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우스키퍼의 단순노동의 미학
강의실과 연구실 그리고 엄마역할을 정신없이 하다 보면 나만의 생각을 정리할 수 있는 고요한 시간을 놓치고 만다. 청소하는 토요일은 한 주간 밀린 생각을 정리하는 날이다. 청소하며 머리를 식히고 정리를 한다면 쉽게 이해하기는 힘들 것이다.
단순노동
몸에 익은 단순노동은 많은 생각을 하지 않아도 몸이 기억한 대로 움직이게 된다. 개수를 일일이 세지 않아도 몇 개의 커피가 비어있는지, 몇 장의 수건을 채워야 하는지, 어떤 순서로 청소를 해야 하는지는 몸이 안다.
객실에서 청소를 할 때 몸은 억척스레 움직이지만 복잡한 머리에 잠시나마 휴식을 주기도 한다. 머리를 정화시키고 나만의 시간을 가질 수 있는 방법은 다양하다.
일주일간 보지 못했던 한국 뉴스나 드라마를 틀어놓고 몰아서 시청할 때면 향수병을 살짝이나마 달랠 수 있다. 나의 고향 한국에는 요즘 어떤 게 화젯거리인지를 듣다 보면 잠시나마 한국에 와있다는 착각이 들 때가 있다.
무엇보다 한국어로 진행되는 토크쇼를 들을 때면 마치 내가 출연진과 함께 소통을 하는 것 같이 느껴질 때가 있다. 같이 웃고 때로는 울고 어떤 때는 맞장구도 쳐가며 한자리에 앉아 있는 듯 동화된다.
시차가 맞으면 한국에 있는 엄마, 시어머니와 번갈아가며 통화를 한다. 유튜브를 통해 친구가 된 쑥쑥 언니와 텍사스 부뚜막과도 한 번씩 통화를 한다. 침대 시트를 갈면서 한바탕 수다를 떨고 나면 밀렸던 속풀이를 한 번에 한 것 같이 속이 좀 시원해진다. 대화 속에는 늘 깨닫음과 배움이 있다. 이런 대화를 통해 마음의 위로를 얻기도 한다. 대화의 마무리에는 늘 아쉬움과 함께 앞으로의 각오가 있다.
각오란 아주 사소한 것부터 조금 진지한 것까지 매우 다양하다. 물을 더 많이 마시자, 짐을 비우자, 지금도 잘하고 있다고 생각하자, 나를 걱정해 주는 사람이 있다는 것을 명심하자, 다음 주에는 어머니 레시피 대로 애들 고기를 해 먹여야겠다, 말을 조심하자, 남들의 시선에 조종당하지 말자, 등으로 마무리를 짓는다.
이렇게 속풀이가 끝나면 좋아하는 음악을 틀어놓고 그간 밀렸던 생각을 정리한다. 잘한 것, 실수한 것, 해야 할 것, 아이들과 대화할 때 꼭 해주고 싶은 말, 브런치에 담고 싶은 글, 영상으로 나누고 싶은 내용. 이렇게 머리는 즐거운 생각들로 가득 찬다.
그러다 문득 학교생각을 하면 이 즐거운 생각들을 망쳐버리고 만다. 마치 즐거운 파티장에서 열심히 춤을 추다가 갑자기 음악이 멈춰버리듯이 흥이 깨져버리고 만다. 그래서 주말만큼은 학교생각을 하지 않는 것이 철칙이다. 이것이 나에게는 휴식이다.
객실에서 청소를 할 때는 내가 무엇을 듣던 아무도 상관하지 않는다. 쉬지 않고 성실히 움직여가며 시간에 맞춰 청소를 끝내면 된다. 객실 안은 누구에게도 방해받지 않는 나만의 휴식 공간이다. 노동이라는 단어와는 사뭇 어울리지 않은 듯 하지만 머리 식힘 만큼이나 좋은 휴식도 없다.