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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성옥 Sep 27. 2023

마음을 짓누르는 사람의 무게

그러나, 피한다고 해결되는 게 아니다

"제니퍼가 요즘 안 보이네?"

"몰랐구나. 제니퍼 지난주에 그만뒀어."


두어 달 전, 제니퍼를 트레이닝하던 날이 기억난다. 한번 보여줬는데 침대를 각지게 잘 정리했다.


"넌 일을 참 빨리 배우는구나."

"응, 예전에 모텔에서 일했었거든."

"어쩐지, 눈썰미가 예사롭지 않다 했어. 근데 모텔은 왜 그만둔 거야?"

"그냥, 일이 힘들어서."


그냥…

일이 힘들어서…


세상에 힘들지 않은 일은 없다. 모텔 일이 힘들어서 호텔로 왔다는 제니퍼는 호텔일도 힘들어서 3개월을 못 버티고 그만두었다.


궁금해서 제니퍼에게 안부전화를 했다. 왜 떠났는지, 조금 덜 힘든 일을 찾았는지, 시급이 훨씬 높은 곳으로 이동했는지 궁금했다. 솔직히 더 쉬운 일이면서 더 많이 벌 수 있는 일거리를 찾아 떠났기를 바랐다. 열흘 후면 시급도 인상되는데 그 열흘이 아쉽지 않을 정도로 획기적인 제안이 있기를 응원했다.


제니퍼는 다른 호텔로 이동했다. 그 호텔은 규모가 훨씬 작아서 청소하기가 덜 힘들 것이라 생각했다고 한다. 호텔 규모가 작다고 하우스키퍼의 일까지도 줄어드는 것은 아니다. 약간의 차이는 있겠지만 침대를 갈고, 화장실 청소를 하고, 비품을 채워놓고, 청소기를 돌리는 등 호텔마다 객실 청소하는 순서와 방식은 획기적으로 달라지지는 않는다. 뭔가 더 나은 일을 찾아 떠났겠지만 여기 있으나 그쪽으로 가나 하우스키퍼가 하는 일은 비슷하다.


"근데 사실은 슈퍼바이저가 맘에 안 들었어. 일을 명령조로 시키는 게 기분 나빴어."

"거기 분위기는 좀 어때? 화기애애 해?"

"뭐 다 그렇지. 돈 주면서 일 시키는데, 호텔일이 별다른 게 있겠어."


일이 힘들 때 저쪽으로 옮기면 지금보다 나은 새 삶이 펼쳐질 것 같은 희망을 갖는다. 그 희망은 현실이 될 수 도 있지만 대부분의 경우 그것은 희망사항일 뿐이다. 제니퍼는 이미 답을 알고 있는 듯했다.


호텔을 옮겨도 하우스키퍼로서 하는 일이 비슷하듯이, 다른 대학으로 옮겨가도 교수로서 하는 일은 별반 다르지 않을 것이다.


“다른 학교를 알아보는 건 어때?"

"옮긴다고 달라지나? 어디를 가나 나를 힘들게 할 사람은 있어."


사람의 무게

당장이라도 내려놓고 싶은 무거운 짐이 있다. 출근을 하면 만나게 되는 사람들, 그들이 나를 짓누르는 무거운 짐이다. 하지만 지금 짊어지고 있는 이 무게를 다른 학교가 덜어주지는 않을 것이다. 어느 대학으로 옮기나 그곳에도 나를 힘들게 하는 사람들은 있을 테니까.


교수생활을 고달프게 하는 것은 강의도 연구도 아닌 바로 사람이다. 사람의 무게가 이렇게 힘든 것인 줄은 최근에 우울증 증상과 원인을 분석하기 시작하면서부터 깨닫게 된 것이다.


같은 대학, 비슷한 상황에서도 어떤 교수는 우울증에 목을 매고, 어떤 교수는 매우 잘 지낸다. 그럼 대학을 탓할 것인가, 우울증을 앓고 있는 교수를 탓할 것인가?


피눈물 나는 노력으로 교수가 되어 나만의 연구실에 앉을 수 있게 되었는데,

남 부러울 것 없이 모든 것을 갖은것처럼 보이는데,

왜 많은 교수들은 우울증에 시달리는지.

종신교수가 되고서야 나 또한 목을 매었던 그 교수님의 마음을 이해하게 되었다.


사람

사람이기 때문이다. 목을 매는 이유도 마음이 아픈 이유도 우리가 사람이기 때문이다.


사람과 사람이 모이면 자연스레 다양성이 존재하게 된다. 만인이 나와 같은 마음일 수 없다. 모두가 경쟁도 질투심도 없이 평화로울 수만은 없기 때문에 사람이 모이면 불편해지는 게 당연한 것이다. 어느 정도 불편한지, 얼마나 아픈지는 본인도 모를 때가 많다. 박사학위, 교수라는 타이틀, 연구 실적 등과는 달리 척도화 할 수 없는 게 사람 마음 아니겠는가.


무게의 기준

월, 화, 수, 목, 금! 주 5일간, 그리고 주말까지 정신을 짓누르게 하는 게 바로 사람의 무게라니! 그 무게는 보이지 않기에 정의하기가 어렵다. 재려고 해도 척도 할 수 있는 정확한 기준이 없기에 누군가에게 수치화해서 알리기도 쉽지 않다. 

사람의 무게를, 그 무게로 인한 마음의 병을 몸무게 재듯이,

 

"내 마음은 100kg만큼 무거워요."

"난 80kg만큼 우울하답니다."


이렇게 말할 수 있으면 얼마나 좋을까.

마음이 얼마나 버거운지를 잴 수 있다면, 그 무게를 줄여주는 약이 있으면 얼마나 좋을까.


고민  

마음의 병을 갖고 사는 환자를 완치시켜 줄 수 있는 의사는 없다. 정신과 의사는 도움이 될 수는 있지만, 뼈를 붙이고 살을 꾀메어 수술을 해서 고칠 수 있는 병과는 다르기에 완치를 기대하는 건 무리이다. 그래서 우울증은 명쾌한 치료법이 없어서 더욱더 힘든 것이다.


"동료 교수들 때문에 힘들면 학교를 옮겨보는 건 어때? 너한테 맞는 대학으로 말이야."


고민을 안 해본 것은 아니다. 그러나 학교를 옮긴다고 해도 마찬가지 일 것이다. 이 지구상에 내가 원하는 완벽한 곳은 없다. 어디를 가나, 다양한 부류의 사람들이 존재하니까 말이다.


교수는 이직률이 높은 직종 중의 하나이다. 이직이 쉽기도 하고, 이직을 통해 연봉을 협상할 수 도 있고, 더 성장하기 위해 옮기기도 한다. 떠날 때는 뒤돌아 보지 않고 아쉬움 없이 떠난다.


도피

이곳으로 이사 와서 종신교수가 되었다. 그동안 아이들도 잘 적응하여 밝게 성장하고 있다. 우리는 이곳에서 터전을 마련했고 어느 정도 정착이란 것을 했다.


인간관계가 힘들다고 또 학교를 옮기는 것은 완전한 해결책은 아니다. 그것은 이곳에서 잠시 도피하는 것일 뿐, 그곳으로 가면 또 도피할 이유가 생길 것이다. 그곳 또한 무인도가 아니라 여러 사람이 모여 사는 곳이기 때문이다.


사필귀정

"그냥, 힘들어서."


제니퍼가 말하듯이 나도 "그냥 힘드니까" 지금 당장 어디론가 훌쩍 떠나버리고 싶은 마음이다. 떠나면 짓눌려있던 무게가 스프링처럼 다시 살아날 것만 같다.


그러나, 그것은 단지 희망사항일 것이다. 일시적인 도피를 하려다 해결의 기회를 상실할 수 도 있다. 사람의 무게를 완전히 내려놓지 못하고 마음 한편에 계속 간직한 채로 살아갈 수 도 있다는 말이다.


물건에도 제자리가 있듯이, 모은 일은 결국 옳은 이치대로 돌아갈 것을 믿는다. 사람의 무게에도 제자리가 있을 것이다. 그래서 도피 대신에 먼저 현실을 마주하기로 했다. 현재진행형이기는 하지만 나에게 사람의 무게라는 짐을 얹혀준 이곳에다가 그 무게를 다시 내려놓고자 한다. 시간이 걸릴 것이다. 성공한다는 보장은 없다. 그러나, 올바른 방향으로 나아가고 무게를 내려놓는 이 과정을 통해 성장하고 회복할 것이라 확신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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