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성이는 역할 놀이를 가장 좋아한다. 3살쯤부터 시작된 역할 놀이는 10살이 된 지금까지 꾸준하다. 그 순간의 느낌과 관심사에 따라 장난감이 바뀔 뿐이다. 한참 공룡에 빠졌을 5살 때 일이다. 6시 반에 일어난 아들이 너무나 귀엽지만 무서운 소리로 말했다.
“아빠 우리 밖에 나가서 공룡놀이 할까요?”
5살의 애교가 담긴 목소리와 달리 그놈의 공룡놀이는 귀엽지 않다. 하루의 일과를 공룡놀이로 시작했다. 끝은 없다. 시도 때도 없이 틈만 났다 하면 “아빠 공룡놀이”를 외치곤 했다. 아이와 잘 놀아주는 아빠가 되고 싶었다. 열정을 불어넣어 성대모사까지 하며 같이 놀이를 했다. 그 마음은 오래가지 못했다. 재미가 없었다. 지루했다. 점점 나의 대사는 없어지고 침묵이 흐른다. 의욕도 사라지면 나도 모르게 스르륵 눈이 감겼다.
“아빠 말을 해야죠. 빨리 놀아요.”
“하성아 지금 놀고 있는 거야. 말은 너도 해야지 왜 아빠만 하라고 해?”
슬슬 짜증을 냈다. 아빠 하기 싫다며 혼자 하면 안 되냐고 사정해 보았다. 그럼 재미가 없다며 속상해하는 모습에 어쩔 수 없이 다시 “으아~~~” 공룡소리라도 냈다. 이런 아빠의 모습을 꿈꾼 건 아니었는데 점점 놀이가 귀찮은 아빠가 되어가고 있었다. 이 모습을 지켜보는 아내는 혹시 육아권태기가 온건 아니냐며 걱정을 했다.
아들과의 놀이로 스트레스를 받던 중에 어린이집에서 초청한 ‘최장호박사’의 부모교육을 들었다. “아이와 놀아주지 말고 5분이라도 함께 놀아야 한다. 양보다 질이 중요하다.” 놀아주는 것이 아니고 ‘함께 놀자’라는 위대한 결심을 하게 해 주었다. 저녁 식사 후 정리를 하고 있었다. 어김없이 “아빠 공룡놀이 해요” 하며 해맑게 부르는 아들의 목소리에 설거지를 잠시 멈추었다. “나는 티라노 사우르스다”를 외치며 놀이를 시작하였다. 함께 신나게 노는 하성이의 모습이 내 마음을 간질간질 즐겁게 해 주었다.
‘함께 놀자’는 조아빠가 버티지 못했다. 끝이 없었다. 결국 예전의 모습으로 되돌아가고 있었다. 그 무렵 당진시에서 ‘자녀와의 소통’이란 주제로 교육이 있어 갔다. 강사가 물었다. “아이들이 부모님께 가장 듣고 싶은 말은 무엇일까요?” 부모들은 제각각의 답을 포스트잇에 적었다. ‘사랑해’, ‘네가 최고야’, ‘할 수 있어’등 비슷한 말들이 나왔다. ‘하성이는 무슨 말을 가장 듣고 싶어 할까?’ 고민하다 ‘아들 믿어’라고 적었다.
“부모님들이 써주신 말들 모두 좋네요. 아이들이 들으면 좋아하겠어요. 하지만 아이들이 가장 듣고 싶어 하는 말은 안 나왔네요. 그 말은 바로 놀자입니다.”
나는 ‘놀자’라는 망치로 한 대 맞은 거 같았다. 하성이는 나에게 시도 때도 없이 “아빠 놀아요” 말했다. 하루에도 몇 번씩 들었던 말인데 그 말이 떠오르지 않을뿐더러 상상조차 하지 못했다. 아들이 듣고 싶었던 말이 아니라 아빠가 해주고 싶은 말이었던 거 같다. 내가 먼저 놀자고 해본 적이 몇 번이나 될까? 하성이가 돌이 지난 이후로는 한 번도 먼저 놀자고 해본 적이 없는 거 같다. 놀아달라는 말만 들어도 한숨이 나오던 시기였다. 절대 내 입 밖으로 꺼내지 않는 말이었다. 좋은 것만 주고 싶었다. 행복하게 해 주고 싶었다. 하지만 ‘놀자’는 주고 싶지 않았던 것일까? 너무 미안했다.
오늘 당장 먼저 놀자고 해야겠다 결심을 했다. ‘아들의 반응은 어떨까?’ ‘마이쭈를 처음 입에 넣었던 표정, 세상에서 가장 행복한 표정’ 말하지도 않았는데 상상만으로 벌써 기분이 좋았다. 하지만 또 ‘같이 놀자’ 때와 같이 될 거 같았다. 돌아오는 길에 아내와 통화를 하며 나의 마음을 이야기했다.
“여보 근데 끝이 없어서 내가 지치지 않을까요?”
“시간을 정하고 놀면 어때요?”
순간 마음속으로 유레카를 외쳤다. 바로 그날 저녁
“하성아 아빠랑 공룡놀이 할까?”
“와~~~ 공룡놀이, 공룡놀이”
“우리 지금 긴 바늘이 5니까 8까지 할까 9까지 할까?”
“음, 9까지요”
내가 시간을 일방적으로 정하지 않았다. 5분 차이지만 놀이가 가능한 시간 안에서 선택권을 주었다. 이 방법을 사용하고 초기에는 끝이 날 때 조금만 더 해요라고 반응하는 아들이었다. 냉정하게 안 된다 하지 않았다. 선심을 쓰듯 5분의 추가 시간을 주었다. 그랬더니 만족하며 놀이를 끝내는 아들이었다. 조아빠도 만족했다. 언제 끝이 날지 몰랐는데 끝나는 시간을 정해 놓으니 재미나게 열심히 놀 수 있었다. 무엇보다 마음이 편안했다. 서로의 욕구를 채울 수 있는 좋은 방법이었다.
5년의 시간이 흘러 하성이가 10살이 되고 6살 된 둘째도 있는 지금, 거실에서 동생과 함께 공룡놀이를 하는 하성이에게 감사하다. 그리고 조아빠도 가끔은 “애들아 아빠랑 놀자” 말할 수 있어 좋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