해민 Cloud 9

왓우몽에서 나와 호텔 근처에서 마사지를 받았다. 저번에 타이 마사지를 받는 내내 아파서 잠을 못 잤기 때문에 이번에는 타이 마사지 대신 발, 머리, 어깨, 등이 합쳐진 마사지를 받았다. 1시간에 300밧이었다. 마사지사를 잘 만났는지 너무 시원하고 개운했다. 끝나고 나니 따뜻한 차, 쌀과자 그리고 망고를 주셨는데 다 맛있었다.

Chef Den Seafood

재즈 바에 가기 전 저녁을 먹을 검 푸팟퐁 커리 맛집을 찾았다. 한국인에게 유명한 곳이라 여기저기 한국인들이 있었다. 우리는 20분 정도 웨이팅을 한 후 자리에 앉을 수 있었다. 푸팟퐁커리, 모닝글로리, 새우 볶음밥, 코코넛 주스를 시켰다. 음식이 나오는데 시간이 오래 걸리긴 했지만 기다린 만큼 더 맛있게 먹을 수 있었다. 특히 모닝글로리가 기가 막혔다. 푸팟퐁커리는 튀김이 너무 느끼해서 많이 먹지 못했는데 맥주를 시켜서 같이 먹으니 금방 다 사라졌다.


웨이팅 줄이 길어지자 사장님은 가게를 넓혀야겠다며 우리에게 우스갯소리를 하셨다. 우리는 그 말을 진지하게 듣고 마치 백종원이 된 듯 이 가게의 문제점과 솔루션을 찾았다. 첫째로 사람들이 많이 오긴 하지만 음식 나오는 시간이 워낙 오래 걸려서 순환이 안 되고 있었다. 우리도 주문한 음식을 다 받는데 거의 20-30분이 걸렸다. 음식만 빨리 나올 수 있다면 대기하는 사람이 훨씬 줄 것 같았다. 둘째는 제대로 된 대기 시스템이 없다는 것이었다. 사장님께 눈도장을 찍으면 사장님이 손님 얼굴과 순서를 외우는 식이었는데 사장님께서 워낙 바쁘셨기 때문에 대기번호라도 주시면 좋겠다 싶었다. 이참에 여기서 알바나 해볼까.. 하는 생각도 해봤다.


나는 동생과 맥주 한 잔을 하며 잠깐이지만 조금 진지하게 죽음에 대해 이야기를 했다. 동생이 자신은 내가 죽으면 못 버틸 거라고 나보고 자신보다 늦게 죽으라고 했다. '나는 지가 죽으면 괜찮을지 아나!'생각이 들었지만 막내동생의 이기적인 마음이 썩 싫진 않았다. 동생과 이야기를 하다 전에 읽었던 이별수업이라는 책이 떠올라 내용을 말해주었다.


그 책에서 저자는 시한부를 받은 자신의 남편이 자살하도록 돕는데 자살이 합법인 나라에 가서 그것을 옆에서 지켜보고 응원해 주는 이야기였다. 동생에게 만약 내가 죽음을 선택한다면 나를 도울 것인지 물었다. 동생은 처음엔 절대 안 된다고 하더니 끝에는 그러겠다고 했다. 술 때문인지 무엇 때문이지 갑자기 눈물이 흘렀다. 살아 있을 때 옆에 있는 소중한 사람들에게 잘해야지! 라며 다시 맘을 먹었다.(참고로 나는 아직 건강하다.)

North Gate Jazz bar

우리는 치앙마이에서 가장 유명한 노스 게이트 재즈 바를 찾았다. 사람이 바글바글했다. 10시에 공연이 시작한다고 하여 맥주를 먹으며 조금 기다렸다. 공연은 생각 이상으로 너무 좋았다. 첫 번째 팀은 보컬위주의 공연이었는데, 보컬의 걸걸한 목소리가 사람을 끌어당기는 매력이 있었다. 나는 이층에 서서 발을 구르고 손뼉을 치며 음악에 몸을 맡겼다.

너무 좋았던 11시 팀

10시 팀이 끝나고, 피곤해하는 동생을 붙잡아 다음 공연까지 보고 가자고 했다. 우리는 그새 1층 공연장 바로 앞에 자리 잡고 있었는데 그 자리가 마음에 들었다. 조금의 휴식 후 11시 팀이 시작됐는데 11시 팀은 내 마음을 더욱 사로잡았다.


보컬도 보컬이지만 드럼과 피아노가 정말 대단했다. 서로를 바라보고 웃으며 호흡을 맞추는데 보고 있는 사람들도 절로 미소가 나올 만큼 행복한 표정을 지었다. 그들은 입술을 깨물고, 눈살을 찌푸리고, 어깨를 오므리며 온몸으로 음악을 표현하고 있었다. 그 사람들의 감정이 때로는 절절하게, 때로는 기분 좋게, 때로는 소름 돋게 나에게 전해졌다. 피아노를 두드리는 두 손과 리듬에 따라 바뀌는 그들의 표정, 힘이 느껴지는 드럼스틱, 그 스틱을 자유롭게 다루는 얇지만 강한 팔목, 그리고 음악에 맞게 흔들리는 머리를 보며 나는 그들과 함께 희열을 느꼈다.


음악이 인생의 전부라는 것은 저런 걸까? 저런 것이라면 나도 음악에 내 인생을 걸어보고 싶다~는 생각을 했다.(참고로 나는 음악과 거리가 아주 멀다.)


공연이 끝난 후 우리는 피아노를 쳤던 분께 팬이라며 따봉을 마구 날렸다. 그분의 해맑은 웃음과 열정이 나의 하루를 완벽하게 만들어 준 것을 그분은 알까.


여기는 다음에 꼭 또 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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