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조아빠 May 30. 2023

3. 아들아 아빠랑은 갈 수가 없다.

 하성이가 가정 어린이집에 다니면서 처음으로 친구가 생겼다. 거의 비슷한 시간에 하원을 했기에 자연스럽게 함께 놀이터에서 노는 일들이 많아졌다. 하성이 친구가 생긴 것도 좋은 일이지만 조아빠도 친구 엄마들과 자연스럽게 대화를 하게 되어 더 좋았다.


 사람들과 어울려 말하는 것을 좋아하는 성향인데 놀이터 주변에 앉아서 도란도란 이야기를 나누는 엄마들 사이에 낄 수도 없고 그 옆에 앉아 있는 것만도 스스로 어색했다.

나 스스로 엄마들의 눈빛에서

‘저 아빠는 왜 매일 놀이터에 오지?’

라는 무언의 메시지가 담겨있다고 생각했다. 자연스럽게 아들을 뒤쫓아 다니거나 엄마들 무리에서 떨어진 외딴곳에 혼자 앉아서 핸드폰만 보고 있는 놀이터의 이방인 신분이었다면 지금은 엄마들과 어울리며 함께 수다를 떠는 신분의 변화가 생겼다.

“하성이는 키가 큰데 뭘 먹였어요? 아님 아빠 닮아서 키가 큰 건가?
“보빈이가 하성이랑 절친이에요.”
“하성이는 애착 인형 없어요? 저희 애는 아기 띠를 가지고 가요.”
“어린이집에서 하성이랑 잘 논다네요.”


 같은 반 아이들의 부모라는 공통점이 서로의 마음의 벽을 허물었던 거 같다. 어린이집에서 있었던 일, 어린이집 행사 참석 여부, 밥을 잘 먹는지, 어떤 반찬을 주로 먹는지, 자는 시간과 일어나는 시간, 또래 아이를 키우며 비슷한 고민을 했기에 공감대를 형성하며 대화가 잘 이루어졌다.

“보빈이 엄마 저 하성이 아빠인데요. 하성이가 손톱으로 보빈이 얼굴에 상처를 냈다는데 죄송해요. 저희가 연고랑 밴드 좀 사다 드릴까 하는데요.”

이렇게 하성이가 친구랑 문제가 생겼을 때도 아내가 아닌 조아빠가 연락해도 전혀 어색하지 않았다. 나의 전화번호 목록에는 ‘보빈이 엄마, 종은이 엄마, 다영이 엄마, 로운이 엄마, 보미엄마,’와 같이 동네 아이 엄마들의 전화번호가 늘어갔다.


그러나 절대로 넘어설 수 없는 영역이 있었다.
어느 날과 마찬가지로 하원 후 다 함께 놀이터로 뛰어가 놀기 시작한 아이들, 놀이터 정자에 앉아 아이들을 지켜보며 이야기꽃을 피우는 엄마들과 조아빠의 모습이었다. 아이들에 괴물놀이를 하자며 나를 불렀다. 괴물 소리를 내며 아이들에게 달려가니 소리를 지르며 도망가는 아이들과 한 참을 재미나게 놀았다.

같은반 친구들과 놀이터


“종은아 우리 보민이 집에 가서 놀까?”
엄마들끼리 이야기가 되었는지 한 친구가 다른 친구 집에 가기로 했는지 아이에게 물었다.
그 순간 조아빠는 아들을 황급히 불렀다.

“하성아 아빠가 집에 가서 젤리 줄까? 집에 가서 놀까?, 헬리콥터 놀이터 갈까?”
친구 집에 놀러 간다는 소리에 ‘자기도 친구 집에 가고 싶다고 하면 어떻게 하지?’ 하는 염려에 하성이가 좋아하는 젤리, 다른 놀이터 등 하성이의 관심사를 다른 곳으로 돌리기 위해 노력했다.  어느 날은 안 통해다.

“아빠 나도 보빈이네 가고 싶어요”
“하성아 아빠랑은 갈 수가 없어요.”
“왜 못 가?”
“음~~~ 친구 엄마들만 있어서 아빠랑은 갈 수가 없어, 아빠가 집에 가서 젤리 3개 줄게요”
“싫어요 나도 갈래요”


다른 것으로 유혹도 하고 설명도 했지만 통하지 않을 때는 친구들과 엄마들에게 급하게 인사를 하고 하성이를 번쩍 안고 집으로 돌아왔다. 집으로 오는 내 ‘아빠의 육아가 아닌 엄마의 육아였다면 하성도 친구 집에 갔을 텐데’하는 속상함, 서러움, 아들에 대한 미안함이 몰려왔다.

어린이집에 다니는 또래들이 친구 집에 놀러 간다고 하면 거의 100% 엄마도 함께 간다. 그러나 나는 아빠이지 않는가? 그 친구 집에 아내가 아닌 조아빠만 동행해서 간다는 것을 상상 조차 할 수가 없었다. 친구 집에 놀러 가는 것뿐만 아니라 동네 키즈 카페에 갈 때도 마찬가지였다. 엄마들 사이에 끼여서 놀이터 대화는 가능했지만 함께 어딘가를 간다는 것이 어색했다. 아니 갈 수 없다고 확신했다. 이것은 조아빠가 살아오며 경험한 문화의 힘이 아닐까 싶다.


만약 내가 먼저 같이 가도 되냐고 물었다면 상황이 달라졌을까?
아빠들의 육아휴직이 점점 많아지고 있지만 지금도 내가 먼저 우리도 함께 가도 되냐고 물어볼 수 있는 사회적 분위기는 아닌 듯하다. 1~2년 육아휴직을 쓰고 사회로 복귀하는 아빠들 외에  조아빠와 같이 계속 육아에 참여하는 아빠들이 함께 모여 어울리고 나누고 할 수 있는 그날이  올 것이라 기대해 본다.


이전 02화 2. 애는 엄마가 보고 돈은 남자가 벌어야지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