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린이집을 다니다 보면 입학식, 학부모 참여수업 등 부모가 함께 하는 경우가 있다. 참석자 95% 이상이 엄마들이고 나머지 5% 정도가 아빠들이다. 아빠들이 참석하는 경우는 거의 대부분 부부가 함께 오는 경우다. 조아빠처럼 아빠 혼자 참석하는 경우는 아직 목격하지 못했다. 문화센터 수업도 아빠들이 오는 경우는 거의 드물다. 그러서일까? 앞에서 진행을 하는 선생님, 강사는 대부분 부모님을 호칭할 때 ‘어머님’이라고 한다.
“어머님들 이번 시간은 양치질의 중요성과 방법에 대해서 활동을 합니다, 어머님들 다음 주에는 특별 선물이 나가니 꼭 오세요,”
뻔히 아빠가 앞에 앉아 있는데도 그렇게 부르는데 아빠들의 참석이 거의 없는 문화였기에 별생각 없이 듣고 있었다. 어느 날 어린이집 부모교육에서 갑자기 ‘어머님’이라는 말이 거슬리게 들렸다. 계속 아버님은 없고 어머님만 찾으니 갑자기 사춘기시절 부리던 객기가 올라왔다.
“여기 아빠도 있는데요!!!”
산 정상에서 ‘야호’를 외치듯 말하고 싶었지만 마음속으로 외칠뿐이었다. 평소 성격이라면 농담 삼아 이야기했을 것이다. 하지만 그때는 아빠의 역할로 엄마들 무리 속에 있다 보니 괜히 이목을 끌고 싶지 않았다. 육아하는 아빠 알아봐 달라고 시위하는 거 같기도 했다.
그런 마음들이 쌓여 어디 속 시원히 나눌 육아동지가 없던 나는 ‘임금님 귀는 당나귀 귀’를 외치듯 나만의 대나무 숲인 아내에게 미조알고조알 이야기 기할 뿐이었다.
그런 순간들을 어쩔 수 없는 문화라고 생각하며 문화센터 수업을 마치던 어느 날이었다.
“어머님 아버님 다음 주에 특별 프로그램이 있으니 꼭 오셔야 합니다.”
다음 수업부터는 어머님과 아버님을 꼭 붙여서 강의를 진행했다. 이뿐만 아니라 어린이집에서 매주 보내주는 안내장에 인사말 ‘어머님 아버님 가정의 달 5월이 왔습니다’로 시작되기 시작했다. 나는 너무 신이 나서 아내에게 자랑을 했다.
누군가는 ‘아버님’이라고 불린 것이 별일인가 생각할 수도 있다. 그때 나는 육아를 시작한 지 1~2년 정도 되어 사람들이 일 안 하고 집에서 애나 보는 무책임한 아빠로 생각할지도 모른다는 자격지심을 가지고 있던 시기였다. 그런 상태에 ‘아버님’이라고 불러주는 일은 큰 힘이 되었다.
‘내가 그의 이름을 불러 준 것처럼 나의 이 빛깔과 향기에 알맞은 누가 나의 이름을 불러다오, 그에게로 가서 나도 그의 꽃이 되고 싶다 ‘ -김춘수의 꽃-
문화센터, 어린이집에서 일어난 작은 변화가 육아를 전담하고 있는 아빠의 빛깔과 향기를 알아봐 주는 것 같았다. 그들에게 내가 꽃이 되어 준 것은 아니지만 육아대디의 모습, 쓰임, 존재 가치를 인정받아 나만의 꽃이 될 수 있게 해 주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