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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억은 사라지지 않는다, 사라지는 건 침묵뿐이다

각자의 방식으로 기억하고, 아파하고, 이해해야 하는 사건 속으로

by 마이진e


한강 작가의 이름을 전 세계에 알린 책.

그러나 막상 손에 들기까지는 쉽지 않았다.


이유는 여러 가지가 있겠지만, 광주의 사건을

무엇보다도 역사 속 잔혹한 사건들을 나 스스로가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지 몰랐기 때문이다.


말할 수 없는 이야기 앞에서, 조용히 멈춰 선다.


쉽게 펼쳐지지 않았다.

한 줄을 읽고, 숨을 고르고,

다음 장으로 넘어가기가 망설여졌다.


『소년이 온다』는 내게 그런 책이었다.

읽는 내내 마음이 먹먹했고,

몇 번이나 책장을 덮었다.


『소년이 온다』는

언젠가 한 번쯤 읽어내야 한다고 생각했다.

읽기 전부터 마음이 저려오는 이름.


그 속에 담긴 시간이 너무 무거워서

쉽게 펼치지 못했던 책.


1980년 5월, 광주.

책 속에는 비극의 현장을 정면으로 마주 보게 하는

문장들이 그득했다.


한강 작가의 이 소설은 역사적 사실을 기반으로 하고 있다.

하지만 단순한 기록이 아닌 누구도 온전히 말하지 못했던 시간들을

기나긴 침묵의 시간을 견디며 써 내려간 소설이다.


작가는 말했다.

파괴된 영혼의 다하지 못한 말들을 대신 전하고 싶었다고.


그래서인지 읽는 내내 목이 메고, 손끝이 덜덜 떨려 왔다.

공포와 두려움 속에 스러진 그들을 기억하며


중간에 책을 덮고 싶었다.

감정의 깊이에 내가 무너질까 봐

하지만 그래도 끝까지 읽어 내 본다.

그게 인간에 대한 최소한의 예의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으로


이 소설은 다양한 인물들의 시점으로 이야기를 풀어간다.

'너'로 시작하는 1인칭 시점의 이야기가 자석처럼 훅 끌어당긴다.


동호, 정미, 은숙, 선주, 진수, 동호의 엄마...

각기 다른 얼굴과 삶, 상처를 지닌 인물들이 자신만의 방식으로 광주를 증언한다.


동호는 참 순수한 소년이다.

그 맑은 눈으로 본 광주의 참상은

그 어떤 기록보다 생생하고, 아프다.


정미는 실종된 동생을 찾아 헤매다,

자신마저도 흔적도 없이 사라졌다.

남매를 잃은 아버지의 슬픔을 그 누가 헤아릴 수 있을까


5.18 참상 속 생존자로서 살아남은 자들.

은숙은 검열과 싸우는 출판사 편집자로 국가의 폭력이 개인의 삶을

훼손하는 현실을 보여주고, 정신적 모멸감을 견뎌내는 슬픔을 보여준다.


선주는 고문 끝에 무너져가는 몸을 가지고 트라우마를 안은 채로

노동운동을 이어가는 모습으로 감각을 일깨워 준다.


진수. 살아남은 자의 죄책감으로 시달리며

참혹함을 기억해 내고 정신적 무게를 이겨내지 못하여 결국엔

삶의 끈을 놓는데.


그의 모습에서 정신적 고통을 감내한다는 것이 얼마나

처절하고 힘겨운 감정인지를 감각으로나마 느껴 볼 수 있었다.

이 책은 그렇게 감정과 감각의 결을 따라가게 만든다.

피 냄새, 철 냄새, 쉴 새 없이 들리는 총성.


작가는 감정이라는 것을 단정하지 않기에 읽는 내내 흔들렸다.

아마도 읽는 사람이 각자의 방식으로 기억하고, 아파하고,

이해해 주길 바랐던 건 아니었을까?


『소년이 온다』는 슬픔의 언어로 쓰였으며

살아남은 자들이 연대하여 온 시간.

그 시간의 기록을 통해 망각하지 말아야 한다는

성찰과 다짐을 하게 한다.


작가가 묻고 있는 것들에 대해 어떤 응답을 할 수 있을까.

그 질문을 되뇌며 책장을 덮었다.


책은 덮었지만, 국가폭력이 개인의 삶에 미치는 파장 등에 대한
슬픔의 이야기는 내 곁을 떠나지 않았다.


그 참혹한 현장의 기록이 기억으로 살아서

우리의 곁을 서성인다. 외면하지 말아 달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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