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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카라반 Aug 15. 2017

호영이와 부끄러움

호영이는 그대로일까

중학교에 다닐 때, 호영이란 친구가 있었다.


중학교 1학년 중간고사가 끝났을 때였다. 그땐 담임선생님이 앞에서 학생들의 점수를 불러줬다. "호영이 이리 나와. 너 뭘 잘못한 줄 알아?" 호영이는 모르는 눈치였다. 선생님은 시험 점수가 낮다고 학생을 혼내지는 않았다. "호영아, 모르는 문제여도 객관식이면 찍기라도 해야지. 하나라도 더 맞을 줄 어떻게 알겠어?" 선생님은 호영이를 나무랐다.


호영이는 대개 맞은 문제보다 틀린 문제가 많았다. 그런데 호영이는 자기가 모르는 문제는 찍기조차도 하지 않고 답을 비웠다. 선생님은 호영이가 몰라서 채우지 않은 답을 보고 최선을 다하지 않았다고 여겼다. "모르는 문제를 찍어서 맞추는 건 속이는 거 아닌가요…" 호영이는 들리지 않게 말했다.


우리 중학교는 남자중학교였다. 걸핏하면 3학년 중에서 잘나간다(?)는 형들이 우리 반으로 내려와 겁줬다. 그럴 때마다 우린 눈을 깔고 쥐 죽은 듯이 이 시간이 지나가기만을 기다렸다. 아무것도 보지 않고 말하지 않으면 형들은 조용히 돌아갔다.


중학교 2학년 때였다. 3학년 형들이 내려와 2학년 전체 반을 돌아다녔다. 그러다가 우리 반으로 들어왔다. 형들은 친구들에게 돈을 뺏고 욕을 했다. 그러다가 한 친구의 염주 팔찌를 가져갔다. "잠깐만 쓰다 줄게."라는 말을 남기고 형들은 자기 반으로 돌아갔다.


한 시간이 지나고 두 시간이 지나도 염주는 돌아오지 않았다. 염주를 빼앗긴 친구는 돌려받을 마음을 버렸다. 그때 복도에서 '쩍! 쩍!'하는 소리가 들렸다. 학생들이 몰려나왔다. 호영이가 3학년 형에게 따귀를 맞고 있었다. "제 친구 염주 돌려주세요. 형꺼 아니잖아요." 호영이는 염주를 빼앗은 선배를 찾아가 그렇게 말했다고 한다. 호영이는 볼이 탱탱 부은 모습으로 돌아왔다. 염주가 돌아왔는지는 기억나지 않는다.


호영이와는 중학교를 마치고 한 번도 마주치거나 연락한 적이 없다. 중학교 때도 친한 사이는 아니었다. 가끔 호영이가 떠오른다. 대학에 입학해서도, 군대에서도, 아르바이트에서도. 불의가 눈에 보일 때, '호영이라면 어떻게 했을까'하는 생각이 든다. 호영이처럼 하지 못한 창피함도 함께.


호영이는 지금도 그때와 같을까. 언젠가 호영이를 만나면 "너에게 부끄럽지 않으려고 노력하며 살아왔어."라고 전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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