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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조아빠 May 20. 2023

복직을 앞둔 아내에게 한 말 “여보 육아 내가 해볼게”

2015년 7월 1일 첫째를 낳고 1년 2개월의 육아휴직을 끝낸 아내가 복직을 한 날이다.
조아빠가 2살(14개월) 된 아들을 돌보고 집안 살림을 하는 육아 대디가 된 날이기도 하다. 그때부터 글을 쓰고 있는 현재 10살 아들과 6살 딸을 키우는 9년 차 육아대디가 되었다.

첫째가 태어나고 우리 부부는 아내의 복직 후에 ‘아이를 어떻게 돌봐야 할까?’ 고민이 많았다.

“대전에 우리 엄마한테 부탁드려 볼까요?”
“어머님도 일하시고 아버님도 계신데 어떻게 당진까지 오시라고 해요.”

먼저 떠오른 것은 양가 부모님의 도움을 받는 것이었다. 처가는 부산인 데다가 부산에 살고 있는 처형도 우리와 비슷한 시기에 첫째를 낳았다. 장모님은 육아휴직을 끝내고 복직하는 처형의 첫째를 돌봐야 하는 상황이었다.

대전에 살고 계신 우리 부모님은 일을 하고 계셨기에 부탁드리기가 애매했다. 결정적으로 부모님들도 각자의 일과 삶이 있는데 우리 부부가 일을 해야 한다는 이유로

“아빠 죄송한데 주중에 혼자 식사를 챙겨드시고 엄마가 당진에 와서 하성이 좀 봐주세요”

라고 말할 수가 없었다.

아이를 대전으로 보낼 수도 있었지만 결혼하며 ‘절대 주말부부는 하지 말자’라고 서로 다짐했던 우리가 아이와 주말에 떨어져 지난다는 것은 그 원칙을 깨는 것이어서 하고 싶지 않았다.

다른 방법으로 첫째를 집 근처 가정 어린이집에 바로 보내는 것이었다. 그러나 14개월 밖에 되지 않은 하성이가 너무 어리다는 생각에 어린이 집은 보내고 싶지 않았다. ‘아이는 엄마가 키워야지’ 하며 엄마라는 타이틀 때문에 아내에게 회사를 그만두라고 할 수도 없었다.
아내도 그동안 자신의 꿈을 위해 대학원에 어학연수까지 다녀오며  열심히 직장 생활을 했다. 엄마라는 이유로 아이를 위해 그 모든 것을 포기하고 희생하라고 할 수 없었다. 객관적으로 대기업 연구원이라 프리랜서로 강의를 하는 나보다 연봉도 높기에 누군가 일을 하지 않고 아이를 돌봐야 한다면 내가 그 역할을 하는 것이 맞다 생각했다.

내 입장에서 프리랜서 강사라고 해도 ‘남자, 가장’이 돈을 벌어 가정을 책임져야 한다는 선입견에 육아를 하겠다는 결정을 쉽게 내릴 수가 없었다.
어떠한 결정도 내리지 못하고 시간은 흘러갔다.
복직을 앞둔 아내는

“여보 하성이가 너무 어려서 미안하긴 하지만 복직에 맞춰서 가정 어린이집에 보냅시다. 방법이 없잖아요.”

당진으로 이사를 두 달 정도 앞두고 이사할 아파트에 있는 어린이집을 알아보고는 1순위와 2순위가 있다며 이야기를 꺼냈다.
이제는 무엇이든 간에 결단 내려야 할 순간이 왔다.

“여보 내가 해볼게요. 강의 없는 날은 하성이를 돌보고 강의가 있는 날은 대전에 엄마한테 하루만 와달라고 부탁을 드리는 걸로 합시다.”


바로 대전에 부모님께 전화를 드려 우리의 생각을 말했다. 하성이가 태어날 때부터 육아에 대한 고민을 함께 해주셨던 부모님은 며느리에 일을 그만두라고 할 수도 없고 아들이 일을 그만두고 아이를 보는 모습도 볼 수 없었기에

“현정이 복직하면 하성이는 엄마가 돌봐줄게”

라고 늘 이야기하셨던 엄마는 우리의 제안을 흔쾌히 받아주셨다.

그렇게 상황이 정리되고 우리는 신혼생활을 하던 수원에서 복직하기 이틀 전에 살아생전 처음 들어보았던 당진으로 이사를 했다. 아는 사람이라고는 아내와 아들밖에 없는 낯선 곳에서 조아빠라는 새로운 삶을 시작하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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