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8. 도쿄전기대학으로 간다!

by 구하늘

막상 워킹홀리데이를 가려 하니 선뜻 마음이 움직이지 않았다. 일본에 가더라도 음식점이나 카페에서 아르바이트하는 모습 외에는 도무지 미래가 그려지지 않았다. 짧았지만 엔지니어로 일했던 시간은 정말 즐거웠다. 학교나 혼자 공부할 때는 누군가 교육용으로 만들어놓은 단순한 코드만 접했지만 현업에서는 그렇지 않았다. 복잡한 코드를 마주할 때마다 하나하나 읽고 이해하며 머릿속이 빠르게 활성화되는 그 감각이 좋았다.


'굳이 워홀이 아니라 일본에 있는 회사로 이직하면 되는 거 아냐?'


회사를 다니는 동안 까맣게 잊고 있던 일어를 다시 꺼내 이력서를 번역하기 시작했다. 짧은 경력으로 여러 군데 지원서를 넣어봤지만 어림없었다.


그렇게 무료한 날들을 보내던 어느 날, 정부에서 진행하는 IT 교육 프로그램을 우연히 알게 되었다. 마침 분야도 맞았고, 현업 멘토님들의 노하우를 배울 수 있다는 점이 매력적이었다. 1차 서류, 2차 면접을 통과해 8개월간의 교육이 시작되었다. 교육생들은 고등학생부터 대학생, 나처럼 일을 그만두고 온 백수취준생까지 다양했다.




처음 두 달은 기존 프로그램을 분석하거나 무언가를 개발하는 과제 위주로, 이후에는 팀을 이뤄 자유 주제로 프로젝트를 진행했다. 교육이 시작되었을 땐 반팔을 입고 있었는데 어느새 외투를 껴입고 있었다. 정해진 시간 안에 결과를 내야 했기에 집이든 카페든, 밤을 새우는 날이 많았다. 몸은 힘들었지만 결과물이 나쁘지 않았고, 팀원들과 함께 그 과정을 버텨낸 것만으로도 뿌듯했다.


이 결과물을 우리끼리만 가지고 있기엔 아쉬워서 논문을 작성하거나 컨퍼런스 발표 기회를 찾기 시작했다. 다행히 교육기관 측에서도 외부 활동을 적극 권장하는 분위기였다. 문제는, 이 시기에 발표할 수 있는 컨퍼런스가 국내에는 없었다.


'일본에는 있지 않을까...?'


찾아보니 마침 일본에서 열리는 IT 컨퍼런스가 하나 있었다. 딱 한겨울에 열리는 행사였다. 고민 없이 메일을 보냈다.


"안녕하세요.

한국의 XX 소속 XXX입니다.
이런 주제로 연구를 진행했는데, 혹시 발표할 기회가 있을까요?

정식 등록 절차나 모집 요강을 안내받을 수 있을지 궁금합니다."


거절 메일이라도 오겠거니 했다. 하지만 며칠이 지나도 답장이 오지 않았다.
그렇게 단념하려는데 일주일이 지나서 메일이 도착했다.


"안녕하세요. 답장이 늦어 죄송합니다.

이번에는 발표자 모집 계획이 없지만, 아래 정보를 보내주시면 내부적으로 검토해보겠습니다.


발표 언어 (영어/일본어 or 한국어?)

내용 요약본

마지막으로, 경비 지원은 어려울 것 같은데 그래도 괜찮으신가요?"


사실 애초부터 경비는 생각하지 않았기에 고려 대상이 아니었다.

몇 차례의 메일을 더 주고받은 끝에, 드디어 확정 소식을 받았다.


장소는 도쿄전기대학.

500석 규모의 홀에서 발표를 하게 되었다.


일본어를 공부한 지 8년, 그 오랜 시간이 처음으로 빛을 본 순간이었다. 단순한 여행이 아니라, 내 전공 분야로 공식적인 자리에 참석하기 위해 일본에 간다는 것이 특별한 의미로 다가와 가슴이 벅차올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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