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국 북부 여행] Day 2 - 치앙마이
치앙마이는 한국보다 두 시간 느리다. 그래서 그런지 오늘은 새벽 다섯 시에 눈이 떠졌다. 동생이 깰라 조심히 핸드폰을 들고 베란다로 나갔다. 브런치 글을 수정하고, 영어공부를 하니 해가 어느새 떠있었다. 호텔에서는 보이는 이름 모를 사원의 지붕이 빛을 받아 반짝거렸다.
아침산책을 한 후 호텔 근처 Gravity라는 곳을 갔다. 치앙마이 물가에 비하면 많이 비싸지만 홈메이드라는 문구와 내가 먹고 싶던 스무디 볼이 있어 주저 않고 들어갔다.
음식이 나오니 가격에 비해 양이 너무 사악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도 상큼하고 묵직한 블루베리 바나나 스무디볼을 오트밀과 함께 한 숟갈 먹는 순간, 내가 치앙마이에서 아침을 보내고 있구나를 느낄 수 있었다. 신기하게도 먹기 전에는 음식이 적어 보였는데 다 먹고 나면 항상 배가 불렀다.(이걸 이때부터 깨달았으면 좋을 텐데...)
아침을 소화시킬 겸 동생과 함께 호텔 수영장에 깄다. 적당한 그늘과 따스함이 잘 어우러진 수영하기 딱 좋은 시간이었다. 우리는 당연한 수순처럼 물에 들어가기 전 스트레칭을.... 아니 스트레칭은 생각도 못했고 인생샷을 찍기 위해 예쁜 척, 귀여운 척, 몸매 좋은 척, 무심한 척, 놀란 척 등 온갖 '척'들을 했다.
예쁜 사진을 건진 우리는 나름대로 팔다리를 열심히 휘저으며 수영 아닌 수영을 하고 놀았다. 나이는 먹어도 경쟁심을 살아 있는지 수영 시합을 하기도 했다. 물론 왕복 과정에서 이름 모를 수영방법이 열댓 개는 나왔고 그중에는 걷는 것이 가장 많았다. 우리는 깔깔대며 예쁜 사진 속 모습과 퍽 다른 모습으로 수영을 즐겼다.
호텔 앞에는 작은 상점과 음식점이 있었다. 상점을 구경하며 안으로 들어가 보니 비밀 공간처럼 잘 꾸며진 카페가 나타났다. 주인아주머니께서 친절한 미소로 반겨주시는 바람에 우리는 뜻하지 않게 망고와 파인애플 스무디를 시켰다. 아니... 생과일스무디 하나에 35밧(1400원)이면 너무 저렴하다!!! 근데 웬걸 맛 또한 최고였다! 인생 스무디집을 알아버린 듯했다. 쿨쿨 자고 있는 카페 고양이의 귀여움은 이 카페의 가치를 백배는 올려주는 듯했다.
우리가 처음으로 간 관광지는 왓프라싱이라는 올드타운 내 큰 사원이었다. 그곳에서 엄청난 폭우를 만난 우리는 처마 밑에서 비를 피하고 있었는데 한 고등학생 무리들이 비를 맞으며 끊임없이 들어왔다. 현장체험학습인가...? 싶었다. 뒤에서는 연신 북을 쳤고, 학생들은 폭우를 맞으며 북장단에 맞춰 환호하고 춤을 췄다. 그들의 싱그러움과 행복감이 나에게도 전달돼 기분이 좋았다.
폭우가 점점 거세졌지만 우리는 지체할 시간이 없었다. 현지인 맛집이라고 찾아놓은 음식점이 세시면 문을 닫기 때문에 우리는 온몸이 젖더라도 폭우를 뚫고 음식점을 가는 힘든 여정을 택할 수밖에 없었다.
홀딱 젖어 도착한 현지인 맛집에는 이상하게도 사람이 아무도 없었다. (구글리뷰에서는 분명 줄 서서 먹는다고 했는데!) 음식은 스몰과 라지 사이즈가 있었다. 내가 스몰 사이즈가 많이 작냐고 물어봤을 때 직원이 작다고 알려줬다. 그래서 우린 스몰사이즈 음식을 세 개 시켰다.(기대가 컸어서 다 맛보고 싶었다.)
하아.. 음식이 나오자마자 우리는 후회했다. 그냥 두 개만 시켰어야 하는데! 양도 많을뿐더러 비슷한 요리를 중복해서 시켰던 것이다.
맛 또한 기대 이하였다. 몇 숟가락 먹지고 않았는데 몸에서 음식을 거부해 버렸다. 위생도 위생이었고 음식이 너무 기름졌다.
동생과 나는 서로의 젓가락이 머뭇거리는 것을 보고 웃음이 터졌다. 동생은 태국 현지식을 시도하기엔 아직 두려움이 큰 것 같다고 했다. 그냥 입맛에 안 맞는다는 말을 저리 예쁘게 하다니. 나를 배려해 주며 말하는 동생에게 너무 고마웠다.
음식 남기는 것을 좋아하지 않는 나는 억지로 고기를 먹다 얹히기까지 했다. 더 먹다간 이후 일정을 망칠 것 같아 먹는 것을 포기하고 계산서를 달라고 했다. 근데... 우리는 분명 세 접시 모두 스몰로 달라고 했는데!!! 한 접시가 라지였다며 라지 비용을 요구했다. 허허... 더군다나 먹은 것도 없는데... 물론 의사소통이 원활하지 않아 생긴 일이겠지만... 라지 비용을 내는 것이 이렇게 아까울 수 없었다!
총 390밧(15000원 정도)으로 한 끼 식사를 했지만 만족스럽지 않은 마음은 감출 수 없었다. 동생과 나는 다음부터는 딱 두 개만 시키고 맛있으면 더 시키자! 라며 자기반성 겸 성찰 겸 약속을 했다. 여행은 언제나 시행착오를 겪는 거지!
우리는 비둘기가 많기로 유명한 타폐문을 갔다가 날아오르는 비둘기 때문에 웃지도 울지도 못하는 표정으로 인증샷을 찍고 깔끔해 보이는 마사지샵을 가서 마사지를 받았다. 마사지샵 입구에 놓여있는 크록스가 한국인에게 인증받은 집이요~하는 느낌이다. 역시나 깔끔한 내관과 위생이 마음에 들었다. 타이 마사지 한 시간에 350밧이었는데 다른 곳을 돌아보니 조금 비싼 편인듯했다. (다른 곳은 250~350 사이)
저녁에는 축하할 일이 있어 꽃시장에 방문해 꽃다발을 샀다. 색색의 꽃들이 늘어져있는 시장은 여기저기 꽃을 구매하는 사람들로 활기를 띠고 있었다. 우리는 포장되어 있는 예쁜 장미 두 다발을 하나에 150밧씩(6천 원)을 주고 샀다. 선물 받은 분들도 너어어무 좋아하셔서 흐뭇했다.
축하하기 위한 자리인 만큼 핑강이 내려다보이는 좋은 레스토랑에 방문했다. 네 명이 가서 다섯 개를 시켰는데 처음에 나온 양을 보고 너무 부족하다 싶어 두 개를 더 시켰다가 다 먹고 오느라 진땀을 뺐다. 여기는 보이는 것은 적어도 딱 정당한 양인가 보다.(글을 쓰면서 보니 아침 점심 저녁 모두 똑같은 실수를 반복하는 모습이 너무 웃긴다.)
축하를 성공적으로 마친 우리는 바로 옆 와로롯 시장과 나이트 바자를 갔다.
과일을 사려면 와로롯 시장 초입에서 사는 것을 추천한다. 과일을 예쁘게 잘라 합리적인 가격에 판매하는데 거기서 못 사 먹은 것이 아직 까지도 아쉽다.
나이트 바자는 다양한 먹거리도 팔고 기념품도 많이 판다. 동생이 회사 사람들에게 작은 코끼리 공예품을 하나씩 주고 싶다고 하여 코끼리들을 찾아 몇 군데를 갔다.
처음 간 곳은 하나에 59밧, 많이 사도 할인 없음!
두 번째 간 곳에선 89밧...? 다른 곳에서 59밧 보고 왔다고 했더니 갑자기 55밧... 많이 살거니 할인해 달라고 해서 진짜 억지로 깎고 깎아 개당 45밧에 30개를 구입했다. 생각해 보니 엄청난 심리전이 펼쳐진 구매현장이었다. 주인아주머니는 심리학 전공 뺨치게 소비자의 마음을 조절했다. 왜 우리는 이때 심리전에 말려 든 것을 눈치채지 못하고 덜컥 걸려들었을까.
한 두 군데만 있을 거라고 생각했던 코끼리가 나이트 바자를 걷는 내내 보였다. 세 번째 간 곳은 처음부터 55밧을 부르고 우리가 뒤돌으니 바로 45밧을 불렀다.
아... 아까 간 곳에서는 정말 힘들게 깎은 가격이 45였는데... ‘우리가 산 것이 훨씬 예쁠 거야’라며 그 이후부터는 코끼리들을 의도적으로 외면했다.
돈을 쓸 때도 심리전이지만 즐거운 여행을 하기 위해 우리의 마음을 다스려야 하는 것도 심리전임을 알기에 우리는 우리의 여행에 후회를 두지 않기로 했다.
오늘은 너어무 알찼다. 내일은 설렁설렁 보내야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