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성이가 4살이 되면서 가정어린이집을 졸업하고 민간어린이집에 입학했다. 아빠 혼자 참석한 집은 우리 집이 유일한 듯하다. 각 반별로 선생님들 소개를 하는 중에 원장님의 말이 나의 마음에 와닿았다.
“집에서 부모가 행복해야 자녀가 행복한 것처럼 원에서는 교사가 행복해야 아이들이 행복합니다.”
“그래 맞다. 하성아 아빠가 먼저 행복해야겠지?”
지인이 아이를 어린이집에 보내기로 등록을 하고서는 잘한 결정인지 갈등하는 글을 SNS에서 보았다. 1년 전 똑같은 고민을 했던 나의 모습이 떠올랐다. 그 마음은 나도 알고 세상의 모든 부모들이 공감하는 마음이었다.
아들이 13개월 되었을 때 아내가 복직하며 육아대디를 시작했다. 그해 10월쯤 3살이 되면 3월 새 학기에 보낼 어린이집을 알아보았다. 아들의 첫 사회생활이라 한 반에 5명이 정원인 가정 어린이 집에 보내기로 했다. 마침 아파트 내에 있어 상담을 하러 갔다. 여러 가지 설명을 듣던 중에 11월에 한 명의 아이기 이사를 가서 자리가 하나 나는데 혹시 보낼 생각이 있는지 물으셨다. 전혀 생각지도 못했던 변수가 생겨버렸다.
“여보, 힘들면 하성이 11월부터 보낼까요?”“너무 이른 거 아닐까요? 보내도 될까요?”
‘진짜로 보낼까?’ 하는 마음, ‘너무 이른데 내년 3월에 보내기로 한 거 좀 더 있다 보내자’ 하는 마음이 서로 내적 갈등을 일으켰다. 나만 생각하면 1초의 망설임도 없이 보내자고 했을 테지만 18개월 된 아들을 보낼 생각을 하니 마음에 별별 생각이 다 들었다.
‘괜히 나 편하자고 너무나 어린애를 어린이집으로 보내는 것은 아닌가?’‘말도 제대로 못하는 어린것을 맡기는 게 잘하는 짓인가?’‘괜히 보냈다가 이상한 일이라도 당하면 어쩌지?’'그 어린것이 잘 적응은 할까? 매일 울면 어떡하지?’
아마도 엄마들은 아니 주로 양육을 하는 부모 모두 같은 마음일 것이다. 결국 처음 계획대로 새 학기에 보내기로 했다.
[세 돌도 안 된 애 원에 맡길 거면 뭐 하러 낳았어?... 육아서에 다~ 나와 있는 거 두 눈으로 봤는데. 영재 키운 엄마든 평범하게 키운 엄마든, 외국서든 국내서든 죄다 기관에 일찍 맡기지 않아야 애 잘 키울 수 있다고 쓰여 있는데, 정답을 아는데 어떻게 내 몸 힘들다고, 남들 다 보낸다고 그 어린 자식을 맡겨? 지지고 볶든 진흙탕 싸움을 하던 애를 잡았다가 사과했다 또 잡았다 사과했다를 4500번 반복하더라도 세 돌까지는 집에서 끼고 있어야 하는 거다. 지를 나은 애미와 애착을 만족할 정도로 느껴야 하고, 미운 정 고운 정 다 들어야 하고, 세상이 그리 녹록지 않다는 것도 선생님이 아닌 지 애미를 통해서 느껴야 한다.]
<지랄발랄 하은맘의 불량육아,김선미>
하성이를 3월에 어린이집에 보내기로 결심하고 얼마 후에 읽었던 육아 책이다. 저자가 아이를 어린이집에 보내지 않고 책 육아, 엄마표 영어등으로 양육했던 스토리를 이야기한다. ‘이야~ 이분 대단하시네, 어떻게 어린이집에 안 보냈지?’라는 감탄과 ‘힘든데 그럼 어떻게 나도 살아야지?’라는 반감도 들었지만 그때 다시 어린이집에 대한 고민을 했었다. 이 시기가 중요하다고 하는데 좀 더 데리고 있어야 하는데, 지인 중에 어린이집 안 보내고 잘 키우고 있는데 나도 할 수 있을지를 고민했다. 며칠을 뒤숭숭한 마음에 고민을 하며 그동안의 육아대디의 삶을 되돌아보았다.
나는 하성이 오전 오후 낮잠을 자는 시간만을 기다렸다. 낮잠을 오래 자 주었으면 하는 마음이 컸다. SNS에 지인들의 사회생활이 나와 비교가 되면서 스스로 자존감이 무너졌다. 나만 정체되어 있다는 생각에 답답했다. 하루 종일 기분이 업, 다운, 업, 다운하며 우울한 적도 많았다. 아빠가 육체적으로 많이 놀아 준다는데 귀찮아서 그렇게 많이 하지 못했다. 와이프가 칼퇴하기만을 기다렸다. 매일 반복되는 육아의 삶이 분명 끝이 있지만 그때는 끝이 날 거 같지 않았다. 심리적으로 점점 힘겨워하는 나를 발견하고는 무엇인가 해방구가 필요했다. 그렇게 아들을 어린이집에 보내며 스스로 위안하기 위해 마음으로 아들에게 고백했다.
‘하성아 미안하다. 아빠가 육아가 힘들어서 보냈다. 자유롭고 싶었다. 육아로 영혼이 힘겹고 심신이 지쳐 신경이 더 예민해졌다. 너에게 짜증을 내고 귀찮아 방치도 했다. 그것보다 아빠가 잠시라도 나만의 시간을 통해 에너지를 충전해서 하성이에게 찐한 사랑을 줄 수 있다면 너도 나도 서로 WIN-WIN이라고 생각한다. 아들아 미안하지만 어린이집에서 즐겁게 놀다가 우리 서로 더 반갑게 만나자’
하성이가 어린이집에 다니며 잠시라도 커피 한잔을 할 수 있는 여유가 좋다. 누군가 나를 찾지 않는 혼자만의 순간이 좋았다. 며칠은 나를 재충전할 수 있는 시간이 되었지만 상황이 드라마틱하게 좋아진 것은 아니었다. 매일 반복되는 육아, 나만 정체된 거 같아 찾아오는 우울감은 여전했다.
“여보 나 바리스타 자격증 따볼까?”
하성이 어린이집에서 열심히 살아가고 있는 동안 시간을 헛되이 보내지 않아야겠다 생각했다.
아빠도 그 시간을 잘 활용하고 있다는 것을 보여주고 싶었다. 정체되어 있지 않고 성취감을 맛보며 성장하고 있다고 스스로에게 위안을 주고 싶었다. 바리스타를 시작으로 헬스, 독서, 블로그, 기타 연주, 한문공부 등 생산적인 일들을 꾸준히 하려고 노력하였다.
맞벌이 부부가 아닌 상황에서 어린이집을 보내는 것이 맞을까를 고민한다면 먼저 그 시간을 통해 부모가 무엇을 할 것인지를 고민해 보면 어떨까? 부모가 재충전이 되고 성장하는 시간이 된다면 부모의 긍정에너지가 아이에게 영향을 줘 더 즐겁고 행복한 육아가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