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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형원 Nov 17. 2019

누가 인생이 마라톤이래?



 얼마 전 마라톤 대회에 참가했다. 특별한 이유는 없었다. 다만 살면서 마라톤을 한 번 뛰어보고 싶었다. '인생은 마라톤이다'라는 유명한 말도 있으니까.

 코스는 가장 짧은 10km를 선택했다. 전에 마라톤은 물론이고 10km를 뛰어본 적도 없다. 그런데도 '10km 정도는 그냥 뛸 수 있지 않을까?' 하는 근거 없는 자신감이 마음속에 있었다. 그래도 뛰다가 중도 포기하는 사태는 맞고 싶지 않았기에 연습 삼아 근처 공원 트랙을 주말마다 뛰었다.

 마라톤 당일. 폭죽들이 터지며 출발을 알렸다. 그와 함께 수많은 사람들에 섞여 나도 뛰기 시작했다. 1km를 지나고 2km를 지나고 3km 까지는 괜찮았다. 그러나 4km를 지날 때. 숨을 고르고 조절하기 힘들어졌다. 연습할 때 달렸던 평평한 공원 트랙과 달리, 서울 시내와 도로는 오르막길이 꽤나 많았다. 아무리 뛰어도 5km를 알리는 표지판이 나오지 않았다.


 나는 아직도 약 6km가 남았다는 것에 절망했다. 내가 왜 마라톤을 한다고 해서 이 고생을 하고 있나. 너무 힘들어서 속으로 욕을 욕을 엄청 했다. 그리고 생각했다. 인생을 마라톤에 비유한 사람은 10km 마라톤도 해본 적 없는 사람일 거라고.




 좋아하는 광고가 있다. '누가 인생을 마라톤이라고 했는가'라는 제목의 광고다. 광고의 내용은 이렇다.

 마라톤 대회가 시작되고 사람들이 뛰기 시작한다. 한 마라토너가 뛰면서 생각한다. '인생은 마라톤이다.' 생기 없이 그저 다른 사람들과 보조를 맞추며 뛰던 주인공의 생각은 더 나아간다. '진짜 인생이 마라톤이야?' 주인공은 다른 이들과 똑같은 결승선을 향해 뛰는 것을 그만두고 앞으로 전속력으로 달려 나간다. 그리고 펜스를 넘어 코스를 이탈해버린다.

 그 모습을 본 다른 사람들도 코스를 벗어나기 시작한다. 그리고 각자의 길을 뛰기 시작한다. 마라톤 복장을 한 채로 누군가는 회사일을 하고, 누군가는 탐험을 시작한다. 다른 이는 분만실에서 갓 태어난 자신의 아이를 만나고, 또 다른 사람은 사무실에 앉아 일을 한다. 클럽에서 노는 사람도 있다. 그리고 어떤 이는 마라톤을 끝까지 완주한다. 그리고 마지막 주인공의 대사.


'누가 인생을 마라톤이라 했는가?'




 맞다. 인생은 마라톤이 아니었다. 나는 5km 구간에 들어서며, 인생은 마라톤이 아니라고 마음속 깊이 공감했다. 광고에서 말하는, '남들이 정해놓은 길이 아닌 자신의 길을 가라'는 것과 내 생각은 조금 결이 다르지만. 어쨌든 내게 인생은 마라톤이 아니었다.

 마라톤은 너무 힘들다. 인생이 마라톤처럼 힘들다면 나는 진작에 포기했을 것이다. 그래도 마라톤은 42km 풀코스여도 3시간 안에 끝난다. 인생이 3시간 안에 끝난다면 인생은 마라톤이다 라는 말에 동의하겠다. 그러나 마라톤은 힘들고 인생은 너무나 길다.

 6km를 지날 때. 너무 힘들어서 걸을까 혹은 그만둘까 고민했다. 이 고민을 하는 와중에도 내 양 옆으로 사람들이 나를 추월해 멀어져 갔다. 앞서 간 사람들은 너무 잘 뛰었다. 호흡도 너무 평온해보였다. 그 모습을 보자 나는 지쳐버린 내게 화가 났다. '나만 힘든가?' 오기가 생겼다. 나도 신들처럼 걷지 않고 완주하리라 다짐했다. 꾸꾸역 뛰었다.


 10km 구간의 마지막 코너를 돌자 드디어 피니시 라인이 보였다. 코너에서 결승선까지는 약 300여 미터 일직선 구간이었다. 결승점이 보이자 나는 겨우 남은 힘을 짜내 전속력으로 뛰었다. 조금이라도 기록을 줄이고 싶어서 그랬던 것인지, 이 힘든 마라톤을 일찍 끝내고 싶어서였는지  모르겠다. 뿌듯했던 건, 단 한 번도 걷지 않고 완주했다는 거였다. 


 완주자들에게 주는 메달을 받나는 핸드폰으로 검색했다. '인생은 마라톤이다 라고 말한 사람' 검색창엔 '인생은 마라톤이다' 라는 말을 인용한 글들만 가득했다. 이 말을 한 인물이 누군지 나오지 않았다.




 물품보관소에서 맡긴 물건을 찾았다. 다리가 떨리고 뻐근해서 근처 공터 바닥에 주저앉았다. 완주자들에게 나눠준 빵과 음료수를 먹으며 주위를 둘러봤다. 많은 사람들이 완주의 기쁨을 느끼고 있었다. 물론 모두 몰골이 말이 아니었다. 문득 궁금했다. 저 많은 사람들은 무슨 이유로 마라톤을 시작하고 완주했나. 그리고 왜 나는 이 힘든 마라톤을 포기하지 않고 완주했을까.

 알 수 없지만, 확실한 건 다른 사람들과 함께 뛰었기 때문에 완주할 수 있었다는 것이다. 혼자 공원에서 연습할 때, 나는 한 번도 10km를 완주하지 못했다. 

 내 앞에서 뛰던 사람들과 나를 앞질러 간 사람들. 이들은  힘들어 보이지 않았다. 나만 힘든 것 같았다. 하지만 생각해보니 나도 4km를 지나면서부터 뒤를 돌아보지 않았다. 그때부턴 뒤돌아보지 않고 앞사람 뒷꿈치만 보면서 뛰어야 포기하지 않고 완주할 수 있다고 느꼈던 것 같다. 아마 내 뒤에도 수많은 사람들이 뛰고 있었을 거다. 돌이켜보면 갓길에 중간중간 걷는 사람들도 있었고, 나보다 더 가뿐 숨을 내쉬며 힘겹게 달리는 사람을 추월할 때도 있었다. 내 뒤에서 뛰던 사람들, 내가 추월한 사람들 눈에 나도 잘 뛰고 있는 것처럼 보였을까?

 

 그리고 우연히 잠깐씩 내 곁에서 나와 함께 뛰었던 사람들. 모두 힘들었을 것이다. 그래도 이들과 나는 힘든 상황에서 포기하지 않고 달렸다. 서로 존재함으로써 서로에게 위로를 주며.



 

 내 생각에 인생은 '빠른 걸음'에 가깝다고 생각된다. 인생을 산책이라 말하기엔 인생은 여유롭지 않고. 그렇다고 마라톤에 비유하기에는 마라톤은 너무나 힘들다. 빠른 걸음. 회사에 지각하지 않기 위해, 약속 시간에 늦지 않기 위해 뛰는 듯 걷는 빠른 걸음. 빠른 걸음이야 말로 인생을 표현하기에 적합하다고 생각한다.


 겨우 10km 뛰고 생색은 엄청 내네 라고 한다면 맞다. 생색도 내고 자랑도 하고 싶었다. 마라톤 10km를 완주했다고 해서 내가 10km만큼 달라지진 않았을 것이다. 하지만 나도 완주했다. 나도 내 인생을 버티고 있다고. 누가 인생이 마라톤이래? 앞으로 나는 내 1인분의 인생을 빠른 걸음으로 그리고 함께 완주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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